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이 아직 살아있는 곳, 영주ㆍ안동을 찾아(2)
성리학이 아직 살아있는 곳, 영주ㆍ안동을 찾아(2)
  • 정승희(국립극장전문가교양강좌 수강생, 주부)
  • 승인 2009.10.1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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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전문가교양강좌생들의 대한민국 답사기

▲부석사 극락전 불상
소수서원에서 조금만 차를 타면 부석사가 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의 길은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견물생심이라고 따서 아삭하고 깨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신라 문무왕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마치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사랑스런 이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의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서 보는 소백산이 너른 앞뜰인 양  들어와 있는 풍광은 가슴 밑에서 피어오르는 희열이었다.

숨이 막힌다. 땅을 박차고 떠오르는 바위처럼 내 의식도 어느 순간 그처럼 변할 수 있을까? 부석을 보면서  나도 뛰어오를수 있기를 갈망해 본다. 통일신라 대표 석등으로 꼽히는 무량수전 앞 석등은 빼어난 조각 솜씨와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다. 무량수전은 고색창연한 고풍스러움과 배흘림기둥으로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아름답다.

의상대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는 조사당은 순수한 고려 건축 양식이 잘 보존돼 있다.  세 가지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고 두 개가 더 있다는데 보지 못해 아쉽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안동으로 길을 재촉한

다. 앞뒤 아담한 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낙동강 줄기가 흐르고 백일홍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병산서원은 꿈꾸는 선계인 듯 싶다.

서애 유성룡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강줄기가 바라보이는 누각이 개방되어서 올라가 볼 수 있었다. 공부보다는 음주가무에 더 어울릴 듯싶다.  혹시 나의 생각이 누가 될까 조심스럽다.

만개한 배롱나무(백일홍)의 화려함은 예쁜 여자 같다.  서애 선생이 살아생전 배롱나무를 많이 좋아하셨단다.   오늘 안에 하회마을까지 답사를 끝내려니 꽃과 건축물과의 교감도 나눠보지 못해 많이 아쉽다. 길을 재촉한다. 하회마을에서는 우리가 셔틀버스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흔히들 하회마을 사진을 보자면 낙동강이 휘돌아가는 속에 하회마을이 있는데 사진 찍은 곳은 서애 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부용대 기슭의 옥연정사에서 찍은 것이다.

마을은 서애에서 시작해 내리 9대에 걸쳐 벼슬길을 한 풍산류씨의 집성촌이다. 동네는 서애의 형이 살던 <양진당>과 서애가 살던 <충효당>이 이웃하고 있다.

이렇게 온 나라가 알고있는 명망가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되었나 궁금해서 책을 뒤적였더니  서애의 6대조 할아버지부터 3대에 걸쳐 불쌍한 이들을 보살피는 적선을 한 공덕으로 되었다고 한다. 나도 지금보다 더 많이 이웃과 직원 모두를 보듬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잡는다.

▲도산서원 경내
충효당의 현판은 화려한 전서체로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조선중기 명필 미수 허목의 친필이다.

밤이 다 되었다. 자, 이제는 자러 가야지. 오늘 하루 고상한 것 ,아름다운 것, 신기한 것들을 너무 많이 보고 들었더니 뇌에 과부하가 걸려 터질 지경이다. 농암 이현보 선생 종택에서의 밤은 어떨까? 기대된다. 400년 이상 된 고택이란다.  알고 보니 건물은 옛것 그대로이나 안동댐 때문에 지금의 터로 이전해왔단다.

맑은 공기와 흙벽집의 기운에 전날밤에 한 와인의 취기로 단잠을 자고 나니 새벽안개가 산허리를 휘감아 놀고 있다. 평소대로 아침을 먹지 않았다면 놓쳤울 시골 김치냉장고 출신의 김장김치가 우리집 발코니 김치냉장고표와는 다르다 . 잘 익은 맛이 일품이다.  안 먹었더라면 후회할 뻔했다. 

안동은 조선시대 사립학교인 서원이 가장 많고 전국 유일하게 <안동학>이라는 지역학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도산서원이 그 대표격이다. 도산서원은 다른 서원과 느낌이  약간 달랐다. 절도 있는 생활과 열심히 하지않을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한마디로 빡세게 해야 살아 남을 것 같다. 지세 때문인가?

구조는 다들 비슷한 것 같다.  강학당을 중심으로 기숙사, 도서관, 관리동, 맨 위쪽으로 사당 등.

이곳은 다만 퇴계 선생 생전의 도산서당과 사후의 도산서원 현판이 있는 전교당(강의실)이 따로 있다. 가장

▲홍의제 툇마루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특별한 곳은 서원 맞은편의 시사단이다. 1792년 정조 임금이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일하게 지방에서 과거를 보았던 장소이다. 7000여 명의 지원자 중 단 11명만을 선발하였다니 그 경쟁률이 지금의 고시보다 더하지 않은가?

이제 남은 곳은 봉정사뿐이다. 어서 가보자. 영국 여왕님이 오셔서 대표적 사찰로 구경하고 가신 곳이다.  고려 공민왕 때 지어진 건축물부터 영산각까지 고건축의 살아 있는 교본이다. 절집 식구들의 일 년 양식으로 땅속에 묻어둔 김치독이 초가지붕을 쓰고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며 놓여 있다. 보기 드문 풍경이다.

대웅전 본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한다. 우리네 삶에 대한 갈구와 이 나라에 대한 걱정을  말씀드렸다.  꼭 들어주실 것 같다. 사찰 입구의 정갈한 모습도 내 맘에 든다.  산사 입구느 다 이랬으면 좋겠다.  기운차게 돌아다보니 집에 갈 때가 됐다. 빨리 집에 가야겠다. 안동  안녕!

정승희(국립극장전문가교양강좌 수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