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디자인 정책, 자축말고 돌아봐야 할 때
서울시 디자인 정책, 자축말고 돌아봐야 할 때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10.16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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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보다 디자인 강조, 껍데기 바꾸는 수준될지도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제품이나 산업에서 기능과 기술이 우선시 되어왔으나, 기술이 비슷해지자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선택받는 시대가 됐다. 많은 국가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디자인, 창조적인 디자인을 내세우며 나날이 그 중요성이 부각됐고, 어느새 ‘디자인’이 21세기 전세계의 공통언어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한 서울시도 2년 전 민선 4기 출범 직후 2007년 4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발족, 짧은 기간동안 많은 계획들을 만들어 쏟아냈다. 더불어 지난해 10월 서울이 ‘세계 디자인 수도(WDC)’로 선정되면서, 그 명칭에 걸맞은 도시가 되고자 여러 사업들을 추진해 몇 년사이 서울의 모습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이 첫 번째 도시로 선정된 ‘세계 디자인 수도’는 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재창조하고 시민들의 경제, 문화적 발전과 개선을 꾀하고자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와 국제디자인연맹이 창안한 제도로, 2년마다 디자인 잠재력을 가진 도시가 지정된다. 서울은 2010년부터 세계 디자인 도시의 지위를 부여받아 서울의 도시 브랜드를 세계화하고 이에 따라 디자인 산업이 활성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서울시의 디자인 사업들을 보고있노라면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디자인 사업들이 시행되기에 앞서 먼저 심도 깊은 논의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야 하지만 서울시는 시민들과의 어떠한 소통도 없이 사업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세우고 있는 디자인들이 시민들과의 소통보다 특정한 취향을 일방적으로 반영한 것을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는 빠른 시간 내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인한 조급증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기능적인 면보다 디자인이 강조된 사업들은 단순히 껍데기만 바꾸는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서울시의 성급함과 시민들과의 소통부재는 디자인 정책 중 하나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에서 나타난다.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노점상과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통보로 철거를 진행하고, 동대문 운동장의 역사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 사업 시행은 그야말로 보여주기에 급급한 정책이라는 질책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조성을 목표하면서 동대문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 건축가의 디자인은 아무리 세계적인 건축가라고 해도 시민들을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서울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울시민들이 많이 찾고 좋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건만, 역사성은 사라지고 디자인 산업의 기능만 살린 이곳을 얼마나 많은 시민이 좋아할지 의문이다. 역사를 뒤덮으며 세워질 최첨단 양식의 건축물이 모두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들은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걷고싶은 거리를 만들겠다며 지난해 9월 공사를 시작해 마무리를 앞둔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사업’ 또한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란 어려울 것 같다. 10개의 시범거리가 어지럽게 널인 각종 시설물들을 통합적으로 디자인하고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일괄 적용돼 거리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통일되기 때문이다.

이는 10개의 거리가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에 따라 같은 모습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짧은 기간동안 만들어진 수많은 가이드라인이 디자인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인 디자인 활동을 규제한다는 것이다. 도시 전체의 경관을 창의적 발상으로 디자인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도시 전체를 통일된 모습으로 획일화 시키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특징없는 같은 색만 남게 되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의 이같은 우려에도 디자인 수도 서울을 향한 서울시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서울시가 최근에는 ‘시민을 배려하는 돈이 되는 디자인’을 하겠다며, 제2기 ‘디자인 서울’ 정책을 내놓았다. 2011년까지 1181억원을 투입해 ‘디자인산업 4대 거점지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마포 홍대지구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DDP)지구,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강남 신사동지구를 지구별 특성에 따라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할 계획이란다.

이미 많은 사업들이 진행됐고,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결과물에 대해 비난과 질책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그동안의 사업과 앞으로 시행할 사업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기적 성과에 자축하고 가시적 정책을 내세우며 서둘러가기보다는 하루아침에 디자인 도시를 만들 수는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잠시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 서울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서울시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