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우 문체부 장관 취임, 온화한 성품과 원만한 리더십으로 문체부 안팎 두터운 신망
박양우 문체부 장관 취임, 온화한 성품과 원만한 리더십으로 문체부 안팎 두터운 신망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9.04.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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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행정고시 23회로 공직 입문, 노무현 정부 마지막 문화관광부 차관 지낸 정통 문화관료

영국에서 예술경영 유학한 1세대로 대학교수, 학회장, 문화재위원, 비엔날레 대표로 활약

박양우 중앙대 교수가 오늘(3일) 오후 세종시 문체부 청사에서 제51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지난 달 26일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거쳐 1일 국회 문체위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임명안을 재가했다.

문체부 안팎에서는 온화한 성품과 원만한 리더십의 소유자인 박양우 장관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영국에서 예술경영을 유학한 1세대로 공직에 있을 때부터 뛰어난 정책 기획력과 전문성, 소통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던 박양우 장관에게 산적한 문화예술계 현안을 해결하는 데 어느 때보다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박양우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그 또한 역대 장관 후보자들의 문제들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상대평가를 할 일은 아니겠지만, 문화계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문화재,  관광, 공보, 뉴욕문화원장 등 주요 보직 두루 거친 정책통

1958년생인 박양우 장관은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행정학석사, 영국 시티대학교 예술행정학석사를 거쳐 한양대학교에서 관광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하여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문화체육부를 거치며 줄곧 문화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파견근무를 하기도 했다. 문화관광부 공보관, 관광국장, 주뉴욕한국문화원장, 문화산업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문화관광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쳤다.

2008년 3월 중앙대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중앙대학교 부총장,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를 지냈다. 더불어 (사)한국예술경영학회장, (사)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인천 제물포고 '에이스' 가정 형편으로 중앙대 전면 장학생 택해

1979년 대학 3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박양우 장관은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1년 반 동안 홀로 시골에서 광주 송정중학교를 다니다 마지막 비평준화 시험을 치르고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재가 모여든 제물포고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놓치지 않았던 박 장관은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제물포 에이스’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4남 2녀 중 넷째 아들이었던 그가 대학진학을 위해 택할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고려해 1977년 4년간 등록금 면제와 기숙사, 생활비가 주어지는 중앙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같은 조건으로 들어온 동기생이 9명이었는데, 1명을 제외하고 8명이 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박 장관은 원래 사법고시를 염두에 두고 법학과를 선택했지만, 법학은 너무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2학년 때 행정학과로 전과하면서 행정고시로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1979년 11월 행정고시에 합격한 박 장관은 당시 공직에 강한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1980년 신군부의 집권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고시반 선배, 동기들과 함께 휴전선 부근의 기도원에 들어가 깊은 사색을 하며 공직에 입문하지 않고 목사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민을 상담한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고시와 공직의 소임을 맡긴 것은 그만한 뜻이 있을 것이다. 목회자보다 사회에서 더 많은 일을 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거역하지 마라”고 설득하자 목회자의 뜻을 접었다고 한다.

장교 복무 특전 거부, 사병으로 복무 새벽보초 자임

박 장관은 고시 합격생이 누리던 장교 복무 특전을 거부하고 사병으로 입대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 편한 길만을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군대만은 졸병으로 끝마치고 싶어 경비교도대 2기로 입대, 김천감호소와 청송감호소, 성동구치소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박 장관은 “사병으로 입대한 덕에 ‘긴장과 엄격한 규율’을 배웠다. 모두가 열외를 희망했던 새벽 보초를 자임해 군 생활 3년간 빠짐없이 새벽 3시 반부터 5시까지 보초를 섰다. 생각해보면 극적인 요소가 없는 인생인데, 그나마 군 시절이 다이내믹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장관은 초등학교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고교 시절에는 100m 달리기를 11초대에 주파했으며, 공직 시절에는 문화관광부 직장야구단 구단주를 맡기도 했던 ‘스포츠 마니아'다.

박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모두발언에서 “문화계의 공정한 풍토가 자리 잡도록 하고, 문화예술인들이 안심하고 창작하는 환경을 만들고 기초예술을 키우는 데 노력하겠다. 더불어 문화경제의 활성화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방한 외래 관광객 2천만 명 시대를 목표로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남북 문화교류를 더욱 튼튼히 이어가고, 무엇보다 투명하고 열린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하는 문화행정을 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체육계의 불공정한 비리와 관행 정상화, 문화예술과 콘텐츠 시장에 창작자 대우 증진, 예술인 복지와 창작 환경 개선, 첨단기술을 문화와 융합하여 새롭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 시장 구축, DMZ 평화관광 등 매력적인 관광자원 발굴, 남북문화교류의 지속적인 확대, 2020년 도쿄올림픽 공동출전 준비 등을 최우선 실행과제로 설정했다.

문화계 산적한 현안 해결도 시급, 문화계 기대 커

문체부 내부 출신이 장관으로 임명된 건 유진룡 장관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역사상 이번이 두 번째다. 이제는 부처의 수장이 돼 친정으로 복귀한 박양우 장관의 업무력이 관건이다. 당면한 영화계의 현안과 체육계 개혁이 시급하다.

또한 지난 도종환 장관 시절 완전히 마무리 하지 못한 문화계의 블랙리스트 문제와 적폐청산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바람도 크다.

동시에 순수예술, 관광산업, 문화산업, 문화교류 등 문화 전 분야의 문화비전 2030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실행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행복에 있으며,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힘을 보태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 박양우 신임 장관의 앞으로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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