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 ‘안과 밖’
[성기숙의 문화읽기]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 ‘안과 밖’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19.05.2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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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무용계는 수 년째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심사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다. 2019년 4월 무용계는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인정 불공정심사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하여 문제제기에 나섰다.

2019년 4월 19일, 전국의 대학 무용과 교수와 전·현직 국공립무용단체장 및 예술감독 그리고 중견무용가 62명이 참여한 가운데, 문화재청의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 강행을 규탄하는 2차 성명서가 발표됐다.

분노한 무용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또 며칠째 청와대 및 문화재청 앞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핫이슈로 떠올랐다. 무용계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시대착오적이고 독선적인 행정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심사 경위

지난 2015년 12월 문화재청은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 3종목에 대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심사를 실시했다. 15년 만에 치러진 보유자 인정심사였다. 총 24명이 심사에 응시했다. 그 결과 태평무 1종목에서 단 1명만을 보유자로 인정예고하는 상식이하의 결정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파장이 컸다. 심사위원 편파구성 및 자격논란, 콩쿠르식 심사방식, 특정 학맥의 영향력 행사 의혹 등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자의 원형과 정통성을 벗어난 신무용 전승경력도 치명적 문제로 지적됐다. 보유자 심사에 응시한 당사자들이 이의제기에 나섰다. 원로 무용인의 청와대 앞 1인 시위 등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약 150여건의 비판적 언론기사가 쏟아졌다. 한국무용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문화재청은 수습에 나섰다. 문화재청장은 불공정 절차 및 행정미숙에 대해 사과했고, 무용계 여론수렴을 통해 합리적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무형문화재과장이 전보 발령되는 등 문화재청 안팎이 출렁였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은 무용계의 반발로 4년 전 자동폐기된 것으로 인식되어온 태평무 인정예고자를 포함하여 11명의 ‘보유자후보’를 선정하여 논란을 키웠다. 4년 전 24명의 응시자 중 태평무 1종목에서 단 1명을 지정했기에 나머지는 탈락한 것과 다름없다.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자 역시 무용계의 거센 반발로 보유자 인정예고가 “보류결정”됐고, 그 후 4년이 경과함으로써 자동폐기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최근 보유자 인정조사 재검토(재심사) 결과,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자도 11명의 ‘보유자후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을 사고 있다.

작금의 무용계는 4년 전 ‘데자뷔’ 상황에 봉착해 있다. 문화재청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도 문제는 차고 넘친다. 가령 합격자, 불합격자가 혼재된 결과로 해석되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15년 12월 구법(舊法)에 의해 보유자 인정심사를 치루고, 2016년 3월 신법(新法)에 의거 보유자 인정절차를 진행한 것은 치명적 모순이다. 한마디로 넌센스다. 

보유자 인정조사 재검토(재심사)도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재론하자면, 문화재청은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 3종목에서 보유자 인정심사에 응시한 24명 중 재검토(재심사)를 통해 11명의 ‘보유자 후보’를 발표했다. 누가, 언제, 어떤 기준과 절차로 보유자 선정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2019년 3월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의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보유자후보’로 선정된 11명 중에는 이수자와 전수조교가 혼재돼 있다. 보유자 선정절차가 공정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일관성도 없고 선정근거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역할은?

문화재청은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에 대한 무용계 반발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무형문화재위원들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다. 2015년 12월 불공정 보유자 심사 이후 진행된 인정절차 및 무용계 이의제기 등 여타의 모든 경위를 무형문화재위원들에게 제대로 설명했는지 의문이다. 경위를 제대로 알고도 11명의 ‘보유자후보’를 선정했다면, 무형문화재위원들의 책임 또한 면키 어렵다.

사안의 특성상, 저명한 원로연극학자로서 연임에 성공한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과 무용분야 위원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해 무형문화재위원회 구성 시, 무용분야 위원의 경우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증원됐다. 전문적 식견과 안목으로 무용분야를 대변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우선 편파적 인적 구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무용분야 무형문화재위원 2명 모두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라는 사실은 석연치 않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궁색한 변명이다.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다고 볼수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대목에서 실수를 인정한 바 있다.

과정에 대한 공정성 여부는 결과로 증명된다. 4년 동안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2019년 3월  11명의 ‘보유자 후보’를 선정할 당시 무용분야 위원들은 과연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특히 종신제(終身制)인 인간문화재(보유자)를 ‘영상심사’를 통해 선정하겠다는 것이 온당한 방식인가? 한마디로 천박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불공정한 보유자 인정절차가 무형문화재위원회에서 의결되는 동안 무용분야 위원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가?

소위원회 구성은 공정한가?

무용계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 문화재청은 지난 3월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11명의 ‘보유자후보’를 대상으로 검토절차를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영상심사를 통해 최종 보유자를 결정했다면 실로 경악할 일이다. 무용계를 능멸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무용계는 11명의 ‘보유자후보’들이 자신이 일평생 쌓아온 춤이 한낱 기계를 통한 ‘기량점검’ 대상으로 전락된 것에 대하여, 다시 말해 ‘영상심사’ 만큼은 거부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분들 중 상당수는 4여년 전 보유자 인정절차가 문제가 있다고 이의신청을 하는 등 격렬한 비판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단 한 명도 문화재청의 불공정 보유자 인정절차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누구라도 일평생 염원하던 ‘보유자의 길’ 앞에서 망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결과적으로 11명의 ‘보유자후보’ 대부분 영상심사에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용계 내지 무용의 장(場) 안에서 대승적 결단보다는 개인의 영달이 우선한 것일까? 어쨌든 대사회적으로 무용계의 자존감이 무너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소위원회 구성도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소위원회 개최 여부는 무형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소위원회 인적 구성은 무형문화재위원장 고유 권한에 속한다. 해당부서의 장인 무형문화재과장과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한다.

