[이근수의 무용평론] 2018년 가장 좋았던 무용작품 10 편
[이근수의 무용평론] 2018년 가장 좋았던 무용작품 10 편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2.15 1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한 해 동안 보았던 공연들을 되살리면서 가장 좋았던 작품 10개를 골라내는 작업도 어느새 5년째를 맞는다. 2015년이 그 첫 해였다. 2018년 무용공연은 12월 30일 국은미의 ‘OFF'로 끝이 났다. 좋은 공연들이 12월에 몰리는 현상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다. 10편 중 3편이 11월과 12월이다. 

예년과 같이 직접 관람한 100여 편 작품 가운데 뽑은 10편은 한국무용 2, 발레 2, 컨템퍼러리 현대무용 6편이다. 모두 서울문화투데이신문의 무용평론칼럼에 리뷰를 실었던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을 무순으로 소개한다.

<무위>(9.19~20, 아르코소극장)는 국수호의 55년 춤 인생을 담은 수작이다. 종심(從心)의 나이를 맞은 깨달음을 춤에서 볼 수 있었다. 인간이 곧 자연의 일부란 깨달음으로 그려낸 무위세계엔 생명의 탄생과 번식, 농사의 파종과 수확, 음양의 만남과 소리의 조화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無爲)’속에 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무불위(無不爲)’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소극장무대였기에 감동이 더욱 큰 공연이었다.

<초혼>(11.20, 아르코대극장)은 ‘무.념.무.상(舞.念.舞.想)’이라고 이름붙인 서울무용제 개막공연에서 Amazing Maestro란 명칭으로 소개 된 4명의 원로무용가 중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육완순의 공연이다. 

김소월의 시 ‘초혼’이 가수 이문세의 육성으로 낭송되는 가운데 육완순의 춤은 움직이는 시(詩)가 되고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몸은 80대 나이를 잊은듯하다. “춤은 절대 늙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지속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남긴 말이 긴 여운을 남겨준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심포니 인 C>(11.30~12.2, 토월극장)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3명의 안무가가 선택 안무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쓰리 스트라빈스키‘ 중 한 작품이다. 정영두는 이 음악을 여정(旅程)으로 해석한다. 

경쾌하고 물 흐르듯 유연하게 흐르는 연주로 시작되는 서막, 라르고음악이 로맨틱하게 흐르는 섬세한 2막의 춤사위, 활기찬 음악과 함께 무대를 콩콩 튀면서 자유스러움과 여유로움을 강조하는 3막과 4막의 군무로 구성된 30분 작품은 음악과 춤이 하나로 수렴되는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안성수의 <봄의 제전>(11.30~12.2, 토월극장)은 ‘쓰리 스트라빈스키’공연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여성무용수들만으로 구성된 정영두의 춤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냈다면 안성수의 춤은 근육질의 남성무용수들이 중심이 되어 스트라빈스키다운 열정과 격렬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주술적 분위기가 연출되는 조명, 신에게의 기원을 담아 제단 앞에서 추는 군무가 혁명 전야 같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하면서 컨템퍼러리 현대 춤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넥스트스텝>(3.15~17, 달오름극장)은 국립무용단이 정소연, 이재화, 김병조 등 세 명의 단원을 선정하여 안무를 맡긴 야심적인 기획공연이다. 정소연의 ‘싱커페이션'은 시계바늘같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연출이 조명의 밝기와 높낮이, 거리 등 요소들을 정확히 배려하면서 한 폭의 그림같이 전개된다. 

안무자의 논리적 사고와 이를 풀어가는 드라마트루기 역량이 돋보이는 참신한 작품이었다. 이재화의 ‘가무악칠채’는 양악기와 국악기를 함께 사용하면서 소리꾼이 객원으로 출연하여 즉흥 같은 자유로운 춤사위를 통해 가무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김병조의 ‘어;린 봄’은 무용수의 성장과정을 추적하면서 무용수의 내면에 살아 있는 것은 봄, 청춘이라는 메시지를 자막, 내레이션, 영상으로 전달하고자 한 신선한 작품이었다. 

