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누적으로 벼랑끝에 서있는 300개 사립박물관·미술관
적자누적으로 벼랑끝에 서있는 300개 사립박물관·미술관
  • 김준현 기자
  • 승인 2009.10.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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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주년 기념 특별기획 ‘찬란한 박물관 뒤의 그림자’

풀뿌리문화’ 핵심적인 역할에도 정부·지자체 지원 쥐꼬리…
박물관도 적극적 경영전략 세워야

지금부터 꼭 100년 전 11월 1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명을 받아 당시 창경궁의 명정전과 부속 전각이 전시실로 꾸며져 ‘제실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 박물관의 효시다. 본지는 우리나라에 근대적 박물관이 등장한 지 꼭 100년 되는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세계장신구박물관을 비롯, 최근의 만화박물관까지 총 21회의 취재를 통해 매호 ‘박물관 기행’ 기사를 게재했다. 본지가 취재한 박물관들은 모두 사립으로서, 비교적 운영상태가 양호한 곳이었다. 그러나 좀더 속 깊은 대화를 통해 적지 않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대도시 소재 사립 박물관들은 겉만 멀쩡할 뿐, 속은 멍투성이라는 것. 중·소 도시나 리 지역의 박물관·미술관들은 겉부터 멍이 들어 벼랑 끝에 서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전남 강진에 있는 '와보랑께 박물관'의 소장품들

일본은 6천개, 한국은 600개
한 나라의 문화의 위상을 알아보려면 그 나라의 박물관 숫자를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박물관의 수가 한 나라의 문화지표를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의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2008 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하면서 ‘한 달에 박물관 한 개 세우기’라는 운동을 급박하게 몰아붙인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나라의 문화 위상을 단기간에 높이는 데 박물관 숫자만큼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미국이 1만 개, 독일이 4천 개, 이웃인 일본이 6천 개를 넘게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09년 현재 600개쯤 되는 박물관을 갖고 있다. 인구 약 8만 명당 한 개꼴로, 유엔이 정한 ‘4만 명당 1개꼴’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중진국 수준은 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중 절반 이상이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사실이다.

본지는 지난해 11월부터 세계장신구박물관을 비롯, 최근의 만화박물관까지 총 21회의 ‘박물관 기행’ 기사를 통해 적지 않은 양의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 박물관들은 모든 분야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종합박물관이라기보다는 모두 특정 분야의 수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전문박물관들이다. 그리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이나 기업 또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사립 박물관들이다.

한 개인이 일생을 투자해서 기호품을 수집, 자비를 들여서 박물관을 세우고, 매년 불어나는 만성 적자를 떠안고 있는 곳!

이것이 그동안의 취재를 통해 나온 우리나라 대부분 사립 박물관의 현주소이다.

△세계장신구박물관 △티베트박물관 △떡박물관 △집풀생활사박물관 △별난물건박물관 △초전섬유·퀼트박물관 △농업박물관 △로봇박물관 △카메라박물관 △화폐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겸재정선기념관 △자전거박물관 △한국현대문학관 △쇳대박물관 △북촌생활사박물관 △산청한의학박물관 △DMZ박물관 △고창판소리박물관 △삼성출판박물관 △만화박물관

그동안 본지가 취재한 박물관의 전시품만 해도 이렇게 다양하다. 그밖에도 사립 박물관의 전시품은 자수·옹기·민화·김치·탈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이들 전시품을 수집할 때의 비용은 제쳐두고, 300개쯤 되는 사립 박물관의 박물관 건립 비용을 합하면 1조 원쯤 된다. 건립비로 봤을 때 세계에서 11번째로 많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넘어서는 비용이다.

관람객 수를 봐도, 우리나라 전체 박물관 관람객 수가 1년에 1600여만 명인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두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800만쯤 된다. 전국 각지에 있는 사립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국가 운영 박물관 2곳의 관람객 수를 웃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운영비까지 포함하면 1년 비용이 1조2천억 원에 이르니, 이 정도 규모면 사립 박물관은 이미 국가 기간산업이다.

▲초등생들이 찾아가는 박물관 행사 모습
‘풀뿌리문화’의 핵심역할 수행하는 사립박물관
이렇듯 국·공립 박물관에 못지않게 국가적으로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사립 박물관은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주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국·공립이 갖지 못하는 전문 분야의 소장품을 무수히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수가 대도시 이외에, 심지어 리 단위의 폐교에까지 자리 잡아 운영되고 있는 사립 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글자 그대로 ‘풀뿌리 문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면서 비정규 교육까지 수행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요성을 오래 전에 인식한 선진국에서는 사립 박물관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두텁다. 사회적인 관심도 그 뿌리가 굳건하다. 그러나 우리 사립 박물관의 현실은 참담하다. 주 수입원인 입장료로는 박물관 운영비의 10%도 채우지 못할 정도여서 90% 이상의 사립 박물관들은 매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적자를 떠안고 있다.

도대체 그런 적자와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사립 박물관을 왜 운영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사립 박물관은 기업에서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 종교 단체가 세운 박물관, 그리고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 등,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히 외부의 공식적인 지원이 별로 또는 거의 없는 개인 운영 박물관이다.

