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블루사이공’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블루사이공’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6.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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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사이공은 골리앗, 블루사이공은 다윗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30년이 되었습니다. 한 극단을 30년 동안 오롯하게 이끌어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겠죠?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모시는 사람들’은 특히 김정숙 작가와 권호성 연출이 좋은 콤비를 이뤄서 작품을 계속 만들었지요. 두 분을 중심으로 해서 ‘모시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김정숙 작가보다 더 집요하게 캐릭터에 파고드는 작가가 있지요. 권호성 연출보다 더 세련되게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연출도 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작품을 평할 때, 이 한 마디는 꼭 해야겠습니다. 두 분이 만든 작품에선 ‘사람’이 아주 참 잘 보여요. 때론 애틋하게 때론 명징하죠. 근현대사를 살았던 그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고, 우리의 아픔이죠, “그들이 저렇게 살았는데, 우리도 허투루 살 순 없다!” 내가 본 ‘모시는 사람들’의 작품에선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객석에서 일어섰습니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 30주년 기념 뮤지컬 ‘블루사이공’을 드디어 보았습니다. ‘드디어’란 말을 꼭 하고 싶네요. 초연 때도 그랬고, 2000년대 초반에도 그랬고, 그 땐 제가 두 분 또는 이 작품의 진가를 너무 몰랐던 시절이었어요. 다소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창작뮤지컬 블루사이공(1996년, 서울 초연)은 그저 미스사이공(1989년, 런던 초연)의 카운터파트 정도가 아닐까 추측했어요. 월남전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다룬 소설 ‘하얀 전쟁’(1985년)은 제대로 열독하지도 않으면서 크게 인정했지만, ‘블루사이공’은 그저 한국적 제작현실에서 고군분투하면서 만들어낸 노작(勞作) 정도로 치부했었죠.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크게 반성합니다.

하지만 두 분을 점차 알게 되었고, 대한민국 뮤지컬의 역사에 좀 더 깊이 파고들면서, ‘블루 사이공’이 갖는 뮤지컬적인 가치를 포함해서, 대(對) 사회적 메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뮤지컬 ‘블루 사이공’은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김상사를 주인공으로 무대에 소환합니다. 그 땐 왜 그렇게 왜 그리 판단력이 없었을까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가 참 멋진 사람이고, ‘말썽 많은’ 총각도 군대에 가면 ‘사람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특히나 ‘월남’까지 갔다 오면 세상의 어떤 풍파도 모두 이겨낼 자신만만한 대한남아(大韓男兒)가 된다고 생각했죠.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체육대회가 열릴 때,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 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무슨 뜻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이 노래가 매우 씩씩하고 정의로운 생각하면서 불렀었죠. 학교에서 파하고 돌아오면, 커다란 옷장의 거울을 보면서 ‘동네사람 모여서 얼굴을 보려고 모두다 기웃기웃’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그저 즐거워했지요.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할까요? 한국영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71년, 이성구 감독)를 아는 분은 드물 겁니다. 노래제목이 영화제목이 되었어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건전가요’로 분류된다면, 영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야말로 두 말할 것이 ‘건전영화’입니다. 박정희군사정권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가장 권장할만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영화의 기본 설정은 ‘팔도사나이’와 비슷합니다. 신영균(서울), 김희라(경기), 이대엽(부산)이 모두 월남전 참전용사입니다. 그들의 후일담인데, 전라도가 빠질 수 없겠죠. 박노식(목포)은 고국에 돌아와 못된 짓을 하게 되죠. 경상도의 이대엽은 채소장사를 하고, 전라도의 박노식은 깡패조직에 몸담게 되는 것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부정적인 지역정서를 고착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전라도의 박노식도 이후 '기능올림픽‘에 도전을 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하죠. 이 영화를 소개한 시문기사에선 “월남에서 베트콩을 무찌르던 그 기백과 투혼으로 사회라는 전장(戰場)에 도전, 세파를 헤치고 제 나름대로의 길을 성공으로 이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월남전 참전에 대한 명분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월남전 참전 용사들은 모두 귀중한 전쟁 경험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사회를 잘 이끌 수 있는 ‘산업역군’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참 우습죠? 뮤지컬 얘기는 안 하고, 딴 얘기만 흥분해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듯 미국의 휘하(麾下)에서 오직 월남전에 대한 긍정적인 면만 부각했던 한국사회가 오래 계속되었는데, 그런 나라에서 ‘블루 사이공’이란 작품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의미가 있는 것이죠. 뮤지컬 ‘블루 사이공’은 작품내용 면에서, 한국사회에 던지는 파장은 매우 큰 것이었죠.

뮤지컬을 보면서 각인 되는 두 개의 키워드는 ‘빨갱이’와 ‘고엽제’입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레드 콤플렉스가 얼마나 넓고 깊게 부정적으로 파고들었나?” 혼자 노는 소년을 통해서 아프게 전달됩니다. 전장에서의 웃통을 벗은 ‘따이한’ 병사의 건강한 몸과 대비되는, 훗날에 찾아온 고엽제의 피해는 르뽀와 정극 이상으로 관객에 전달되는 파장은 큽니다. 뮤지컬이란 장르의 속성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만 제대로 보여주면 끝’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트리죠. 

권호성 연출이 작곡한 뮤지컬넘버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한민국의 노래장르를 모두 포함하면서, 한 시대의 노래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줍니다. ‘건전가요’의 시대를 넘어서 ‘민중가요’의 시대의 정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연출가가 권호성이라는 것에는 어떤 이견도 없을 겁니다.

뒤늦게 ‘블루 사이공’을 보면서, 나 또한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마음은 더 뜨거워졌고, 머리는 더 차가워짐을 경험합니다. 그 시절 김상사 손병호가 그립고, 극 중에서 김상사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묘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극중 가수’를 임희숙은 어떻게 했을까? 무척 궁금해집니다.

미국적 얄팍한 감상주의에 디지털적 시스템에 의존한 ‘미스 사이공’에 반하여, ‘사람’을 보이게 하면서 보편적 휴머니즘에 호소하고, 세트 등을 최소화하면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파고드는 ‘블루 사이공’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라고 하면, 상투적인가요? 제겐 처음부터 끝까지 ‘블루 사이공’의 모든 것이 그랬습니다. 지금부터 또 30년이 더 지났을 때, 브로드웨이에서는 ‘블루 사이공’을 공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