이 사안에 있어 무형문화재위원장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분은 수년째 무용분야 보유자 인정심사의 불공정 논란 그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관여한 소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과연 공정하다고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번 소위원회에는 무용계에서 나름대로 실기와 이론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온 원로 두 분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4년 전 보유자 인정심사 결과에 대해, 심사위원장조차 불공정심사를 비판하는 언론 인터뷰를 한 사실을 우리는 또렷히 기억한다. 문화재청의 ‘치졸한’(?) 수법에 말려든 것일까? 아니면 자발적 선택이었을까? 오늘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역사는 과연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보유자지정’ 에서 ‘종목지정’으로

무형문화재 제도는 1960년대 초반 시대적 요청에 의한 공적(公的) 제도화의 산물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근현대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은 소멸되거나 변질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 1962년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유산을 보존 계승하기 위해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됐고 무형문화재 제도가 탄생되었다.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긴 지 약 60여년이 흘렀다. 무용분야는 진주검무(제12호), 승전무(제21호), 승무(제27호), 처용무(제39호), 학연화대무(제40호), 태평무(제92호), 살풀이춤(제97호) 등 총 7종목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독무형식으로 추어지는, 개인종목에 속하는 승무·태평무·살풀이춤이 단연 인기가 높다.

무형문화재는 장르별, 종목별로 전승환경에 있어 편차가 크다. 장르별, 종목별로 ‘부익부/빈익빈’, ‘인기/비인기’ 등 양극화 현상이 초래된 지 오래다. 인기종목의 경우, 보유자 개인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다보니, 권력화·독점화·사유화로 인한 폐단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종신제인 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는 전통예인으로서 최고 권위와 명예를 누린다. 대체로 국가 권위의 상징으로 존경받지만, 일부 온갖 잡음과 폐단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전승환경의 변화와 각 장르의 특성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무형문화재 제도 재설계가 시급한 실정이다. 예컨대, 공예분야와 같이 취약한 장르는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여 탄탄한 전승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대신 소멸위기를 벗어나 과열양상으로 치닫는 분야는 지정해제 또는 종목지정 및 보존회지정 등 전향적으로 선회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몇 년 무용분야 인기종목 무형문화재의 경우, 1세대 보유자 대부분 작고하셨다. 보유자 공백기로서 세대교체의 변곡점에 놓여있다. 제도개선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특정 사람에서 모든 권한이 부여되는 보유자 지정제도를 없애고 ‘종목지정’으로 전환하여 많은 무용가들이 무형문화재 춤을 춘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전승환경과 각 장르의 특성에 걸맞는 ‘맞춤형’ 무형문화재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용계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선(先) 지정하고 그 후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복안이다.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는 무형문화재는 개인이 독점하는 사유물이 아닌, 만인이 향유하는 국가의 공적(公的) 자산이다. 소멸위기를 벗어난 ‘인기종목’ 무형문화재의 경우 보유자 지정이 아닌, ‘종목지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알다시피, 무용종목 국가무형문화재 7종목 중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에 속한다. 보유자 개인의 사유화, 독점화로 인한 폐단이 더 이상 대물림돼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높다. 따라서 작금의 무용분야의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강행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한국무용계가 세대교체의 지점에 놓여있는 만큼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시대변화와 전승환경에 걸맞은, 이른바 ‘맞춤형’ 무형문화재 제도가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정·관 및 문화계 카르텔의 견고한 유착의 소산?

인간문화재(보유자)는 한마디로 국가 권위의 상징이다. 문화재청 60여년 역사에서 11명의 ‘보유자후보’를 한꺼번에 검토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해당분야의 거센 반발, 그리고 약 150여건의 비판적 언론보도가 쏟아진 것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불공정심사 결과로 선정된 인간문화재(보유자)를 국민의 혈세로서, 그것도 종신제(終身制)로 지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문화재청의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문화재청이 자행하는 불공정 행정은 특정인을 보유자로 선정하기 위한 정·관 및 문화계 카르텔의 견고한 유착의 소산”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청 관계자 및 무형문화재위원, 문화재청장 모두 이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혹여 제기되는 의혹처럼 정치권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것은 민족사의 불행한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일제의 폭압에 항거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전통문화유산의 귀중함을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양춤의 한국화’의 산물인 신무용 계승자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주목하길 바란다.

또 일본 친연성이 있는 활동경력의 소유자에 대한 보유자 선정 역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운명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한·일 관계 등 국민정서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민족의 혼과 얼이 스며있는 전통문화의 근본인 무형문화재에 대한 엄중한 접근이 요망된다.

문화재청은 한국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 및 활용 정책이 구현되는 총본산이라할 수 있다. 무용분야 불공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논란으로 문화재청은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공정성’ 문제에서 깊은 내상을 입었다. ‘공정·평등·정의’는 현 정부가 표방한 시대정신이 아니던가?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지 문화재청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