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집 낸 구청장 "시어머니 떡도 맛있어야 산다"
칼국수집 낸 구청장 "시어머니 떡도 맛있어야 산다"
  • 양문석 기자
  • 승인 2009.10.0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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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한 바지락은 오물오물~ 매콤향긋한 아구찜 한입에 저무는 가을밤...동대문맛집 ‘동대문의새아침’

제법 찬기운 가득 품은 바람을 시샘이라도 하듯, 한낮 태양은 여전히 기세 등등하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연인들은 옷깃을 여미며 입맛?을 다시고, 미식가들은 풍성한 식욕에 입맛을 다시는...여하튼 입맛나는 계절이 왔다.

▲정흥진 대표(전 종로구 구청장)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 동인교회 방향 모퉁이에 자리잡은 ‘동대문의새아침’에서 정흥진 대표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한다. 유명 맛집이라고 하기엔 평범하기만한 첫인상. 아마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지나치다 보이는 길가의 많은 식당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줄은 서지 않아도 된다. 1,2층 총100석으로 자리도 꽤 넓다.

행여 호기심 많은 사람이 무심코 상호만 봤다면 아침 식사나 새벽 야식을 만드는 곳이 아닌가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좋다. 그런 의문 자체가 잡념이다. 맛이 있는 곳이라면...

일반적으로 ‘맛집’이라면 내세울만한 음식 하나로 이름 붙여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동대문새아침의 정흥진 대표(전 종로구 구청장,사진)은 스스로 본인의 가게를 맛집이라 부르길 주저한다. “어떤 메뉴가 제일 유명한가요?”라고 묻자, 바로 손사래를 친다.

이유인즉, 메뉴 가운데 도무지 어떤게 최고인지 판가름을 내지 못하고 있단다. 정흥진 대표는 첫마디가 “시어머니 떡도 맛있어야 사는 거 아닐까요”라며 전통, 분위기, 가격 등 유명 맛집의 조건 가운데 맛이 최고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만큼 맛에 있어서는 자부한다는 말이 아닐까.

소박히 담아 낸 가을바다
바지락칼국수는 이집의 일등 점심 메뉴다. 마치 일상을 끝내고 돌아온 통통배가 길게 늘어진 하얀 백사장에 잠든 모습이랄까. 살오른 바지락과 보기에도 쫄깃한 하얀 칼국수 면발이 뒤엉켜 낸 바다의 풍요로움. 수북히 쌓인 바지락이 주인장의 후덕한 인심을 보여주며, 모락모락 피어오른 김 속에서 가을바다 향이 그대로 전해진다.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인 대표 메뉴 바지락칼국수. 바지락의 선도를 으뜸으로 친다.

초가을 찬바람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만큼 코 끝에 걸리는 따뜻함이랄까. 첫 맛은 말 그대로 바다의 풍부함이다. ‘훅훅’ 불어가며 한젓가락 들어보면 오로지 천연 재료만을 고집하는 주인장의 꿈이 입안 가득 울려 퍼짐을 맞닥뜨리게 된다. 오래된 친구가 더 친근해지는 느낌이랄까. ‘후루룩’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진한 국물 맛의 비결은 오로지 바지락의 신선함과 양으로만 만들어 낸단다. 믿거나 말거나? 쫄깃한 면발은 여름 내내 잃어버렸던 식감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싱싱한 바지락은 1차 해감을 마친 후, 자체 수족관에서 2차 해감하는 과정을 통해 이물질이 전혀 없어 깔끔함을 더한다. 정읍에서 직접 공수해 온 고춧가루로 만든 칼칼한 김치 한 조각이면 가벼운 지갑으로 호세를 부릴 수 있다. 가격은 5000원.

퇴근길, 참새가 방앗간은 지나가도...
어느 나라든 가을밤엔 달콤한 연인들만큼이나 술꾼들로 넘치기 마련. 그대 진정 외롭고 허전하다면 이리로!
▲맛있게 매운 아구찜. 얼큰하고 진한 양념맛이 자꾸만 손과 입을 바쁘게 만든다.

