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고상한’ 어른인가요? 어른들의 추한 민낯 <대학살의 신>
당신은 ‘고상한’ 어른인가요? 어른들의 추한 민낯 <대학살의 신>
  • 차유채 인턴기자
  • 승인 2019.02.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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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Carnage)’을 통해 조명하는 인간 근본의 가식과 위선

11살의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아이의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상해 ‘보이던’ 두 부부가 추한 민낯을 드러낸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연극 <대학살의 신>의 주된 이야기다. 

▲ <대학살의 신> (제공=신시컴퍼니)

네덜란드산 튤립과 같이 우아하게 치장됐던 어른들의 만남은 작은 단어 논쟁과 함께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고상한 만남은 삿대질, 물건 던지기를 비롯한 눈물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한 마디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극이 마냥 부부들이 편을 이뤄 싸우는 구조가 아니다. 때론 아내들끼리, 때론 남편들끼리, 때로는 3명이 한 편이 되어 1명과 맞서 싸움을 벌일 때도 있다. 이렇듯 극은 사건에 따라 선과 악이 끊임없이 변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중 등장인물의 선과 악의 경계 자체가 모호하다.

네 어른의 민낯을 드러내는 소재는 ‘술’과 ‘햄스터’이다. 예부터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다고 알려진 술은, 이번 연극에서도 ‘고상한 어른’이라는 가면을 쓴 네 인물의 가식을 벗겨버렸다.

의외로 극 중 중요 포인트를 담당한 햄스터 또한 등장인물들이 인간, 그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부류의 존재가 아닌 그 밖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조명해줌으로써 연극 관람에 있어서 가면을 여는 열쇠와 같은 소재를 담당했다.

▲ <대학살의 신> (제공=신시컴퍼니)

사회적으로는 드높은 명예를 지닌 변호사이나 정작 하는 일은 돈에 따라 부도덕한 제약회사의 편에 서며 ‘가장 가까운’ 가정의 일은 나 몰라라 외면하는 알랭(남경주 분).

우아하고 섬세하며 고상한 여자로 보이나 결국 상황이 주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구토’를 통해 제일 먼저 싸움의 양상을 전환시킨 아네뜨(최정원 분).

평화주의자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드러내며 호탕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 누구보다 ‘호탕하게’ 인간 본위에 서서 죄책감 없이 햄스터를 내다 버린 미셸(송일국 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아프리카 대학살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인 것 마냥 크게 분노하며 울분을 감추지 못하지만 정작 일상 속에서는 주변 인물들을 억누르며 원칙에 근거해 ‘학살’하고자 하는 베로니끄(이지하 분).

이렇듯 <대학살의 신> 속 등장인물들은 모순과 이중성으로 뒤섞여 관객들에게 ‘매우 씁쓸한’ 웃음을 선사한다.

▲ <대학살의 신> (제공=신시컴퍼니)

분명 <대학살의 신>은 굉장히 재밌다. 보면서 큰 소리로 웃는 관객들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극이 중반을 지날수록 관객들은 재미 속에서 오히려 숙연해진다.

연극을 보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알랭, 아네뜨, 미셸, 그리고 베로니끄에 자신을 투영한다. 그리고 그 순간, 관객들은 그들의 막장에 가까운 행보를 보며 언젠가부터 웃음보다 한숨이 앞서게 된다.

연극을 통해 그간 대외적으로 내보였던 관객 자신의 ‘고상한 가면’의 끔찍한 민낯을 자각하는 순간, 관객들은 웃음의 대상으로 여기던 네 명의 등장인물들을 보며 자신이 감추고 있던 폭력성과 가식, 위선을 느끼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은 스스로가 마주했던 추한 민낯을 다시금 가면에 숨기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웃는다. “아, 연극 너무 재밌었는데?”하고 말이다. 함께 본 다른 이도 말한다. “배우 연기 정말 잘하더라!”하며.

스스로의 가면 속 솔직한 모습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모두 ‘연기’로 돌리고 만다. 결국 그 점이 연극이 우리들에게 하려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당신은 정말 ‘고상한’ 어른인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