개인이 설립, 운영하고 있는 사립 박물관은 대개 출범할 때 처음부터 박물관을 최종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저 개인적으로 갖고 있고 싶다거나 학문적으로 수집한다거나, 또는 민족·국가 의식의 발로로 시작을 한다. 그러다가 수집품의 수가 늘고 규모가 커지면서 ‘소유’에서 ‘보존’으로 한 단계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재산을 쏟아붓는 것은 흔한 일이고 가족의 반대 따위로 불행을 겪게 되는 일도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또 그 과정에서 이제 그만 좀 하고 수집품을 모두 처분하라는 주위의 압력에 시달린다. 그러나 숱한 세월 동안의 고생과 노력과 애정이 아까워서라도 그 취미를 버리지 못한다. 그 대신 다른 궁리를 한다. 함께 식당이나 카페 같은 것을 운영하면 소장품을 활용한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라는 꾀가 생기는 것이다. 아니면, 갖고 있다가 몇 년 후 값이 뛰면 팔아서 돈을 챙길 생각도 해보고, 또는 아예 사람들한테 소장품을 보여주는 길로 가자는 생각도 한다.

이 세 가지 길 중에서, 현재든 과거든 사립 박물관 운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 번째 방법을 택한 사람들이다. ‘소유’에서 ‘보존’으로, ‘보존’에서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해 처음 몇 년은 정상적으로 학예사 등 직원을 채용해서 꾸려나간다. 그러나 이내 운영난에 봉착해서 하나둘 해고하게 되고, 결국에는 관장 혼자서 모든 박물관 업무를 도맡는 것이 사립 박물관들의 전반적인 경향이다.

박물관 등록법 엄격한데 세제혜택·기금지원은 미미
물론 국가에서는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을 제정하여 최소한의 지원, 감독 등의 규정을 하고 있지만 세제 혜택이나 기금 지원이 너무나 미미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앙정부에서 해당 지자체로 주관 기관이 변경되면서 박물관ㆍ미술관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1종 박물관 등록을 받으려면 100m2 이상의 전시실에 소장품이 100점이 넘어야 되고, 2종은 전시실 82m2, 소장품 60점 이상을 갖춰야 한다. ‘학예사 1명 확보’는 의무다.

그러나 등록이 된다 해도 큰 혜택은 없다. 지방세 감면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개인 박물관의 소장품은 등록하는 순간 함부로 처분을 하기도 힘들어진다. 공공의 물건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처분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변경 신청을 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한 것이다. 그러니 사립 박물관·미술관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훼방만 놓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기는커녕 현상 유지하기조차 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너무나 소중한 유물·자료·작품들이 창고에서 잠자고 있거나, 전시실인지 창고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좁은 공간에 걸어다니기조차 불편할 정도로 가득 차 있어 훼손 위험에 노출돼 있는 곳도 많다.

또 창고 공간이 모자라 소장품을 여러 곳으로 분산·보관하고 있는 박물관·미술관도 적지 않으며,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해 전시물에 압류통지서가 붙은 박물관도 있다. 사립 박물관은 국·공립 박물관처럼 큰돈을 들여 첨단보안시설을 구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보안이 취약해 소장품 관리에 애를 먹는다. 조그만 전시품은 관람객들이 슬쩍 주머니에 넣어가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 소장품 보존에 반드시 필요한 항온·항습 시설이 돼 있지 않아 항상 파손 위험에 노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자료 구축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국가적 재산 손실 가능성이 항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예사 보유 현황도 한 관당 평균 1.27명에 그치고 있어서, 해당 인력을 채용하지 못해 아예 무료로 개방하는 박물관도 속출하고 있을 만큼 심각한 현실이다.

▲한국박물관 100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매일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아트디자인 상품개발·판매, 관람객 유치 위한 다양한 홍보전략 필요
“그 사람, 박물관 운영하는 사람이야.”

“그 사람, 박물관 운영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그 사람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아니면 경제적으로 크게 이윤이 생기는 일이니까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에서조차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후원이나 지원이 턱없이 열악한 실정이다.

물론 사립 박물관·미술관이 국민이나 공무원들을 상대로 홍보하는 데 게을렀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화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지자체나 지역사회를 상대로 홍보하는 과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학예사들의 인건비를 현실화해서 지급하는 사안이다.

요즘 공교육에서 현장학습이다, 체험학습이다 강조하고 있는 부분을 박물관·미술관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법도 바람직할 것이다. 학예사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업무는 물론, 공교육에 기여하도록 제도화하고 그에 대한 급여를 지자체나 국가가 책임지면 된다.

기부 문화의 정착을 위해 다양한 후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유물·작품·자료 등의 기부와 부동산·인력의 지원 등을 위한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또한 사립 박물관·미술관은 국가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도 경영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수익 사업이나 후원회, 자원봉사제도 등에 대해 다양하게 모색하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

매월 5천 원의 후원금을 내는 3천 명의 후원자를 확보하고 있는 통도사성보박물관의 경우나, 후원금을 받으면 직접 재배한 차를 답례로 주고 있는 의재미술관 등의 경우가 성공적인 예이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이 주제로 삼고 있는 소장품의 아트디자인 상품을 개발, 판매한다든가, 더욱 적극적인 운영비 확보 노력과 함께 관람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홍보 전략을 실천에 옮길 때인 것이다.            

김준현 기자 jhk@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