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소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예리한 풍자
[윤진섭의 비평프리즘]소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예리한 풍자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06.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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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지금 대구미술관에서는 한국의 팝아트를 다룬 [팝/콘(Pop/Corn)]전(2019. 6. 11-9. 29)이 열리고 있다. 김기라, 김승현, 김영진, 김채현, 남진우, 노상호, 아트놈, 옥승철, 유의정, 이동기, 임지빈, 찰스장, 한상윤, 275C 등 14명의 작가를 초대한 이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현단계 한국팝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초대작가들 중 이동기, 아트놈, 찰스장, 한상윤 등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2009년 [인사미술제] 이후에 등장한 신예들이다.

한국의 팝아트는 1967년 당시 중앙공보관 전시실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의 참가단체 들 중 ‘무’와 ‘신전’ 동인의 일부, 즉 정강자, 김영자, 심선희, 이태현, 최붕현 등등의 작품들에서 첫 징후가 나타난 이후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는 2009년에 열린 제3회 [인사미술제]의 주제로 ‘한국의 팝아트’를 정하고 당시 기준으로 약 40여년에 걸친 한국 팝아트의 역사를 기술한 바 있다. 60년대의 ‘팝’은 대중소비사회로서의 사회적 현상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무늬만의 팝에 지나지 않았지만, 88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진정한 한국팝의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2천년대의 한국팝은 이른바 ‘테이크 아웃’의 소비적 징후가 한국적 도시 삶의 현장 깊숙이 찾아든 본격 팝이다. 앞서 언급한 대구미술관의 전시는 이 시기의 한국팝을 다룬 작가들의 활동에 주목한 기획전이다.

지금 강남의 다도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화백의 [Total Recall](2019. 6.15-6.27)전은 특이하게도 팝적 상징이나 아이콘을 사용하지 않고 실내나 거리 풍경 속의 인물화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전시다. 러시아의 레핀대학에서 수학한 이화백은 고전적인 유화기법은 물론 정밀한 묘사력을 배양하는 엄격한 실기교육 과정을 거친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엄밀한 의미에서 장르적으로는 인물화에 속한다 할 수 있으나, 주제는 풍요로운 도시 속에서 공허한 삶을 이어가는 도시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팝아트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는 젊은이들의 의식의 해방구라고 일컫는 강남의 카레와 술집 풍경을 주로 그린다.

▲이화백, Bigger Ringing, 160x80cm, 캔버스에 유채, 2013 도판.

그러나 그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젊은 남녀들의 시선은 서로 어긋나 있다. 정겨운 지인들의 만남이요, 모임이지만 거기에는 대화가 부재하는 것이다. 일찍이 저명한 사회학자인 데이빗 리스만(David Riesman)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가리켜 ‘군중 속의 고독’으로 부른 적이 있지만, 그가 자신이 살았던 60년대의 사회를 그렇게 호칭한 이후 현재의 지구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는 편이 타당하다. 특히 소비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 도시의 환락은 너무나도 극심하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대변되는 일련의 사건에는 거대 자본의 이면에 가려진 퇴폐적인 성의 문란과 도구화 등등 사회적 아노미 문제가 담겨 있다. 이화백은 일찍이 10여 년 전부터 특유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강남의 소비문화를 고발해 온 작가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처럼 독자적인 그의 시각은 그동안 우리 화단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 했다.

이화백의 독자적인 작품세계가 주목되는 이유는 사회와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유연하게 바뀐다는 점이다. 약 20여 년에 걸친 그의 활동을 되돌아보면 변화를 추구하는 그의 행보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을 소재로 한 풍경화는 이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풍경화 속에는 드넓은 광장에 서성이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으며, 하늘은 변화의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검정색 배트맨의 동상이 높게 솟아 있다. 어딘 지 모르게 불안한 징조가 가득 담긴 그림이다. 마치 암울한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정의의 사자 배트맨을 기다리는 것 같은 암시적인 그림이다. 

단순하면서도 뇌리에 쏙 박힐 듯한 팝적인 아이콘을 고안하는 대신, 이화백은 고집스럽게도 약간 단순화된 화려한 모습의 인물상들을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팝의 화풍을 견지해 나간다. 이번 출품작들에서도 이런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그린 일련의 인물화들과는 달리, 화려한 모습의 실내 풍경을 그린 작품이 이채를 띤다. 소파에 앉아있는 여성의 왼쪽에는 그녀의 컬렉션일 듯 싶은 다양한 모양의 종, 도자기, 향수병, 술병, 인형 등등이 진열장 속에 가득 차 있다. 이화벽이 구사하는 색채가 늘 그렇듯이 화려한 색채는 방안을 가득 채운 듯 싶은 진한 향수의 내음을 전달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화백 작품의 요체는 인물화에 있다. 그는 단순하지만 대상의 특징을 비범하게 잡아내는 작가이다. 따라서 이미 강남의 청춘남녀들을 그린 ‘팝’풍의 인물화에서 인물 묘사에 대한 그의 탁월한 기량을 살펴본 바 있듯이, 화가로서 이화백의 정체성은 인물화를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등장인물의 서로 비껴난 시선들이 상징하는 것처럼 그는 현대의 도시에 안개처럼 떠도는 비정하면서도 비인간적인 세태를 그러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이화백의 작품이 단순화된 아이콘을 통해 단순히 소비적인 사회를 풍자하는 여타의 팝 아트 작품들과 다른 점이다. 즉, 이화백은 사회학적인 차원의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화백이 러시아 유학시절에 그린 90년대 후반의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실내풍경 속의 인물들을 설정한 점은 최근의 인물화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나 색채는 무겁고 진지하다. 러시아인들로 짐작되는 등장인물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아 보인다. 이처럼 묵시록적인 분위기는 주로 색채에서 비롯되는데 화실 풍경을 그린 작품 역시 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옛날에 그린 작품들과 근작을 섞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이화백의 작품의 변천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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