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깡갱이
[김승국의 국악담론] 깡갱이
  •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
  • 승인 2019.03.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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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장

상대방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가치가 전혀 없는 소리를 할 때, ‘거지 깡깽이 같은 소리’를 한다고 나무라는 말을 가끔 듣곤 한다. 혹은 하는 짓이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일삼거나 하찮은 짓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을 비하하여 말할 때, ‘거지 깡깽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는 소리도 듣곤 한다.  

‘깡깽이’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통 국악기 중 하나인 해금을 지칭하는 말이다. 옛날에는 해금을 ‘깡깽이’, ‘깡깡이’, ‘앵금’이라고도 불렀다. ‘깡깽이’, ‘깽깽이’, ‘깡깡이’ 라는 속칭은 해금이 내는 우스꽝스러운 코맹맹이 소리에서 연유된 것이다.

국악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 속에서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흘러나오던 애잔한 국악기의 선율을 기억할 것이다. 그 소리가 바로 해금(奚琴) 소리이다. 원일 작곡의 해금 독주곡이자 영화 ‘꽃잎’의 주제곡은 96년 대종상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해금 선율은 때로는 마음을 파고 들어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닮아있기도 하다. 또한 걸쭉한 해학과 재담이 넘치는 마당극에서는 우습고도 익살스러울 효과음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해금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그 소리가 묘하게 달라진다. 

그런데 왜 ‘거지 깡깽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조선시대에는 걸인들이 ‘걸립(乞粒)’을 할 때 흔히 해금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구걸의 대가로 연주해 주는 해금 소리가 ‘깡깡 깽깽’ 소리를 닮았다하여 ‘깡깽이’혹은 ‘깽깽이’로 불렀던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문 앞에서, 밥 달라는 차원에서의 공연을 하노라면, 집 주인은 그 소리를 듣고 밥이나 먹을거리를 내다 주었기에 그 소리가 그렇게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깡깽이’라는 별명은 ‘거지’와 만나게 되었고, ‘거지 깡깽이 같은 소리’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요즘은 주로 앉아서 해금을 연주하기 때문에, 해금은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로 아는 분이 많겠지만, 예전에는 서서도 연주하고, 걸어가면서도 연주하였다. 가볍고 부피가 크지 않아 휴대하기도 편리하여 거리악사들이 즐겨 갖고 다녔다.

그러나 해금은 민초들을 대상으로만 하는 악기는 아니었다, 해금은 유라시아 대륙에 퍼져 있는 호궁(胡弓)류 악기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주되고 있다.

해금은 현악기인데도 연주 현장에서는 관악기로 분류된다. 해금과 친척 간이 되는 해외 악기로는 무엇이 있을까? 중국에는 얼후(二胡)가 있고, 일본에는 고큐(胡弓)가, 몽골에는 일반적으로 마두금(馬頭琴)으로 알려진 모린호르가 있다. 모두 뿌리는 하나이다. 

해금은 두 줄로 된 찰현(擦絃, 줄비빔)악기로서 크게 몸통, 입죽(立竹), 줄, 활로 이루어져 있다.

몸통은 공명통(울림통)과 공명통의 한 면을 막아주는 복판(腹板), 해금의 두 줄을 고정시키는 감잡이(감자비, 甘自非), 감잡이를 공명통 하단에 고정시키는 주철(柱鐵)과 복판 위에 줄과 공명통의 브리지 역할을 하는 원산(遠山)으로 구성된다. 입죽(立竹)은 공명통에 수직으로 꽂아 세우는 대나무 기둥을 말한다.

입죽 상단의 줄감개인 주아(周兒)에 두 줄(중현, 유현)을 수직으로 걸어 몸통 하단의 감잡이에 고정시킨다. 오른손은 중현과 유현 사이에 활대를 넣어 문질러 소리를 내고 왼손은 두 줄을 한꺼번에 감아 잡고 쥐거나 떼면서 음높이를 조절하여 연주한다.

단가나 판소리 중의 한 대목, 또는 민요 등 구성진 창(唱)과 가야금 연주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가야금 병창(竝唱)이라 한다. 이 때 창(唱)이 주가 되고 가야금은 부가 된다. 가야금 병창 외에도 예전엔 병창도 있었고, 해금병창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문고 병창과 해금병창을 모두 연행할 수 있는 예인(藝人)은 지영희류 해금산조의 명인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신쾌동류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인 김영재(1947) 명인 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다행히 젊은 연주가 중 성연영 같은 예인이 해금병창을 연행하며 음반도 내며 창작활동도 하고 있다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영재 명인은 누가 뭐래도 가·무·악에 두루 능통한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이다. 판소리와 창극, 아쟁산조와 가야금 산조에 두루 능통한 김일구(1940) 명인도 김영재 명인과 예능의 우열을 다툰다면 난형난제(難兄難弟)이다. 한 가지 악기 연주에도 급급해하는 요즘의 국악계에 이러한 다재다능한 연주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