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 '서울책보고' 영세 헌책장들과 연대해 기존 헌책방과 독자연결
[테마기획] '서울책보고' 영세 헌책장들과 연대해 기존 헌책방과 독자연결
  • 이동식 언론인/저술인
  • 승인 2019.05.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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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책보고'를 다녀오다 - 헌책방 홍보, 구매 플랫홈 역활 기대

여의도의 벚꽃은 활짝 피어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는 서서히 자신의 임무를 다른 꽃나무에게 넘기려는 즈음이었다. 4월의 둘째 주 주말, 2호선이 한강을 건너는 잠실철교를 따라 한강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잔뜩 호기를 부렸던 우리(집안 청년 4명)이 현대아산병원 쪽 뚝방길에서 그때 막 활짝 핀 벚꽃들을 발견하고 잠시 황홀해 하다가 잠실나루역으로 가기 위해 경사길을 내려왔는데, 전에 보이지 않던 회색의 긴 단층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지? 전에 이런 것이 없었는데?”
라며 건물을 따라 가보니 정면 쪽에 작은 유리문이 있고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서울책보고’

가만 있어보자. 이게 무슨 말인가? 한글로 쓰여 있으니 글자 그대로 생각하면 ‘서울에서 책을 보고...’인가? 아니면 ‘서울의 귀중한 책을 담은 보물창고’인가? 그 둘 중의 하나이거나  아니면 두 가지 뜻을 다 담았는지도 모르겠나. ‘서울책보고’에 보물창고를 뜻하는 한자 寶庫를 굳이 병기해놓지 않고 있으니 그 두가지로 다 풀 수가 있을 것 같다. 한자시대를 넘어선 한글시대의 멋진 발명품이다.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주말을 맞아 가족단위로 어린이들과 함께 많이 와 있는데 왼쪽편으로 길게 터널이 보인다. 아치형 통로를 가운데로 길면서 약간은 구부러지게 뚫어놓았는데 벌레 형상이니 이곳에 들어와 책벌레가 되라는 뜻인가? 그 옆으로는 갈비살처럼 서가를 세웠고 서가에는 책들이 꽉 차있다. 서가가 약간 높기는 하지만 다 1층 이어서 손이 다을 수 있고 모두 쓰던 책들이다. 새로 생긴 책의 보물창고인 셈인데 왜 책들이 새 책이 아닐까?

여기가 국내 최초 공공 헌책방이다. 2주 전인 지난 3월 27일에 문을 열었단다.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이 곳은 비어있는 대형 창고가 있던 곳인데 이 창고를 서울시가 리모델링을 해서 큰 책방으로 만들고 그 안에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지켜온 동아서점, 동신서림 등 25개 헌책방이 참여해 소장한 책들을 각 서점별로 모았단다. 키 큰 서가를 빼곡하게 채운 책들은 대략 12만여 권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서가를 보니 한쪽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옛 동화책이 있고 다른 쪽에는 유명 문학작품의 초판본,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희귀한 책까지 전시되어 있어 그야말로 책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매장의 크기는 1,465㎡이고 지상 1층으로만 되어 있다. 그만큼 길고 넓다. 아직도 미터법으로 보면 크기가 잘 짐작이 되지 않는데, 옛날 식으로 말하면 400평이 조금 넘는 면적이다.  개관 특별전시로 1950년대 교과서가 진열되어 있다. 그 시절이라면 나도 보지 못하던, 나의 전 세대 교과서들이다. 당시의 인쇄 출판의 사정을 반영한 듯 종이의 질이나 채색의 농도나 선명도 등이 요즈음과는 당연히 비교가 되지만 거기에 우리의 어려웠던 역사와 세월이 들어있지 않은가? 보면서 옛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 '서울책보고' 공간 (사진=이동기 기자 제공)

