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 사이]모두의 가치 …도시재생으로 지역문화 잇기
[박희진의 문화 사이]모두의 가치 …도시재생으로 지역문화 잇기
  • 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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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김형석 작가의 <백년을 살다보니> 중에서) 97세인 작가가 90년 넘게 살다보니 알게 되었단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숙명이기에 소멸되어가고 잊혀져가는 옛 것을 되살릴 방법만 찾아 헤매던 필자의 시간들이 잠시 멈추는 순간이었다.

옛 것을 대하는 우리들은 이러했다. 오래돼서 흉해진 옛 터는 부셔서 새로 짓고 낡으면 또 부셔서 새로 짓기를 반복하고, 새것이 되어 값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값 비싼 새 터에서는 살 길이 없어 또 다시 삶의 터전을 개척해야 헸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 유랑자(nomad)이기를 스스로 선택해왔다. 자본주의 속 이념의 변화는 옛것도 몸값에 따라 가치를 매겼고 그것이 소멸된 후에나 재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뒤늦은 후회를 해왔다.

도시 유랑((流浪)은 촌락과 마을을 없애고 작은 사회공동체부터 소멸시켜 담벼락을 높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닫게 하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높아진 담벼락 속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은 공동체 문화의 전통을 지닌 우리의 옛것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멸되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문화재 연구자인 필자의 시간이 멈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세월은 흐르는 데 시간은 붙잡지도 못하면서 우리 옛 것을 살리자고 몇몇이 머리 맞대고 앉아서 전전긍긍하며 뭣하겠는가. 스스로 그 가치를 모르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역의 문화 또한 소멸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이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대전시립미술관(관장 선승혜)에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방문했다. 이날 대담을 통해 춤토르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지역성’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음을 밝혔다.

‘모든 장소는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만들고 살았던 사람들은 바뀔지라도 일상에 남겨진 기억이나 경험에서 생겨난 감정을 통해 다시 그 역사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건물을 만들거나 보존하는 것.’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우리의 문화 가치를 재생하고, 도시의 브랜드를 키우기 위한 첫 걸음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사람과 자연이 주인이 되어 지역의 요소가 공존하고 지역민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발시대 전면 철거되었던 집들이 이제 또 다시 늙었다. 예전처럼 부시고 새로 지으면 될까. 하지만 지금의 도시 속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재생’이라는 정부의 정책아래 오래 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어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주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앞장서고, 나름의 전통을 찾아 숨을 불어넣는 일들이 일고 있다.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을 만들고,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주민들에게도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등 도시재생을 위한 사업 범위는 넓다. 무엇보다 지역과 주민들이 도시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함을 강조하고, 주민 스스로 지역에 애정을 갖고 자발적으로 지역에서 뭔가 활동을 하도록 마을 공동체가 그 땅의 주인이 돼서 삶을 계속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이것이야 말고 늙어가던 우리 문화가 더욱 단단하게 여물어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전통이라 불리는 옛 것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모두 늙어간다. 더구나 사람 수가 줄어들수록 도시의 노후는 더 빨라지는 법이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면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사람도, 도시도, 모두가 곱게 늙어갈 수 있도록 ‘함께 지켜봐줌’에 있다. 단단하게 여물어 익을 수 있도록  ‘모두’라는 공동체가 깊이 뿌리 내려야 가능하다.   

도시재생은 지역 공동체와 함께 문화를 만들고 지역성을 회복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원칙이 지켜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 수세대를 살아왔던 도시를, 앞으로도 수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로- 옷을 입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우리가 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가치 재생은 주민이라는 공동체가 문화를 함께 만들 때 길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