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석의 동시대 음악이야기] 좋은 음악은 사람을 살린다
[장용석의 동시대 음악이야기] 좋은 음악은 사람을 살린다
  • 장용석 /문화기획자
  • 승인 2019.06.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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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용석 /문화기획자

음악 듣는게 취미이자 거의 직업과 관련된 일이 돼버린 요즘 일주일에 찾아 듣는 음악이 50여곡 정도, 그 가운데 내 관심과 감성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은 두 세곡 정도이니 일년으로 계산하면 대략 백 여곡 정도가 될 듯 싶다. 한때는 한달 급여의 절반을 음반사는 것에 바쳤을 정도로 음악에 몰두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력도 없거니와 열정도 그만큼 따라주지 못해 안간힘을 내며 겨우 버텨내고 있는 정도다. 사실 음악을 직업적으로 듣는 일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며칠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음악은 때로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똑바로 날아와 우리 마음에 꽂힌다. 그리고 몸의 조성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그런 때면 마치 열일곱 살로 돌아가 다시 한번 격렬한 사랑에 빠진 기분이다’ 마치 동병상련이랄까 이 양반도 나랑 같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일사천리로 하룻밤에 책을 다 봤다. 하지만 나는 정말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마다, 아니 좋은 음악을 우연히 들었을 때 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은 보통 잠을 잘 때 분비되는데 피로도 회복하고 병균도 물리치고 암 세포도 이기게 하는 일종의 선한 마약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깨어 있을 때에도 엔돌핀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사랑을 나눌 때라고 한다. 사랑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 것은 뇌속에서 알파파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인데, 사랑을 하면 병도 빨리 낫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움직이면 피로한 것도 모르고 손해나는 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깨어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엔돌핀의 4,000배 효과가 있는 호르몬이 최근 과학계에 의해 규명되었다. 이름하여 다이돌핀(Didorphin). 일명 ‘감동 호르몬’이라고 불리우는 다이돌핀은 오직 인간의 체내에서만 생성된다. 그런데 생성되는 경우가 네가지 경우에만 만들어진다고 한다. 첫 번째,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당해 감동받은 경우, 두 번째,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경우, 세 번째, 진정한 사랑에 빠졌을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훌륭한) 음악에 감동 받았을 경우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경우는 자주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훌륭한 음악에 감동받는 일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 수시로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럼, 모든 음악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다이돌핀을 생성케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 이다. 음악(Music)은 과학(Science)과 인간성(Human Being, 감성)의 영역이 교묘하게 융합되어진 산물이다. 인간의 귀에 도달하는 과정까지는 소리(Sound = 과학)에 불과하지만, 그 소리가 귀를 거쳐 신경계를 타고 뇌를 통과해 심장에 다다를 때 전혀 새로운 반응이 창조된다. 그것은 바로 공감(Sympathy)이다.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음악‘이라 부른다. 그런데,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음악이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다이돌핀‘이 항상 생성되는 것도 아니다 라는 얘기다. 이즈음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을 해본다.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도 들을때마다 감정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음악이라도 감동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라이브로 보고 들을때와 음반으로 듣는 경우도 감동의 진폭은 차이가 난다. 그러니,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서도 기실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음악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재즈(Jazz)는 내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와 같은 음악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뭔가가 생겨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 재즈란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이른바 ‘명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음반 몇 개를 소장하고 가끔 듣는 정도의 음악이다. 사실 이 정도의 노력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몇해 전 재즈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이 추천해준 뮤지션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 건네준 음반 한 장. 기타리스트 짐 홀(Jim Hall)의 'Concierto'였다.

원래 짐 홀이 40대 중반이었던 1975년에 발표한 음반인데, 1997년에 디지털 사운드 리마스터링(Digital Sound Re-mastering : LP를 CD로 디지털 복각)한 음반이었다. 그가 내게 짐 홀의 음반을 건네주면서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귀와 몸을 맡기세요. 그럼 음악이 들립니다. 그리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을 난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기타리스트 짐 홀을 알았지만, 그의 음악은 아직도 내겐 ‘재즈’로만 읽힌다. 그게 내공의 차이인지, 관심과 열정의 방향이 달라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음악이란 것이다. 분명 같은 음악이지만 항상 다른 음악이다. 그게 재즈의 매력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기실 재즈란 뮤지션이 연주하는 순간의 음악이다.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연주해도 감동과 느낌, 질감과 공기, 연주자의 감정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즈음반이란 그저 한 순간의 버전(Version)하나를 기록한 것 일 뿐이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을 기록한 음반을 듣는다는 것은 비록 라이브는 아닐지라도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엔돌핀의 4,000배 효과가 있는 ‘다이돌핀’이 생성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건강함과 행복함을 선물받는 것이다. 우리가 축제와 공연장과 음악클럽을 드나들거나 라디오나TV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찾아 음반을 사서 듣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런 ‘좋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힐링시키며 건강과 행복함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항상 그렇진 않지만 분명 좋은 음악은 사람을 살린다. 신이 우리에게 음악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