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하나 되는 꿈’과 손미정의 ‘록명’-제33회 한국무용제전
[이근수의 무용평론] ‘하나 되는 꿈’과 손미정의 ‘록명’-제33회 한국무용제전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9.05.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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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봄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국내에선 무용제(혹은 무용페스티벌)가 열린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명칭뿐이고 차별화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얼굴에 그 스태프, 비슷한 작품 들이 번갈아 무대를 장식하고 공연실적이나 수상을 염두에 둔 전형적인 작품들이 늘 넘쳐난다. 우리 무용계가 60년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대작 혹은 명작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를 여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지원금이 증가할수록 예술가는 가난해진다. 예술가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고 ‘한스 애빙 (Hans Abbing)’이 ‘예술가는 왜 가난한가(Why are artists poor? 2002)’란 책에서 지적한 지원금의 역설을 무용계에 적용해볼 수 있음직하다. “무용제가 늘어날수록 무용작품의 질은 저하된다.”는 무용제의 역설이 통용되는 것은 아닐지. 수많은 무용제 중에서 한국춤협회(이미영)가 주최하는 ‘한국무용제전’은 그나마 특색을 유지하고 있다. 경연성격을 띄면서 경연작품에 단일 주제를 제시하고 주제에 맞는 작품을 선정함으로써 대회의 차별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올해 33회를 맞는 ‘한국무용제전’(Korea Dance Festival, 4.10~21, 아르코예술대극장 및 소극장)의 주제는 ‘통일을 위한 하나의 춤-원무(圓舞)’다. 8개의 30분 내외 작품이 대극장무대에서 나흘간 경연을 펼쳤다. 나는 첫날 2작품을 제외한 6개 작품을 보았다. 김남용이 안무한 ‘하나 되는 꿈’(4.17)이 가장 출중한 작품이었다.

두 여인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며 나누어진 그들의 춤이 서로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무리 가운데로 섞여든다. 원통(圓筒)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서클 안에서 10여명의 무용수가 한 덩어리 되어 팔과 손을 하늘높이 들어올린다. 느렸다 빨라지고 다시 느려짐을 반복하는 팔들의 움직임을 따라 몸짓도 다양하게 변화한다. 무대를 세로로 분할하면서 평행으로 놓인 철길이 무대 한가운데서 끊어져 있다. 두 그룹으로 나눠진 무용수들이 철길을 따라 행진해온다. 끊어진 철길처럼 멀어진 마음들을 잇기 위함일 것이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북소리와 장고소리에 맞춰 팔과 다리를 크게 흔들며 이동하는 몸짓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듯 차분하면서도 경쾌하다. 무용수들은 모두 가벼운 상의에 편안한 운동복 바지차림이다. 무리 없이 자연의 소리에 순응하는 음악이 춤과 어울리며 꿈속에서 하나 되는 오누이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어준다. 경연대회 참가작들의 특징이 되다시피 한 거창한 무대장치와 영상, 과장된 텍스트와 연출이 이 작품엔 보이지 않는다. ‘통일을 위한 하나의 춤-원무(圓舞)’라는 페스티벌 주제에 충실하면서 수상을 의식하지 않고 주제를 시각화하고자 한 김남용(한성대 교수)의 성숙한 안무의식이 돋보인다. 춤이 많은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 춤에 양용준의 음악과 조정문의 의상이 앙상블을 이루면서 무대는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정조(情調)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미니멀 함이 주제의 성격에 부합하면서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실현한다. 거문고가락을 배경으로 한 무용수의 솔로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죽은 듯 누워 있던 무용수들을 하나씩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들 모두가 하나 되어 춤추는 무대 뒤로 노을빛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춤에서처럼 멀어진 이웃이 서로를 따뜻하게 비추며 하나 되는 꿈이 이루어질 날이 언제일까. 그날을 기다리게 만든 진지한 작품이었다.

손미정의 ‘록명(鹿鳴)’도 대회 주제에 충실한 작품이다. 록명(鹿鳴)은 먹이를 독식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노루가 동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기 위해 소리 내어 운다는 뜻이다. 남과의 나눔과 베풂이 바탕이 되는 상생(相生)을 상징한다. 손미정의 작품에서 영상으로 보여준 철교는 분단 상황을 은유하고 무용수들이 몸으로 만드는 사람 ‘人’자는 화합을 상징한다. 천정에서 내려온 커다란 북을 자리에 누워 힘차게 두드리는 자세는 하늘을 향한 상생의 염원을 표현할 것이다.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면/ 다시 이 길에 설 수 있다면...삶이 무엇인가/ 인생이 별 것이 아닌데/ 함께 살아가는 것뿐인데...”. 남북의 분단을 이별한 연인에 비유하면서 부르는 시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피날레를 장식한 15명 군무의 장관이 기억에 남은 의욕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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