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자 인터뷰]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자 인터뷰]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 이은영
  • 승인 2019.04.23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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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일하는 이유, ‘공간의 역사’ 지키자는 사명감이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문화유산 많아, 가치있는 일에 동참 바란다”

문화가 있는 곳, 문화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인물이 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혹자는 그를 ‘문화계의 마당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인들과 교류하고 있고 문화가 숨쉬는 공간마다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기에 이런 별명이 붙여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격려 하나하나 속에 문화의 발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출판박물관 설립자로 출판계의 발전에 공헌한 그는 지금 문화유산을 국민이 보존하는 ‘국민신탁’ 운동을 이끌고 있다. 공간의 역사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역사도 사라진다는 그의 사명감은 무관심 속에 없어질 뻔한 우리의 유산을 보존하는 가장 큰 힘이 됐다. 어쩌면 우리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존재조차 모를 수 있었던 귀한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서울문화투데이가 올해 김 이사장에게 ‘특별대상’을 수여한 것은 평생을 문화 발전에 헌신해 온 것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이 짧은 인터뷰로 그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역사 유물 보존을 향한 그의 노력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문화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왜 본지가 그에게 ‘특별대상’으로 존경을 표했는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3월의 오후 이상의집에서 김회장을 만났다.

▲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이상 흉상 옆에 선 모습

올해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하신 것을 먼저 축하드린다. 수상을 그동안 사양하셨다가 이번에 받으셨는데 시상식에서 "묘비명에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수상'은 꼭 넣으라"는 인상적인 소감을 남기셨다(웃음)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만큼 이 상이 권위가 있고 서울문화투데이가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권위가 있다는 것은 발행부수가 많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에서 나온다. 그 시대에 어떤 이슈를 다루는가, 그 시대를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신문이다. 서울문화투데이가 바로 문화의 가치를 이끌어가는 신문, 언론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기조를 잘 지키고 있다.

권위가 있다는 노벨상이나 퓰리처상도 상금이 있다고 가치있는 것이 아니잖나. 가치있는 신문을 지향하길 원하고 이 권위있는 상을 내가 받는다는 의미보다는 앞으로 수상자들이 '아, 이 상은 받을 만해'라고 인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말에 담았다.

사실 그 동안 상을 사양한 것도 그만큼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이 권위가 있으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한 것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다 상의 권위를 인정하고 또 심사를 하시는 분들도 권위가 있다. 가치 있는 상이고 그 상을 받았다는 것이 기쁘다.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이 1만400명까지 늘어났다

회원 확보에 전력을 다했다. 아무리 없다고 생각해도 찾다보면 나오게 된다. 회원을 안 하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땐 내가 싹 빠져버린다(웃음). 처음부터 기쁜 마음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음에도 없으면서 마지못해 하다가 1년하고 그만둘 거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나중에 ‘미안하다. 미처 몰랐다’고 다시 가입하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때는 냉정하게 돌아서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회원이 된 사람들 대부분이 다 유지하고 있고 그렇게 회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아예 13만명으로 늘리자고 이야기하더라(웃음).

▲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보성여관 매입’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고 울릉도 가옥, 이상의집 재개관 등을 이끌었다.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이 있다면

지금 군산과 마산 쪽으로 몇 가지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현재로서는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있는 곳을 잘 관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려한다. 인력이나 조직상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최근 적산가옥 보존 여부를 놓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근대 가옥들이 보면 일제 때 만들어진 것 밖에는 없다. 100년 이내의 건물을 보면 일제 시대 건물 외에는 거의 없다. 새마을운동 등을 거치면서 초가집이 많이 없어지고 한국식 집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도시에 있는 적산가옥은 주로 상가가 형성됐던 곳이고 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대로 사용했다. 무조건 없애기 어려운 것이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완전한 일본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일본식 건물임에는 분명한데 현 시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보존해야하는 게 정확한 것 같다. 특히 근대 산업의 발전사 등도 살펴보려면 이것도 하나의 역사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지금 서울시 도시재생을 보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덮어놓고 개발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적절하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골목도 살릴 것은 살리고 건물들도 살릴 것은 살려야한다. 덮어놓고 싹쓸이로 없애는 방식은 지났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해야한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뒤 폐쇄됐던 워싱턴 소재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이 지난해 다시 문을 열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큰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해외문화유산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해외는 이제 우리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는 국외재단이 생기기 전에 문화유산신탁에서 한 것인데 그 이후 재단이 생기면서 해외 업무를 넘겼다.