<스윙(SWING)>(4.20~22, 토월극장)은 스웨덴의 예테보리에 거점을 둔 6인조 남성재즈밴드인 ‘젠틀맨 앤 갱스터즈’와 국립현대무용단의 협업 작품이다. 16개의 재즈곡을 16명 남녀무용수가 짝을 이루며 흥겹게 노는 SWING 리듬의 핵심은 흥(fun)과 끼(soul)다.

1920년대에 출발을 같이 했다는 태생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스윙재즈와 현대무용이 결합된 자유롭고 편안한 무대를 통해 춤과 음악에 대한 안성수의 융합적 콘셉트를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마타하리>((10,31~11,4, 오페라극장)는 국립발레단이 이탈리아 안무가인 레나토 자넬리를 초청하여 안무한 작품으로 2016년 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스파이(a Espia)’의 줄거리를 따른 드라마발레다. 티베리우 소아레(루마니아)가 지휘하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1막)과 5번(2막)을 배경음악으로 한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과 미니멀한 분위기를 풍겨주는 무대장치, 흑색과 청색 등 어두운 색감과 망사를 주조로 한 의상이 단순성을 강조한다. 김지영의 t섬세한 춤과 연기가 마타하리의 캐릭터를 잘 살려낸 작품이었다.  

<OFF>(12,29~30, SAC 아트홀)는 소마틱스(Somatics)란 이름의 몸 수련을 바탕으로 자신의 춤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국은미의 안무작이다. 국은미와 김동현∙신상미가 3인무를 구성한다. 

소마틱스의 몸 수련법을 보여주는 1막, 우주선을 타고 이륙하는 장면을 보여준 1막과 2막 사이의 영상, 세 사람의 몸이 하나가 된 듯 우주공간에서 유영하는 듯한 2막, 몸과 마음이 합체된 자유로운 상태를 표현한 피날레를 통해 국은미 춤의 독특함을 확인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Colla B>(6.16, 과천시민회관 대극장)는 과천시민회관 상주단체인 서울발레시어터의 작품이다. 장혜림(한국무용), 이나현(현대무용), 박귀섭(발레), 김희정(재즈댄스) 등 외부에서 초청된 4명의 안무가가 서울발레시어터의 무용수와 스태프를 공동으로 활용하며 집단 속의 개인 혹은 사회제도 속의 인간이란 공통적인 주제를 각각 풀어냈다. 

장혜림의 ‘장미의 땅’은 이라크와 시리아 여성들로 구성된 쿠르드 여전사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냈고 이나현의 ‘Anonymous(익명)’는 권력을 가진 집단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익명으로 살아가야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선율(旋律)이란 부제가 붙은 박귀섭의 ‘Shadow 2-4’는 개인이 끊임없이 감시받고 지시받는 사회에서 규격화되는 패턴에 저항하며 개성적인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예술가를 이야기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지민의 <SEED>(4.6~7, 대학로예술대극장)는 ‘C2 Dance 2018년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려진 투명한 비닐장막이 천천히 감아올려지면서 바닥에 접힌 부분들이 조금씩 펴진다. 싹이 트고 새 순이 돋아나는 봄철의 생명력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문설주에 귀대고 봄소식을 기다리고 무릎걸음으로 분주하게 오가는 여인들을 통해 봄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조바심치는 모습을 손에 잡히듯 선명하게 그려낸다. 씨앗의 성장을 통해 여인들의 심리를 묘사한 안무가의 상상력이 새 봄처럼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이밖에도 신창호의 <맨 메이드>, 김성한의 <기억의 지속>, 최성옥의 <베토벤 & 칼>, 김미선의 <춤 수다> 등 작품의 실험성이 돋보였다. 소재와 구성의 실험성을 유지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보강하여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가 기대되는 작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