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무형문화재 제도·정책 변화의 당위성
[성기숙의 문화읽기] 무형문화재 제도·정책 변화의 당위성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19.06.21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며칠 전 문화재청 개청 20주년을 맞아 문화재 보존정책의 패러다임을 재설계한다는 내용의 정책 발표가 있었다. 문화재청이 국(局)에서 청(廳)으로 승격된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문화유산 미래정책 비전 6대 핵심전략’은 문화재 보존체계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기에 충분하다.

문화재 보존정책 패러다임 재설계

‘미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우리 유산’이라는 타이틀로 천명된 문화유산 미래 정책 비전 방향은 다음 6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 중앙정부 주도에서 -> 지역 민간의 자발적 참여, ▲ 수도권 대도시 중심에서 -> 지역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 ▲ 수도권 대도시 중심에서 -> 소도시 활성화와 지역 간 균형, ▲ 점 단위 개별문화재 중심에서 -> 점·선·면 역사인문 공간 보존, ▲ 지정문화재 위주 보호에서 -> 비지정문화재도 포함하는 포괄적 보호, ▲ 원형유지, 규제 중심에서 -> 가치보존·창출, 진흥·조장으로 설정됐다.

이와 같은 정책변화가 향후 실현된다면 국보와 보물, 사적 등 지정문화재 보호에 치중된 문화유산 보존체계가 대폭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핵심은 지정주의에서 목록주의로의 전환, 그리고 비지정 문화재도 포용한 포괄적 보호제도가 도입된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목록주의 도입은 최근 무용계에서 역설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보유자(사람) 지정을 없애고 ‘종목지정’으로 전환하자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문화재청이 천명한 이번 정책 전환은, 그 의미상 유형문화유산에 국한돼 있지 않다. 예컨대, 지정주의를 탈피하여 목록주의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목록주의 도입 취지는 사라질 위험이 있는 문화재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위한 긴요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문화재 보존관리에 대한 면(面) 단위 확장도 눈여겨볼 대목이라 여겨진다. 역사·문화·환경 등 고려대상을 확장하여 입체적 보존체계를 구축하고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 및 민간의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한다. 또 비지정 문화재를 포함한 보존체계 구축 방안은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알다시피, 무형문화재 제도는 1960년대 초반 탄생된 공적(公的) 제도화의 산물이다. 그후 60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장르별·종목별로 ‘인기/비인기’, ‘부익부/빈익빈’ 등 양극화 현상이 초래되었다. 인기종목이냐, 비인기종목이냐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났다. 문화재 지정에서 소외된 춤들은 그동안 사장되거나 소멸된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분야별 다양성을 고려한 ‘맞춤형’ 무형문화재 제도 수립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작금의 한국무용계는 세대교체의 변곡점에 놓여있다. 최근 몇 년 사이 1세대 보유자들이 작고하여 전통무용계에 큰 손실을 안겨줬다. 1세대 보유자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1세대 보유자들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근현대 격동의 시기 천대와 멸시 속에서 이른바 ‘전통문화 지킴이’로서 일평생 소임을 다했다. 오늘날 전통문화가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생생히 살아 숨쉬게 하는데 헌신한 공로가 크다. 

반면, 독보적 기량으로 쌓아올린 권위와 상반되게 잡음과 폐단도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무용분야 보유자의 경우, 독점화·권력화·사유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없지 않다. 어떤 측면 작금의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논란의 불씨는 오랜 세월 인간문화재(보유자) 위치에 있었던 1세대 보유자들의 장기독점과도 무관치 않으리라.

보유자지정 -> 종목지정

전승환경 및 장르 특성을 고려한 이른바 ‘맞춤형’ 무형문화재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정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보유자지정’에서, ‘종목지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앞서 문화재청이 천명한 보존체계의 변화에서 ‘지정주의 -> 목록주의’는, ‘보유자지정 -> 종목지정’ 전환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해 보인다.

오늘날 무형문화재의 양극화로 인한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원인을 찾자면, 우선 장르의 특성 또는 단체종목인가, 개인종목인가의 문제에서 기인된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무형문화재 지정여부와도 긴밀히 연관돼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은 왕성한 전승력을 과시하지만 비지정 종목은 소멸 위기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용종목의 경우, 총 7종목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검무(제12호), 승전무(제21호), 승무(제27호), 처용무(제39호), 학연화대무(제40호), 태평무(제92호), 살풀이춤(제97호) 등이다. 개인종목에 해당되는 독무형식의 승무·살풀이춤·태평무는 가장 인기있는 종목으로 이수자가 약 300여명에 달한다. 전공자를 넘어 비전공자까지 이수자 반열에 올랐을 정도로 대중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제도권 진입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학 무용과 커리큘럼, 국공립무용단 레퍼토리, 전국의 문화센터 프로그램, 각종 무용콩쿠르의 대표종목으로 안착됐다. 전승단절 혹은 소멸될 위기는커녕 과잉보급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할 정도다.

