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MODAFE 개막작, 'ASYLUM'과 '라벨 & 스트라빈스키' 앵콜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 MODAFE 개막작, 'ASYLUM'과 '라벨 & 스트라빈스키' 앵콜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5.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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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한국현대무용협회(김혜정)가 주최하는 국제현대무용제(MODAFE)가 올해로 38회를 맞았다. 이스라엘 키부츠 현대무용단(Kibbutz Contemporary Dance Company)의 2018년 신작인 ‘ASYLUM’(피난처)이 개막공연으로 첫날 무대에 올랐다. 1973년 창단된 키부츠무용단은 1996년부터 '라미 비에르(Rami Be’er)'가 2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한국인 현대무용가 김수정이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키부츠무용단은 현재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현대무용단이라고 할 수 있다. ‘ASYLUM’((5.16~17, 아르코예술 대극장)은 오늘날 세계적인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난민문제를 주제로 한 55분 작품이다.

커다란 등 하나 만이 위험하게 매달린 공간에 확성기를 등에 멘 교관이 분주하게 오가며 난민 맞을 준비를 하고있다. 각지에서 밀려드는 난민들로 수용소는 곧 가득 찬다. 이들을 군대식으로 통솔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이들은 모두 자유를 찾아 혹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이질적인 방랑자들이다. 국가에 대한 존엄성은 사라졌고 가족들은 흩어지고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도 말라버렸다. 생존을 위한 본능만이 남아 있는 난민수용소는 피난처라기보다는 또 다른 고난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둥글게 둥글게/우리는 원으로 걷는다/하루 종일 원으로/우리자리를 찾을 때까지/앉아, 일어서/앉아, 일어서/앉아, 그리고 일어서” 이스라엘 동요인 ‘우가 우가’ 음악에 맞춰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구령에 따라 집단으로 움직이는 남녀무용수들의 동작은 크고 거칠다. 손발을 크게 흔들어 원을 만들고 앞으로 뒤로 종종걸음을 치며 바쁘게 이동하는 이들은 모두 검정색 짧은 바지차림이다. 비에르는 이러한 상황이 비단 난민수용소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 그들이 어떤 장소와 시간대에 위치하던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에 주목한다. 스무 명에 가까운 출연자가 무대를 휘저으며 전후좌우로 우루르 몰려다니는 반복적인 행동에서 모‘ 든 인간은 난민이다’란 안무가의 주장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수천년을 난민으로 떠돌다가 팔레스타인에 어렵게 정착한 이스라엘이 아닌가. 그들의 잠재의식이 난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라벨과 스트라빈스키'(5.3~4, LG아트센터)는 안성수 감독 취임 이래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적 레퍼토리가 되어버린 음악가 시리즈 중에서 두 편의 작품을 뽑아낸 공연이다. 일종의 앵콜 공연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라벨의 볼레로음악을 사용하여 만든 2016년 세 작품 중 김보람의 ‘철저하게 처절하게’와 2018년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사용한 세 작품 중 안성수의 ‘봄의 제전’이다. 김보람의 작품은 2016년 초연 그대로다. 볼레로 음악을 안무에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곡의 구조를 분해하여 해체된 음악의 각 부분을 움직임에 맞추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오케스트라편성 중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트럼펫 등 7개 악기로 소편성을 택한 점, 김보람을 포함, 흰색 정장으로 통일한 9명 남성무용수들이 탭댄스와 로봇 풍의 춤을 춘 것 등이 초연 작품과 다르지 않다. 볼레로 음악의 분해는 공과가 반반이다. 일견 창의적일 수 있지만 하나의 주제가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얻어지는 볼레로음악의 미학을 잃는 위험성도 수반한다. 초연 시 리뷰에서 지적한대로 음악의 인색함과 함께 동작이 분절됨으로써 자연스러운 흐름 대신 답답함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2018년 초연 시 컨템퍼러리현대무용의 수작으로 평가받았던 안성수의 ‘봄의제전’은 이번 앵콜 공연에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출연자 수를 12명으로 늘려 남녀의 균형을 맞추었고 조명이 밝아진 것도 미세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춤과 음악 간의 오차가 완벽하게 사라지고 원전에서의 격렬함과 근육질의 남성성이 유연해진 반면 부드러움 속에 오히려 스펙터클한 긴장감은 높아졌다. 스트라빈스키음악의 완벽한 해석에 더욱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최고수준의 현대무용수들이 보유한 역동적인 힘과 안
성수의 섬세한 안무가 조화를 이룬 2019년 판 ‘봄의 제전’은 초연을 업그레이드하며 다시 한 번 컨템퍼러리 한국현대 춤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