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하나가 될 수 없는 미디어파사드와 전광판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하나가 될 수 없는 미디어파사드와 전광판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9.05.24 16: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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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일층에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해서 가끔 회사 홍보도 하고, 좋은 영상 작품도 보여주고 싶은데 구청에서 설치 허가를 안 해 준다 네요?" 얼마 전 지인이 전화를 걸어 물어 온 내용이다. 조명에 관계된 일을 하며 서울시에 회의가 있다고 모임에서 서둘러 일어났던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문의를 한 모양이다. “네. 설치못하십니다” 대답하니 “아니 왜요? 건물 안에 설치할 것이고, 국내에서 보기힘든 유명한 작가들 영상작품만 틀려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건가요?”

간단히 생각하면, ‘내 건물에 내 돈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티브이를 사서 놓는데 하필 위치가 거리 쪽에서 보이는 것뿐’ 인데 왜 안 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설치를 못하는 이유 또한 간단하다. ‘가끔 회사 홍보도 하고’는 전광판 -디지털 광고판-의 역할이고, ‘좋은 영상작품도 보여주고’는 미디어 파사드가 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는 일전에도 여러 차례 언급했던 바와 같이 관리, 감독되는 주체가 다르다. 따라서 현재의 법체계로 하나를 설치하여 두 개의 기능을 하도록 하는 것은 어렵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설치 가능한 위치, 미디어 매체의 크기, 밝기, 송출 가능한 시간, 내용 등 모두 다른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매체는 오묘하게 장단점을 나누고 있다. 디지털 광고판은 미디어파사드보다 밝기 기준이 높고 항시 영상이 표출할 수 있다. 광고 컨텐츠 내용에도 제약이 없다. -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다면 - 일단 법적 근거에 따라 설치만하면 어떤 광고를 내보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하면 광고판 설치에 대한 법적 기준에 맞았는지에 대한 심의는 있으나 광고 컨텐츠에 대한 심의는 없다. 미디어 파사드는 크기에 제한이 없다. 크기로 기네스 레코드에 오른 서울스퀘어의 초대형 미디어파사드는 가로 길이가 100미터에 달한다. 다만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전면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에 25m 이상의 도로에 접한 건축물에만 설치 가능하도록 제한을 두고있다. 디지털 광고물이 4층 이상의 건물의 옥상에만 설치 가능한 조건과 달리설치 높이에 대한 기준도 없다. 그 이유는 밝기-전문적인 용어는 수직면 휘도이다 - 기준이 광고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밤에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미디어 파사드의 최대 약점은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과 미디어 파사드 설치와 별도로 콘텐츠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공공성과 작품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 컨텐츠 심의를 하다보면 국가나 시와 같이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대한 홍보나 공익광고와 같은 내용이 들어오는데, 이 역시 현재의 법에서는 광고로 간주하여 불가하다.

몇 년 전 모 이동통신기기 회사에서 제품 출시 홍보를 위한 영상을 건축물 입면에 프로젝션하겠다고 계획하여 심의를 진행한 일이 있었다. 상시 운영이 아닌 1주일 간 임시 운영이었고 컨텐츠 역시 작품성이 매우 뛰어난 영상으로 단 한 장면도 이동통신기기나 그와 유사한 어떤 것도 등장하지 않았다. 오로지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작게 회사 로고가 뜨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영상 송출이 관광효과까지 이끌어 낼 만큼 기발하고 창의적이다. 따라서 허가하자’ 라는 의견과, ‘공정성에서 벗어난다. 무엇을 홍보하고자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고 해도 어찌되었건 상호가 표출되는 것은 광고이다’라는 의견으로 결국 불허되었고 그 때 당시로서는 신기술을 접할 수 있었던 영상쇼를 놓친 안타까움에 우리가 공들여 규정한 것들이 과연 모두 우리를이롭게 하고 있는 건지 씁쓸하기도 했다.

점점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하여 티브이 수준의 디지털 광고판이 등장했다. 표출되는 광고물의 컨텐츠도 상업광고인지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의 영상들이 표출된다. 관광특구, 옥외 광고물 자유지역 등 제도에서 허락한 자유 영상 표출 지역이 점점 늘어가며 또하나의 경제적인 불균형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IOT와 5G기술은 도시의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사람들의 경험의 질과 양에 이르기까지 다르게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미디어 파사드와 디지털 광고판을 양분하고 규제하여 관리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디어 파사드는 도시를 갤러리화하고 문화 에술적인 경관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적극 권장되기도 하고 빛공해의 주범이 되어 규제의 주인공 노릇도 해가며 서울의 야경을 만들어 왔다. 일각에서는 미디어 파사드와 디지털 광고판의 경계를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구현하는 기술이 동일한데 컨텐츠로 발목을 잡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할 수있겠다. 이는 미디어 파사드와 디지털 광고물을 영상 콘텐츠 표출의 툴로만 보았을 때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간과한 중요한 것이 이들의 속성이다. 미디어 파사드는 일차적 으로 건축물에 속한 하나의 요소이며 입면과 일체화되어 영상 표출이 가능한 기능을 가진 것이다. 즉, 영상이 나오던 안나오던 그 파사드는 하나의 건축물을 조형적으로 완전하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나 디지털 광고판은 그렇지 않다. 미디어파사드와 디지털 광고판은 같은 일을 하고 있다해도 그 태생은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