반면, 비지정 전통춤은 공적(公的) 제도의 혜택에서 홀대된 채 점차 자취를 감췄다. 최근  휘몰아친 이른바 ‘전통춤 족보 찾기’ 열풍은 양극화의 반작용으로 야기된 기현상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90년대 이후 전통춤의 엘리트주의에 편승하여 무형문화재 ‘지정/비지정’에 따라 춤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덧붙이자면, 전통춤의 엘리트교육 전환 이후 무형문화재 전승계보의 최상위에 있는 춤꾼들의 기량과 예술성 역시 1세대 보유자들에 비해 하향평준화 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1세대 보유자들의 초월적 경지에서 발현된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아우라’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춤사위의 독보적 기량 상실은 보유자(사람) 지정의 당위성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춤사위의 원형 및 정통성은 반드시 지켜야할 핵심 가치로 인식된다. 특히 근대시기 서양춤이나 일본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형문화재 원형보존의 원칙에서 볼때 ‘서양춤의 한국화’의 산물인 신무용 전승경력은 치명적이다. 민족 고유의 춤전통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일제 침탈 36년은 씻을 수 없는 민족의 트라우마로 각인돼 있다. ‘가깝지만 먼 나라’로 인식되는 한·일 관계 등 문화재 보존의 원칙과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넘지 말아야 할 경계의 선이 분명 존재한다. 이와 관련된 전승자들에 대한 보유자 인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민족 고유의 춤문화 유산을 왜곡·변질시키고 무용계 생태계 파괴는 물론 한국무용사의 형질 변경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는 종신제(終身制)로 운영된다. 춤의 정통성 혹은 춤 기량의 독보적 권위가 망실되어가는 형국에서 국민의 혈세가 더 이상 낭비되어서는 안된다는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의 불공정 논란은 ‘지금·여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아니던가?

先 제도개선, 後 해법찾기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보유자지정’에서 ‘종목지정’으로 전환하여 모두가 누리고 향유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무형문화재 지정종목에 각 유파(流波)를 포용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기존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소외된 전통춤에 대한 문화유산적 가치 재발견 및 보존방안에 대한 정책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무용분야의 경우, 신규지정도 보유자(사람) 보다는 ‘종목지정’으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 아닌가 싶다.

여기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반드시 선(先) 제도개선, 후(後) 해법 찾기로 접근해야 한다. 문화재청의 기존 입장은 선(先) 보유자 선정, 그리고 후(後) 제도개선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불공정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정인을 보유자로 지정하기 위한 특혜 의혹에 불을 지피는 단견이 아닐 수 없다.

4년째 불공정 논란에 휩싸여 있는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절차는 백지화돼야 마땅하다. 이 문제와 관련 올해 무용계의 분노는 기존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거셌다. 전국의 대학 무용과 교수 및 국공립무용단체장 등 무용계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2차례의 성명서 발표, 청와대 및 문화재청 앞 춤 시위, 대통령께 호소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약 30여건의 언론보도 등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더 이상 이 문제로 무용계를 혼란과 분열로 빠뜨려서는 안된다. 합리적 해법을 모색할 때이다. 최근 무형문화재 정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인 무형문화재과장이 교체됐다. 그것도 행정직에서 학예직으로 바뀌었다. 예사롭지 않은 시그널로 읽힌다. 무형문화재 정책 구현에 있어 학술성·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더욱이 문화재청 개청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문화재 보존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계획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 큰 틀에서는 무용계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보유자인정 불공정심사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서 주장한 해법과 겹쳐있거나 적어도 이곳 저곳에 스며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론하건대, 무위(無爲)로 회귀하여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대변화와 전승환경을 고려한 이른바 ‘맞춤형’ 무형문화재 제도의 재설계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컨대, 단체종목 혹은 공예분야 등 전승환경이 열악한 분야는 국가가 책임지고 지속적으로 탄탄히 지원해줘야 한다. 또 장르의 특성상 보유자 인정이 필요한 분야는 기존 방침을 고수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다양성의 시대에 걸맞게 분야별·종목별 전승환경을 감안한, 이른바 ‘맞춤형’ 정책으로 접근하라는 얘기다. 

최근 한국무용계는 1세대 보유자 대부분 작고하여 세대교체의 변곡점에 있다.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긴 호흡으로 ‘미래 가치를 만들어가는 문화유산’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우선은 4년간 불공정 논란을 초래한 무용분야 보유자 인정절차를 철회하고 무형문화재 제도 및 정책의 근본을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정확한 현황파악이 급선무다. 전국 실태조사를 통한 전통춤의 전승현황 및 춤의 분포 등 종합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파악한 후 합리적 개선책이 마련된다면 더욱 신뢰를 얻지 않을까? 공교육(公敎育) 내 제도화 및 ‘종목지정’ 전환을 통한 자율적 전승환경 구축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