▲ 워싱턴 소재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문화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서울에 중구에 오래된,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2층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모 기업의 소유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업이 다른 기업에 그 집을 팔려고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고위 간부가 마침 내하고 친한 분이라 그에게 ‘팔기만 해봐라. 안 그러면 작살낸다’고 했다‘(웃음). 그럼에도 회사 차원에서 매각을 하려고 해서 ’언론에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놔도 기업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결국 한 매체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 기자가 단독으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 기자가 바로 정재숙 현 문화재청장이다(웃음). 그렇게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고 내가 문화재청에 바로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야해서, 그렇게 보존한 적이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내가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인데 종로구 부암동에 동네 주차장을 만드는 것을 막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곳이 어떤 곳이었나 하면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였다. 그 곳이 주차장으로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종로구청장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우리 후손들이 보존해야할 장소에 주차장을 만드는 것이 과연 문화1번지 종로구가 할 일이냐고 따졌지. 결국 종로구가 항복을 했다. 내가 만약 문화신탁 이사장을 맡지 않았다면 이 정보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고 나 또한 이렇게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문화공간을 지켜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곧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이 왜 되어야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시간의 역사만 역사라고 보는데 공간의 역사도 중요하다. 기록으로 기억을 살리기도 하지만 공간, 공간에 남아있는 흔적도 역사가 된다. 그리스 로마의 유적 없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간다고 생각해보라. 그 때의 역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숭례문, 경복궁, 창덕궁, 종묘가 남아있지 않고 표지판만 있다고 생각해보라.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기둥 하나라도 남아 있느냐 없느냐에 큰 차이가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유형, 무형문화재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공간의 역사를 지키는 사명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명감이 내가 지금도 이 일을 하는 이유고 이 사명감이 있기에 우리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정부나 지자체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관심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문화유산이 이렇게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독립문이 제자리에서 이전되고 근대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증권거래소도 사라졌다. 이렇게 공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한다.

이사장을 맡으시면서 회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늘 회원신청서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어느 자리에서건 회원 가입 독려를 잊지 않는다.(웃음) 신탁회원이 돼야 하는 당위성을 말씀해 달라.

영국에서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시민들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친화시켜 국민 전체의 몫으로 확보하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도 국민 모두의 이름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꿀 역사적인 소명과 책임이 있다. 그래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의 역할이 중요하고 회원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다.

5천원~1만원이면 커피 한 잔,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돈이다. 한 달에 이 돈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낸다면 이 금액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돈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지켜내고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킬 수 있다. 내가 문화유산국민신탁에 있으면서 지켜냈던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나의 가장 큰 자랑이다. 그 자랑스러움을 회원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여기에 회원이 되면 4대궁, 조선왕릉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보성여관 전시장 무료입장 및 할인혜택 등 각종 혜택도 있다. 우리 문화를 사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몇 해전부터 해마다 문화신탁회원의 날 문화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회원들에 대한 감사의 날이자, 회원들간의 우의를 다지는 날이다. 어떤 분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지를 서로 알고 자부심도 느끼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회원들에 대해 가지는 존중의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행사에 우리 소리와 클래식,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회원들의 다같이 즐기는 자리가 되는 것이 또한 뜻깊다 할 것이다.

오늘 인터뷰 장소를 집무실이 있는 덕수궁 중명전이 아닌, 이상의집으로 정하셨다. 이상의집에 특별히 애정을 많이 가지시는 것 같다.

1972년도에 내가 운영하던 삼성출판사에서 이어령 선생(초대 문화부 장관)을 주간으로 모시고 문학사상을 창간했다. 그 창간호 표지화가 구본웅 화가가 친구인 이상을 모델로 그린 <친구의 초상>이 실렸다. 그 인연이 참으로 귀하다. 그래서 이상의집은 더욱 정감이 있고 애착이 간다.

끝으로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를 위해 한말씀 해달라.

‘문화투데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투데이’ 즉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바로 지금이다. 독자들이 이 신문을 매일 매일 보면 하루하루 꼬박꼬박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데이’의 의미 부여를 확실히 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데 그 가치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