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뼈의 기행’, 여전히 ‘남의 이야기’인가
[공연리뷰] ‘뼈의 기행’, 여전히 ‘남의 이야기’인가
  • 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6.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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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작신작 … 우리 사회 문제들 희곡 위에 옮겨온 백하룡 작가의 실제 경험 바탕으로 한 연극
5. 31~6.16, 백성호장민호극장

“한 번 어긋나니 계속 어긋나지 않습니까”

개인의 삶이 미미해 보이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인간은 시공간에 묶여있는 존재다. 역사의 조류를 타고 흘러가며, 역사의 어딘가쯤에 걸려있다.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고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공동체의 역사적 결정은 개인의 삶에 고스란히 박히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삶은 역사의 사료가 되기도 한다. 

▲ ‘뼈의 기행’에서 준길이 부모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는 장면 (사진=국립극단)
▲ ‘뼈의 기행’에서 준길이 부모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는 장면 (사진=국립극단)

그렇다면 대한민국 영토에 살고 있는 한국인. 그 정체성을 논할 때 기준은 무엇이 될까. 민족적 혈통일까 국적일까. 아니면 그 밖의 어떤 것일까. 누군가 속 시원하게 명확한 해답을 내려준다면 좋겠지만, 인간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하기 때문에 평생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해방 직후의 혼란과 전쟁, 이산가족 등 우리 근현대사의 상흔을 직격탄으로 맞은 70대 노인 준길의 삶도 그러하다.

다양한 소재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각적으로 탐구해온 국립극단이 창작신작 <뼈의 기행>으로 돌아왔다. 극작을 맡은 백하룡 작가는 실제 작가의 아버지가 2004년 조부의 유골을 찾기 위해 하얼빈으로 향했던 일화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인생의 끝자락에 선 2004년의 어느 날, 70대의 백준길은 평생을 벼르던 숙원사업, 이른바 ‘유골 이장 대작전’에 착수한다. 임종도 못 지킨 부모님을 ‘뼈라도 모셔오겠다’는 일념으로 옛 만주 땅인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으로 떠난다. 인천항에서 다롄항을 거쳐 다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는 길, 역사의 조류에 밀려 부모님과 생이별한 당시 열세 살 준길의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를 씨실과 날실로 엮으며 극을 직조해간다.

준길에게는 아들 학종이 있다. 학종은 조부모의 유해를 찾아 떠나는 3천 킬로미터 60년의 시간을 되돌아가는 여정에 아버지와 함께한다. 준길이 일제강점기 만주 이민과 해방의 혼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거친 세대라면 아들 학종은 1990년대 후반 IMF와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등 요동치는 한국의 경제 상황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부자(父子)이지만, 연결고리는 없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응어리로 한(恨) 맺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학종은 심드렁하다. 그나마 관심이라면 ‘돈이 되는’ 선산 이야기다.

▲ ‘뼈의 기행’에서 준길이 아들 학종과 부모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 ‘뼈의 기행’에서 준길이 아들 학종과 부모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역사에 외면당했고, 피붙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준길은 꿋꿋이 만주 땅에 도착했다. 그리고 어릴 적 헤어졌던 여동생을 만나 드디어 부모님의 유해도 고향땅으로 모시고 평생의 한을 풀고 꼬이고 꼬였던 가족사를 매끄럽게 정리할 줄 알았다. 

한 번의 선택이 이리도 오랜 시간을 좌우할까. 준길의 부모가 장손인 준길이 평생을 가족 없는 한과 고생, 그 한과 사회적 차별 및 억압을 만회하기 위해 아들 학종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던 삶, 인생의 마지막까지 고향 땅에 돌아오시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짐을 떨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모든 가족이 만주 땅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라도 잘 살아보라고 본토에 떠나보냈을까.

부모님의 유해를 온전히 고향으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화장을 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고 떠날 수 있지만 준길은 안 된다고 한다. 뒷돈을 주고 일을 처리해보려 했지만 약 600만 원의 돈이라는 소리에 아들 학종은 만류한다. 만류하는 것은 학종만이 아니다. 준길 여동생의 딸, 조카 ‘순영’은 다른 이유로 삼촌의 선택을 만류한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준길 부모의 선택이 묶어놓은 것은 준길의 삶만이 아니었다. 

