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항일의병장 척암 선생의 유물이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거쳐 마침내 독립된 고국의 품에 안겼다.
문화재청은 을미의병 시 안동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한 척암 김도화(金道和,1825-1912)의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 1장을 독일에서 지난 3월에 매입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번 환수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또한,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까닭에 미처 포함되지 못했던 세계기록유산의 일부를 되찾아왔다는 점도 뜻 깊다.
이번에 돌아온 <척암선생문집책판>은 「척암선생문집」을 찍어낸 책판 1,000여 장 중 하나이며, 권9의 23~24장에 해당한다. 척암선생의 책판은 현재 20장만이 한국국학진흥원(이하 진흥원)에서 관리되고 있으며, 이번에 매입한 책판까지 합치면 총 21장이 전해지게 됐다. 진흥원에 소장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의 일부이기도 하다.
「척암선생문집」은 척암이 생전에 남긴 글을 모아 그의 손자 김헌주(金獻周) 등이 1917년 편집·간행한 것으로, 본집 39권 19책, 속집 13권 6책으로 구성·인출된 문집은 현재 진흥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하고 있다.
이번 <척암선생문집책판>은 지난 2월,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외 경매에 출품된 한국문화재 사전점검(모니터링)을 통해 독일의 한 작은 경매에서 발견한 것으로, 당시 출품된 아시아 문화재 500여 건 중 유일한 한국문화재였다. 이 책판은 오스트리아의 한 가족이 오래 전부터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재단은 유교책판을 전문적으로 연구·관리하고 있는 진흥원과 긴밀히 협의해 매입에 성공했다.
척암 김도화는 영남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의병장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인 석주 이상룡의 임청각(臨淸閣) 문중의 사위 가운데 한 명으로, 퇴계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에 힘쓰며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1895년의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촉발되자 안동통문(安東通文)을 각지로 보내고 1896년 1월 안동의진(安東義陣)의 결성을 결의했다. 같은 해 3월, 2차 안동의진에서는 71세의 나이에 2대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지휘부를 조직하고 격문을 발송하여 의병 참여를 호소했다.
1896년 9월 안동의진이 해산하고 을사늑약(1905년)을 거쳐 1910년 한일 강제병합에 이르자, 척암은 자택의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고 써 붙이고 상소를 올리는 등 글로서 일제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알렸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그의 활동은 높이 평가되어 1983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에, 1990년에는 대한민국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