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탄생 100주년을 맞는 현인의 ‘뮤지컬’적인 노래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탄생 100주년을 맞는 현인의 ‘뮤지컬’적인 노래들
  •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3.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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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대한민국이 ’뮤지컬 최강국‘이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뮤지컬 공연시장이 활성화되었다고, 이리 말하긴 이르다. 이렇게 질문 해볼까? 대한민국엔 ’뮤지컬영화‘가 있나? 뮤지컬영화를 지향한 ’삼거리극장‘(2006)과 같이 작품이 몇몇 있긴 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뮤지컬 강국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뮤지컬을 바탕으로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길 뮤지컬영화가 한 편쯤은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이 나라의 보편적 다수가 잘 아는 가요를 바탕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뮤지컬영화는 가요와 뮤지컬이 서로 소통하게 하는 일거양득일 수 있다.

대한민국엔 ‘뮤지컬영화’라고 당당한 내세울 영화는 없다. 그러나 해방 후 ‘최초의 음악영화’를 표방한 ‘푸른 언덕’이란 작품이 있다. 1949년 7월 29일, 수도극장에서 개봉했다. ‘신라의 달밤’과 ‘서울야곡’으로 유명한 가수 현인이 주인공을 맡았다. 필름이 전해지지 못해 아쉽지만, 대략 어떤 영화인지는 여러 자료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19년은 가수 현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된다. 그가 한국가요에 끼친 영향은 크다. 그는 원래 클래식 성악가를 꿈꾸었다. 우에노(上野)음악학교에서 수학했고, NHK합창단으로도 잠시
활동했다. 조선에 돌아와선, 성악을 가르쳤다. 일제 말기 강제징용의 와중에, 중국으로 가서 악극단 배우로 크게 활동했다. 황해, 박단마, 신카나리아 등과 함께, 일종의 뮤지컬적인 작품을 공연한 셈이다. 이들의 작품은 당시 중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현인에게는 20곡 정도의 대표곡이 있다. 현인보다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가 있겠지만, 현인만큼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노래를 소화해낸 가수도 드물다. 그가 여러 노래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배경에는, 클래식 성악을 확실하게 익힌 가창력이 근거한다. 무엇보다 일본과 중국서 생활하면서, 여러 형태를 노래를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 강점이었다.

현인은 해방 직전에 중국의 감옥에 갇히는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서 누구보다도 큰 주목을 받았다. 작곡가 박시춘과 작사가 유호, 그리고 가수 현인을 가리켜서, 훗날 대한민국 가요계의 ‘황금트리오’라고 부른다.

실제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부터 한국전쟁의 말기(1953년)까지, 현인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 최초의 음악영화 ‘푸른 언덕’의 주인공인 현인을 가리켜서 ‘가요계의 왕자(王者)’라고 했다. 현인은 그 시대의 조용필이었고, 서태지였다.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전우야 잘 자라, 비내리는 고모령에서 럭키서울로 이어지는 현인의 노래는 그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한다. 전쟁의 참혹한 상황부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까지,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현인은 국내가요시장에 샹송, 칸초네, 라틴음악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현인의 노래의 가사와 곡조를 살피면, 그대로 뮤지컬적인 ‘스토리텔링’이 연결된다.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일찍이 현인만한 ‘진보적 음악인’도 드물다. 중국노래 ‘꿈속의 사랑’을 번안가요로 히트시켰고, ‘인도의 향불’과 같은 이국적인 정서의 노래를 불렀다. ‘나폴리 맘보’란 노래로 맘보 붐을 일으켰고, ‘즐거운 여름’과 같은 왈츠 풍의 노래도 있다. 현인이 부른 이국적 정서의 노래로 ‘멕시코탱고’도 있다. 지금까지도 불리는 번안가요의 대표곡이라할 ‘베사메무쵸’와 ‘고엽’이 있는데, 이 노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가수가 바로 현인이다.

지난 3월 초, 현인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KBS-TV ‘가요무대’에선, 현인을 가리켜 ‘가요산맥’이라고 했다. 그에게 더욱 어울리는 수식어를 찾는다면, 현인이야말로 ‘낭만가객’ 또는 ‘가요계의 로맨티스트’란 말이 더 어울린다. 1958년, 현인은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은 현인의 리메이크가 된다. 이 노래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백설희가 부르기도 했다.

내 느낌엔, 가수 현인만큼 ‘명동적인’ 가수도 드물다. 명동백작으로 통했던 박인환의 시에, 이진섭이 곡을 부친 ‘세월이 가면’은, 현인에게 참 어울리는 노래다. 그의 대표곡인 ‘서울야곡’은 충무로, 명동, 종로로 이어지는 일종의 ‘낭만로드’다. 현인의 노래처럼, 현인의 실제 삶도 매우 자유분방하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가 그렇겠지만, 저작권이나 표절 등에서도 파고들면 아쉬운 것도 발견된다. 딱히 현인 자신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나, 현인의 대표곡인 ‘신라의 달밤’은 원래 월북한 조명암(북한이름 조령출)의 작사에서 출발한다.

남과 북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절,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서 문제제기가 있었다. 나는 이 글에서 뒤늦게 현인과 관련한 노래 등에 관해서 딴지를 걸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단지 그런 일들이 있었음은 바로 짚고 마음 이상으로, 현인이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걸출한 남자가수임을 더욱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현인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서, 그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 만들어질 순 없을까? 이런 바람도 가져본다.

해방후 최초의 음악영화를 표방한 ‘푸른 언덕’의 주제가인 ‘푸른 언덕’을 비롯해서 그가 부른 여러 노래는 분위기가 꽤 다르다. 따라서 편곡을 하기에 따라서 요즘의 기호에 맞는 노래로 재탄생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가 싶다. 현인의 노래를 바탕으로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면, 기성세대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충족시켜주고, 젊은 세대에겐 한국가요가 일찍이 음악적으로 크게 열려있었음을 알려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뮤지컬 최강국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뮤지컬의 애호하는 사람들이 다변화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 속에 ‘한국적 소재’와 ‘한국적 선율’이 잘 배어있어야 한다. 현인의 노래는 이런 조건에 맞으면서도, 일찍이 세계 여러 나라의 노래에 열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들이 현인은 물론이요, 그와 같이 활동했던 시대에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