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퍼포먼스와 굿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퍼포먼스와 굿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03.1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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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진섭 미술평론가

어렸을 적 동네에 만신이 살았다. 여자 무당은 과부가 많은데 그 할머니도 혼자 살았다. 신을 남편으로 섬기며 어쩌다 재수굿이나 진혼굿거리가 들어오면 굿판을 벌였다. 

시골마을에 굿판이 벌어지면 동네사람들이 하얗게 모여 굿 구경을 했다. 삶은 돼지머리를 젯상의 맨 윗단 가운데 두고 그 주변에 과일과 전, 누름적 등을 진설했다. 신이 나면 무당은 작두를 탔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 위에 맨발로 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연신 중얼거렸는데 그 사설이 망자, 혹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공수라는 사실을 나는 커서 책을 통해 알았다.

이승과 저승 사이를 매개하는 자가 바로 무당이다. 사람이 죽으면 원통한 한을 지닌 사자의 영은 곧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데, 무당은 영혼이 편안히 저승에 갈 수 있도록 한풀이를 해준다. 이 때의 영혼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에 있다 해서 중음신이라고 부른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설은 영이하는 말을 무당의 입을 통해 전하는 형식인 만큼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이 즉흥성이 퍼포먼스의 즉흥적 성격과 닮았다. 퍼포먼스를 공연이라 하지 않고 실연이라고 불러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인생이 미리 예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주어진 행로를 가야하는 것처럼, 예술이 삶 그 자체인 퍼포먼스는 그래서 리허설이 필요없다. 삶과 예술의 일치는 플럭서스와 같은 퍼포먼스 형식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거대한 무대장치나 대규모 설치물이 주는 압도적이며 드라마틱한 시각효과는 숭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때의 감정은 인간의 혼을 빨아들일 정도로 압도적이어서 벌러프가 이야기하는 심리적 거리를 상실하게 된다. 즉 차분한 마음으로 미적 대상을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감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퍼포먼스와 같은 예술형식이 지닌 특성은 일상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술과 일상이 분리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굿이 일상공간에서 이루어지며 무대주변에 관객들이 죽 둘러서서 구경을 하는 구조, 특히 어떤 형태로든 관객이 굿에 참여하는  형식은 퍼포먼스가 굿과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즉 퍼포먼스의 모태로서의 굿은 프리모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무당의 공수가 자의적인 것이 아니듯 어떤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중얼거림은 세상에 대한 경고와 예언일 수도 있고 혹독한 비판일 수도 있다. 그의 말을 알아듣든 말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의  말씀을 해석해서 대중에게 전하는 교역자나 신학자,  종교학자들이 있는 것처럼 퍼포먼스 역시 해석가가 필요하다. 미술평론가나 미술사학자들이 그들일 터인데  아직 한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플럭서스 운동을 하던 시절의 백남준은 무당이었다. 투명한 예지력과 천재적인 예술적 광기를 온몸으로 내뿜은 그는 첫 개인전을 연 파르나스 화랑의 입구에 소머리를 내걸어 자신이 몽고리안 샤먼의 후예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1963년의 일이다.

엥겔스가 태어난 고장이기도 한 독일의 북부도시 부퍼탈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거사였다.

백남준은 바로 거기서 유럽 미술계의 상징인 또 한 사람의 무당인 요셉 보이스를 만난다. 훗날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와 함께 두 대의 피아노를 놓고 퍼포먼스를 벌였는데 그 때 백남준은 피아노를 두드리며 '울밑에선 봉선화야'를 불렀고, 보이스는 늑대 울음 소리를 냈다.

둘은 호흡이 잘 맞았다. 백남준은 자신이 예술가로 유명하게 된 데에는 젊은 시절에 무명의 요셉 보이스를, 유명의 존 케이지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연기론을 강조했다.

1990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백남준의 굿 퍼포먼스는 요셉 보이스의 영혼을 위한 진혼굿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봐도 은인에 대한 백남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퍼포먼스가 다 굿은 아니지만 어떤 작품은 샤마니즘적인 성격이 농후한 것이 있어서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인 김석환은 샤먼적인 성격이 강한 작가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하늘 과 땅을 매개하는 인간. 즉 천지인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지구본에 와인을 넣고 이를 따라 마시거나 관객들에게 마시게 하는 행위는 지구의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위기를 경고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