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판소리 동물농장’의 장서윤씨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판소리 동물농장’의 장서윤씨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5.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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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NEXT WAVE는 올해의 정부음악극 축제에서 새롭게 선보인 프로그램입니다. 의정부음악극 축제가 열여덟 째를 맞이하면서,‘한국형음악극실험무대’를 표방한무대였습니다.의정부역앞에 새로 생긴 박스시어터인 의정부아트캠프의 개관 프로그램으로 두 작품을 올렸습니다.

첫 번째 작품 ‘입과손스튜디오’의 작품‘19호실로가다’는 대본에서 연기까지 매우 정교하게 잘짜인 작품입니다. 두명의 소리꾼 이승희 김소진과 세명이 고수 이향하, 김홍식, 신승태과 함께 유현진 프로듀서가 그간 얼마 만큼 정성을 쏟았는지 느껴졌죠? ‘극(劇)을 완성하기 위한 작(作)의 역량’이 충분하다는 걸 모두 확인했을 겁니다.

두 번째 작품‘판소리동물농장’이바로 당신이 만든 작품이었지요. 앞의 작품이 여러 사람의 공동창작의 특성이 잘 살아있었다면 당신의 작품은 소리꾼 장서윤이 고군분투해서 무대에 올린 작품이라는 게 역력했어요. 장서윤은 작창(作唱)과 소리는 물론이요 대본과 연출을 담당했고 더 나아가 무대에 작품이 올려지기 위한 여러 과정을 스스로 혼자 해냈습니다. 장서윤이 만들어낸 ‘1인아트컴퍼니’에게 일단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관객은 오직 무대에서 올려지는 작품이란 ‘결과물’로 평가를 하지요. ‘판소리 동물농장’은 작(作)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극(劇)이 되지 못한 아쉬움’에 안타까웠습니다. 지금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인판소리공연시스템’을 구축한 당신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말이될 지 모르겠네요.
 
장서윤씨 지난해 당신의 ‘다양한’ 판소리를 들으면서 당신의‘쌓아온’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기억나시죠? 제회가람 국악경연대회 고수부 경연 2018년8월8일 목원대 콘서트홀이 었지요. 대회에 참가한 고수들에게 당신은 다양하게 판소리를 불러주었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고수는 장단을 심사를 받는 형식이었죠. 이 대회의 심사위원이 워낙 쟁쟁해서 판소리를 부르러 나온 유태평 양과 장서윤도 마치 판소리 경연의 심사를 받는 기분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날 내가 쓴 SNS에 이렇게 적어 놓았더군요. “경솔한 중강씨 경험과 재주로 알았다. 노력과 실력이 쌓였다. 장서윤 여성명창의 계보를 잘 잇길”

‘예일초등학교 2학년 장서윤’ 당신은 이미 20년 전부터 스타였습니다. 여의도 KBS홀 무대에 올라서 판소리를 했고 국립극장에서 ‘어린이창극’ 시리즈를 선보였을 때 모든 주인공을 도맡았습니다. 그런 당신을 보면서 솔직히 나는‘모방의 천재’라고 생각을 했었죠. 당신을 가르쳤던 스승이 당신을 ‘스폰지’라는 별명처럼 가르쳐 준 걸 잘 흡수한다고 칭찬했지만 내게는 어린이다운 귀여움이나 발랄함보다는 스승을 잘 따라 해 칭찬을 받고 우쭐하고 싶은 모습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겁니다. 비유컨대 역시‘판소리신동’으로 시작한 유 태평양이 나이에 맡게 변화 발전해가면서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지만 나는 솔직히 당신에게선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지요.

중학교 입학 즈음에서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느끼지 못하면서’ 무대에 올랐던 장서윤 어린이가 원형탈모로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는 후일담을 듣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나로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답니다.

당신을 정말 대단하게 느낀 건 국립창극단의신창극시리즈‘시(詩)’(2019. 01.18 ~ 26. 국립극장하늘 극장을 보면서였죠. ‘시’라는 존재에 대한‘애정’, 시’라는 양식에 대한 이해 시’를 소리로 풀어낼 줄 아는 ‘역량’. 이 셋이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문학 텍스트를 판소리라는 양식으로 가져와서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으로 살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입센의‘유령’을 창작 판소리로 풀어냈던 시절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당신은작(作)의 능력은 갖췄지만 아직 극(劇)의 능력이 거기에 이르지 못합니다. 작(作)이라는 것이 논리성(論理性)의영역이라면 극(劇)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선 즉 물성(卽物性)이 중요한데 ‘아직은’ 당신에게 선 이런 것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서윤! 당신은 요즘 여성 판소리꾼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아쉬움에 해당사항이 없기에 정말 천만 다행이에요. 내가 참 안타깝게 여기는 두 가지는‘신파조’와‘목자랑’입니다. 다른 장르가 ‘쿨’이 대세인데 판소리 소리꾼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서 오히려 판소리가 갖는 미감(美感)을 해치는 기분도 듭니다. 1960년대 여성 국극의 시대에선 그런 것이 필요했을지 모르나 2010년대에 그렇게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안타깝습니다.

예전 출중한 여성 명창의 소리를 떠올려보면 그분들은 오히려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소희 명창이 그렇게 소리를 했나요? 박녹주 명창이 그렇게 했나요? 김여란 명창이 그렇게 했었나요? 절창(絶唱)으로 유명한 안향연 명창도 매우 극적(劇的)으로 소리를 했다지만 자세히 들어 보십시오. 요즘 일부 여성 소리꾼에게 내재 된 ‘신파조’와 ‘목자랑’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분들은 좋은 목을 타고났고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그게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죠. 지금 활동하는 젊은 소리꾼이 늘 자신의 소리 적 특성을 정확히 알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격조 있는’ 판소리를 들려주길 간절히 원합니다. 판소리는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거나 맥락 없이 높고 큰소리를 질러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의 명창을 떠올리면 요즘판소리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커집니다. 여성 소리꾼들의 목 자랑이 때론 참 부담스럽습니다. 이렇게 노래부르는 것은 15분정도 들었을 때는 확 끌리지만, 점차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죠. 이렇게 부르는 창자(唱者)의 ‘완창 판소리’를 들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여성 소리꾼 장서윤에게서 부족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신파조’와 ‘목자랑’으로 부르는 것이 예술적인 측면에서 ‘수가 낮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참 기쁩니다. 장서윤씨 지금처럼담백하게 소리를 하십시오. 지금처럼 깔끔하게 작품을 만들어 주세요.

무대에서 ‘연극성’을 살려내기 위해서 무척 고민해야겠지만 담백함과 깔끔함을 전제로 해서 매우 품격있는 창작 판소리를 당신은 계속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판소리 동물농장’이 새로운 출발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