점심의 바지락칼국수가 고요한 바다였다면, 어슴프레 해가 지고 난 후의 이집 아구찜은 그야말로 폭풍 몰아치는 바다라고 해두자. 뽀얀 여심의 속살마냥 자태를 뽐내는 아구는 구름을 씹듯 담백하게 혀끝에서 맴돌고, 이 집 특유의 양념은 손맛을 더해 폭풍으로 몰아칠 것이다. 혹시라도 매운맛에 조난 당했다면 직접 담근 시원한 동치미 한사발 속시원히 들이켜 보자. 짜릿함이 발끝까지 밀려 흐른다.

천연 재료만을 사용해 그런지 매워도 정말 맛있게 맵다. 담백함과 매콤함의 조화. 맵기만 맵고, 짜기만 짰던 순간적인 맛과는 차원부터 다르다. 먹을수록 손이 더가는, 깊은 정이 베어 있다. 정흥진 대표는 “소문이 조금씩 돌아서 아구찜으로 유명한 서울의 모 음식점 단골들이 서서히 발길을 돌리고 있어요”라고 귀뜸한다.
▲주 메뉴에 '사모님'이 직접 담궈 내 놓은 정갈한 김치는 그 맛도 으뜸이다.

음식 맛도 주인의 성격을 닮나보다. “원래부터 떠들고 알리고 이런걸 잘 못해요.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맛집 취재 요청이 왔지만 고사했습니다”라는 말처럼 아구찜의 맛 역시 차분하고 속깊다. 젓가락 속도가 빨라지더니 이내 큰 접시 하나가 비워진다. 가격은 25,000~40,000원(소,중,대).

“오다가다 아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사랑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구청장이란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끔 도와준 많은 주변분들과 구민들께 맛있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정으로 보답하고 싶었구요” 라는 소박한 마음을 주변에서도 인정해 처음 개업 당시 유명 요리사들의 많은 도움과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특히 아구찜의 경우 직접 비법을 전수 받기도 했단다.
▲ 여러가지 과일을 갈아 비빔냉면의 소스를 만들어 매콤달착지근한 맛. 면발이 쫄깃쫄깃하다.

올 여름엔 냉면도 별미였다고 한다. 사태와 다시마, 양파 등을 푹 우려내 동치미 국물을 넣은 시원한 육수는 냉면 맛에 정통한 미식가들조차 엄지를 치켜세울만큼 은은했고, 온갖 과일과 정읍 고춧가루로 맛을 낸 양념과 반달만한 배 한조각으로 꾸며낸 진홍빛 비빔냉면 역시 향긋한 매콤함으로 더위를 날려 보내기에 충분했다.

과일 특유의 상큼함이 은은하게 여운으로 남는게 특징이다. 혀끝의 매콤함이 생각보다 오래 기억된다. 땀 뻘뻘 흘리며 먹었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년 여름을 기약해 본다. 각각 5000원.

“얼마전 돼지인플루엔자로 인해 지금은 중단된 메뉴, 한방수육 맛은 고건 전 총리마저 감동에 빠뜨렸답니다. 이외에도 손학규, 이인제 등 많은 저명한 분들도 메뉴마다 찬사를 보내실만큼 음식 맛에 있어선 자신 있습니다”며 “가족들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천연재료를 고집한게 젊은 사람들의 입 맛엔 맛지 않는 등 어려운 점도 있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에 빠져드는걸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라며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드는 사모님 칭찬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전직 구청장의 위상에 걸맞게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비롯 유명 정치인들의 사인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또한 식당 내부에 도배돼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맛에 대한 찬사와 싸인은 앞으로 ‘동대문의새아침’이 열어 갈 역사를 미리 보여준다.

이외에도 해물탕과 해물찜도 싱싱한 재료와 천연 양념만으로 맛을 내, 술꾼은 물론 입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단다.
▲건너에 '흥인지문'(동대문)과 동대문 패션상가 건물들이 바라보인다.

어느새 동대문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길건너 패션타운의 화려한 조명이 하나 둘씩 도시의 가을밤을 수놓을 즈음, 한껏 부른 배를 안고 인근 의류쇼핑센터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옷 한 벌 선물할 수 있는 여유마저 묻어 있는 곳, ‘동대문의새아침’. 어느 누가 식욕을 욕심이라고 할 것인가...(문의 02-745-0585)

서울문화투데이 양문석 기자 msy@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