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 잇기]문화중심도시…관광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치 재생
[박희진의 문화 잇기]문화중심도시…관광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치 재생
  • 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0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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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문화예술이 우리가 사는 도시를 바꿔가고 있다. 문화의 개념이 다소 협소하고 문화정책의 목적이 예술진흥에 치우쳤던 50~60년대와는 달리 도심의 발달과 쇠퇴라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문화를 통하여 도심의 낙후된 건물과 도로 등의 변화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재활과 삶의 질, 지역공동체의 활성화 등의 관심을 담아낸다.

2012년 서울 하늘 아래 재개발 열풍 속에서도 주민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작은 마을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 사이 통일로를 가운데로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동네가 함께 일궈낸 산골마을이 있다. 이곳 산골마을은 예로부터 산골(山骨)이라는 약재가 유명해 마을 이름도 산골마을이라 주민들이 정했다. 주민들은 노후주택이 밀집해있는 마을에 재개발 대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마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70여 채 주택과 30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은 40-50년 된 노후된 3층 빌라가 많고 주민들 평균 연령이 78세로, 주민들의 왕래조차 거의 사라진 마을이었다. 마을만들기를 위해 주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마을의 문제점을 서로 이야기 나누고,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워크숍도 열었다. 점차 주민들 스스로 마을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찾다 보니 어느덧 마을회관을 열어 운영하며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마을만들기는 주민참여형 재생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응암동과 통일로를 연결하는 아치형 다리인 은오교가 생기면서 단절된 산과 하천에 사는 야생 동물들도 오가기 시작했고, 가파른 경사면의 계단도 폭을 넓혀 정비했을 때 사람들도 오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자산 찾기’에 나서 숨은 마을의 문화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며 산골마을의 활력을 불어넣는 일들을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녹번동 산골마을을 필자가 방문했을 때, 마을 대표로 활동하고 계시는 어르신의 말씀 속에 있다.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구경할 것은 많지 않지만 도시재생을 먼저 한 우리가 사는 모습은 보여줄 것이 있다.”

▲ 마을로 이은 산골마을(사진=박희진 제공)

도시재생 초기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이동하는 기업, 주민,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고 강력한 브랜드를 창출하는 개발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대규모 문화시설을 건립하거나 대형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고 지역의 문화 자원을 발굴하는 대신 관광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며 주민들이 살 수 없는 도시를 만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도시재생에서 문화정책의 시대흐름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0년대 문화진흥 5개년계획이 수립되고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문화정책이 본격화되었다. 당시에는 문화 예산의 60% 이상이 문화재보존을 위해 사용되었고 전통문화와 문화재보존에 관한 것이 절대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지만 80년대 되어서는 문화예술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등의 지역 문화시설을 마련하는데 투자가 이뤄졌다. 90년대 이후에는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지역과 도시 간 문화로 색 입히기에 바빴고, 개성 있는 지역의 문화가 도시 마케팅의 수단이 되어 적극 활용되기도 했다.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통합계획이 추진되었는데 이는 자율, 참여, 분권이라는 3대 가치 실현을 목표로, 중앙 중심이던 문화적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하여 스스로의 문화적 자율성과 특성 있는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겠다는 데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문화 성장을 전국구로 넓히고,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문화중심도시 사업을 계획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문화중심도시’이다. 문화중심도시는 도시의 중심이 문화가 되는 것으로, 도시의 공공적 가치를 찾아 확산시키는 것을 말한다.

도시의 가치 재생을 찾는 노력 속에 문화정책은 도시를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도시마다 기억에 남는 강한 이미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도시를 둘러싼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도시의 발전 전략도 달라지는 법이다. 이렇듯 문화중심도시는 3대 문화통합의 가치가 실현될 때 한 발 한 발 내딛어 길을 찾아온 도시문화정책을 대변한다. 문화를 통한 가치 재생은 장기적이고 섬세한 계획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관심 속에 도시마다 가진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 경쟁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