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反 넥타이
데스크칼럼- 反 넥타이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10.1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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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예절은 크게 간단한 것

양반들의 위선적 행위를 풍자한 우리나라 고전소설 <양반전>에선 땀이 비오듯 하는 삼복더위에 갓 끈 메고 버선 신고, 의관을 정제한 양반이 팔자걸음에 부채질하며 대청마루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옛날 선비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정제한 뒤 글 읽고, 묵상하는 것이 수양의 한 방법이자 일상생활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재산 깨나 물려받아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만한 양반의 후예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가난한 선비라면 마땅히 체통이고 뭐고 다 던지고 직접 농토를 일구며 살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였다.

또한 가족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의 실용적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대 양반들은 워낙 외관과 형식, 체통을 중시하는 고지식한 문화에 젖어 있었다. 양반이라면 손에 흙 묻히는 일도 피했고, 배고파도 티를 못 냈으며, 덥거나 추워도 함부로 벗거나 불을 쬐어서도 안되었다. 고전소설 <양반전>은 그런 양반들의 비실용적 허위의식을 풍자하려 했던 것이다.

조선 초기 유명한 청렴 정승 유관 선생(1346-1433)이 가난하게 살며 직접 채소밭을 가꾸었다거나,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이 어느 한 여름 배움을 청하러 온 두 제자 중 의관정제하고 격식을 따진 제자보다 옷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든 제자의 인물됨을 더 높이 쳤다는 일화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옛 양반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선의 양반들은 의관 갖추고 형식과 절차와 무게를 중시하는 매너리즘을 지나치게 숭상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극단적인 예로 개성에 사는 한 선비가 한양구경을 왔다가 우연히 한양에 사는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접했다. 요즘 상식이라면 한양 온 김에 문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일이다. 그러나 이 선비는 그건 예의가 아니다 라며, 개성 집에까지 갔다가 다시 의관을 갖춘 뒤 문상만을 위한 한양 행차를 따로 했다고 한다.

이런 고지식한 매너리즘은 1894년 일제에 의한 갑오억변 이후 단발령이 있고 나서야 큰 변화를 맞았다. 내 머리카락을 자르려거든 내 목을 자르라는 식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어쨌든 단발령은 한국인들의 오랜 복식생활과 매너리즘 변화에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한국인들의 유전인자 속에 각인된 오랜 형식주의적 사고 패턴을 쉽게 바꾸지는 못했다. 갓과 도포와 버선대신 양복과 넥타이와 구두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신사라면 당연히 양복과 넥타이와 구두를 갖춰 입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이후 100여 년간 우리 의식을 지배해 왔던 것이다.

특히 넥타이는 신식문명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중상류층 사회를 규정하는 ‘화이트 칼라’층의 상징적 복식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식, 장례식, 취업 면접장은 물론 웬만한 행사장과 직장생활 현장에서 넥타이는 의당히 착용해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심지어 비즈니스 맨이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사람을 만났다가 아래위로 훑어봄을 당하거나 퇴짜를 맞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이런 넥타이 착용에 대한 인식변화가 최근 사회변화의 중요한 기류로 자리 잡았다. 수년 전부터 대기업에서부터 여름철 넥타이 안 매기 운동이 일어나더니 지난달엔 마침내 문화체육관광부가 전 직원들에게 예절에 크게 어긋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넥타이 없이 연중 자유롭고, 편안한 복장을 착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다.

사회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 들여온 보수적 집단이자 권위주의를 중시해 온 공무원 사회의 이 같은 변화는 단순히 ‘복식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짓눌러온 외형주의, 형식주의, 권위주의적 거품과 폐쇄성을 넘어 개방적이며, 현실적이며, 자유분방한 가운데 창의력과 내실위주의 실용사회로 가자는 분위기가 보편화 되어 감을 의미한다.

이웃 일본에선 이미 2005년 무렵 여름철 에너지 절감을 위해 추진한 ‘쿨비즈’(Cool Biz)운동으로 7000만 Kh의 전력(24만 가구가 한달간 상용할 수 있는 양)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자, 겨울철에도 넥타이를 위한 와이셔츠 대신 내의나 두터운 스웨터를 입고 일할 것을 권장하는 ‘웜비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매일 넥타이 매는 직장인은 전체의 6%밖에 안된다는 게 기정사실이다. 한국의 직장인들이 미국에 출장갔을 때 정장에 넥타이 매고 다니면 수행하는 현지인들이 매우 부담스러워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넥타이 맨 이는 오히려 관광객이라는 표시가 나서 범죄의 표적이 된다고도 한다.

또 일본에선 넥타이를 풀자 캐쥬얼 복장과 벨트, 구두, 티셔츠 등을 계절에 맞게 사느라 소비진작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넥타이가 신종 플루 전염 경로가 되고 있다는 의혹마저도 받고 있다. 깨끗이 관리된 네타이를 목에 매고 다니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제 넥타이에 얽힌 우리 근 · 현대 복식문화와 비즈니스 패러다임도 바뀔 때가 됐다. 2500년 전 동양고전인 주역에 이미 이르기를 “대례는 대간이다(大禮大簡)”라고 설파했다. 큰 예절은 크게 간단한 것이며,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비즈니스이자 소탈한 리더쉽의 요체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