순영은 근현대사 혼란기에 파생된 ‘중국동포 문제’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순영은 중국동포로 평생의 사회적 차별과 억압, 그에 따른 지긋한 가난에 진절머리가 났다. 최저임금을 받고, 고생이 따른다고 해도 한국 땅에서 하고 싶은데 중국 땅을 벗어날 방도가 없다. 그나마 돈이 있으면 몰래 들어가겠는데 마침 삼촌이 망자(亡者)의 유골을 위해 돈을 쓴다고 하니 ‘산 사람’ 인생 한 번 건져주라며 원망과 애원을 오가며 삼촌을 설득한다. 하지만 순영은 자기는 ‘중국 사람’이라고 한다. 

▲ ‘뼈의 기행’에서 준길이 부모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면서 중국동포 심가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 ‘뼈의 기행’에서 준길이 부모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면서 중국동포 심가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복잡다단한 정체성의 문제, 인물 간 갈등 등으로 극은 먹먹한 전개를 이어가다 결론에 도달한다. 준길의 ‘유골 이장 대작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역사도 사람도 준길의 편은 아니었다. 사기와 위기 등 장벽에 부딪힌 준길은 부모님의 유해 앞에서 “왜 평생 제 말씀 한 번을 안 들어주시느냐”라며 오열한다. “한 번 어긋나니 계속 어긋나지 않습니까” 준길은 결국 부모님의 유해를 화장해 비로소 한국 땅에 돌아오고, 선산에 부모님을 모신다. 독립운동의 역사, 한국전쟁, 분단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쳐 준길의 부모는 드디어 ‘집’에 왔다. 

연극 <뼈의 기행>은 아버지뿐 아니라 아들 세대까지 다루며 관객들의 공감대를 확장한다. 또한 이민과 이산, 낀 세대, 중국동포 문제 등을 통해 역사의 문제들을 꺼낸다. 특히 <뼈의 기행>은 매 장면마다 시공간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연극은 2004년 유골을 이장하기 위해 떠나는 2주간의 여정과 1945년 해방 즈음 준길의 기억 속 시간이 끊임없이 오버랩되며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중국 거리와 여관, 양꼬치집, 항구, 공터, 기차, 선산까지 공간적 배경이 계속 뒤바뀐다.

이번 공연을 맡은 최진아 연출은 약 서른 개의 ‘가방’을 장면마다 적재적소에 배치해 시공간을 넘나든다. 여정을 시작하는 설렘의 상징이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갈등의 씨앗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방’이 때로는 소품으로, 때로는 무대세트로 활용돼 연극적인 무대 구성을 선보였으며 관객들에게 무대예술의 묘미를 경험케 한다. 

▲ ‘뼈의 기행’에서 중국동포 순영이 한국에 밀입국 하려다 공안에게 발각돼 도망하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 ‘뼈의 기행’에서 중국동포 순영이 한국에 밀입국 하려다 중국 공안에 발각돼 도망하고 있다. (사진=국립극단)

백하룡 작가는 “여기 갈 곳 없고 정처 없는 뼈가 있다. 또 그것을 매개로 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있다”라며 “이 배후에는 한 시대와 현재의 우리의 태도가 슬며시 은유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최진아 연출은 “준길의 아픔이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고 희곡을 처음 접했던 소감을 밝히며 “개인의 이야기에 담긴 역사를 마냥 무겁지 않게 다루며, 인물 내면의 갈망과 감정이 전달되는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역사는 한번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고, 파생되는 문제를 남기고 떠난다. 다가오는 역사의 조류에 인간은 피동적이지만, 파생된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능동적일 수 있다. 정체성, 각종 차별과 불이익 등 준길과 학종, 순영 그리고 또 다른 역사적 아픔을 삶에 고스란히 새긴 ‘포괄적 한국인’들의 문제는 여전히 ‘남의 이야기’인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 발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동성은 무엇일까. <뼈의 기행>은 ‘우리의 이야기’를 생각해보기 위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뼈의 기행>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오는 16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