‘서울책보고’는 단순한 헌책 판매처가 아닌, 영세 헌책방들과 연대해 기존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하는 ‘헌책방 홍보‧구매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고 내세우고 있다. 25개 헌책방들이 수십 년의 헌책방 운영 노하우를 그대로 옮겨오기 위해 각 헌책방별로 서가를 꾸몄다. 이곳에서 위탁 판매될 헌책 종류와 가격은 모두 각 헌책방 운영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확정됐다고 하는데 시중 대형 중고서점보다 낮은 10%대의 수수료(카드‧위탁)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헌책방에 돌아간다. 말하자면 청계천 변에 먼지 가득한 거리를 둟고 들어가지 않고도 헌책들을 만날 수 있고 구입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청계천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연히 넓고 깨끗하고 아무데서나 책을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점이다. 부모의 손을 잡고 찾아온 어린이들이 곳곳 책골목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다만 책들을 누구나 빼어서 볼 수 있으니 책이 원래 그 자리에 돌아와 있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중앙 데스크 옆에 있는 도서검색대에서  원하는 책이 있는지 찾을 수는 있지만  서가에서 책을 찾는 게 쉽진 않았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명사의 기증도서 공간에서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 부부가 서울도서관에 기증한 여성학, 사회문제, 범죄학 등에 관한 전문도서 1만 600여 권의 도서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런 명사 축에는 끼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 명사들의 책이 없어지지 않고 한 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이 공간은 앞으로도 작가, 아티스트, 학자 등 다양한 명사들의 기증도서를 전시‧ 열람하는 공간으로 꾸며지며, 기증자의 책을 활용한 토크콘서트, 강연 같은 다양한 이벤트도 열린다고 하니 심심치 않게 책문화를 명사들과 가까이에서 나누고 접할 수 있다. 아카데미 공간은 ‘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지역주민들을 위한 지역연계 프로그램, 개인‧가족 단위 독서 프로그램이 연중 열리는 시민참여형 공간으로 활용된다.

이곳의 특징으로는 독립출판물 열람공간이다. 이미 절판된 도서부터 최신 도서까지 총 2,130여권의 독립출판물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서울 유일의 독립출판물 도서관’이다. 개인이나 소수가 기획부터 판매까지 직접 하는 독립출판물 특성상 재발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존 도서관에서 접하기 어려운 책들이라고 한다. 이 서울책보고를 운영하는 주체인 서울시는 독립서점들과 협업해 매년 400여 권의 책을 추가로 구입해,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 헌책방의 헌책방들을 위해 그들의 책을 위탁 판매하는 곳이기에, 개인의 헌 책을 받아주지는 않는다. 매장 데스크에 이런 안내문구가 이미 걸려 있다. 여기서 개인이 책을 기증하거나 책을 판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신 앞으로 개인이 셀러로 등록하여 책을 판매하는 ‘한 평 시민 책시장’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책을 소장하신 분들이 관심을 가질만하다.

▲ 청계천 헌책방 거리 (사진=이동기 기자 제공)

청계천에서 매장을 갖고 크게 운영하는 헌책방들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책방들이 대형서점과 온라인 중고서점의 등장으로 점차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영세 헌책방들과 연대해 기존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하는 ‘헌책방 홍보, 구매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이 ‘서울책보고’이다. 좁은 서가 사이에서 책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헌책방의 문제점이 이곳에는 없다. 여러 헌책방의 소장도서를 한 곳에서 보고 구매할 수 있으니 나같은 헌책 마니아들에게는 가장 반가운 공간이 되고 있다. 더구나 접근성도 좋아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그 앞이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자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좋은 현대식 헌책방이 생겼지만 나는 청계천변 헌책방을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서울책보고’가 헌책방으로서 보다도 어린이들이 찾는 도서관으로 역할을 점점 하게 될 경우 조용히 나의 책을 찾아보고 읽어볼 공간적 환경이 되지 못할 것이다. 많은 헌 책 애호가들은 좁은 공간 속에서 먼지 속에서 책을 찾아내고 책장을 펼쳐보면서 그 속에 담긴 글자, 단어, 문장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도 얻고 새 보물을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신식의 초현대식의 멋진 헌책방은 우리의 꿈이긴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오랜 멋과 맛이 없어지는, 그래서 대형식당에서 줄서서 타먹는 배급 음식의 느낌이 없을 수 없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맛이 묻어나는 맛있는 집밥을 먹고 싶은 마음, 식단에 의해 조리대 위에서 빨리빨리 만들어지는 반찬대신에 시간과 정성을 갖고 만들어진 요모조모의 반찬들, 그런 밥상을 여전히 받고 싶은 것이다. 왜 헌책방을 가느냐, 거기엔 세월과 시간과 인간의 먼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며칠 전에는 2015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전시도록을 청계천변 <헌책백화점>에서 발견하고 정가 3만5천 원짜리 이 도록을 1만5천원에 샀다. 전에 전시장에 갔을 때에는 아직 공부가 덜 되어 굳이 도록가지 살 이유가 없었는데 요즈음 문화재 공부를 하다 보니 도록 속에 실린 글들이 엄청 귀한 자료가 된다. 기쁜 마음에 이 도록을 사고는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책을 존재를 알렸다. 집에 헌 책이 쌓이고 이 책들의 보관과 보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만 그대로 좋은 책을 만나면 사야 하는 이 마음, 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지식을 찾아가는 길에서 영원히 젊을 수 있는 비결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