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인터뷰] 김홍신 작가ㆍ남상원 회장, 필연의 우정으로 꽃피운 김홍신 문학관
[Special-인터뷰] 김홍신 작가ㆍ남상원 회장, 필연의 우정으로 꽃피운 김홍신 문학관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6.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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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원 회장 사재 62억원 들여 문학관 기증, 자유로운 바람이 잠시 머물러 회오리를 일으킬 곳
“김홍신과 남상원 콜라보, 역사에 길이 사표될 문학관으로 우뚝서길”기대
김홍신문학관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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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관한 김홍신문학관 건립과정의 스토리가 큰 울림을 준다. 한 사업가가 한 생존 작가를 위해 자신의 사재 62억원을 쾌척해 문학관을 짓고 온전히 기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문학관은 국공립 포함 얼추 60여개 정도 된다. 그 중 작가의 이름을 내건 곳 대다수는 작가 사후 유족이나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서 건립한 것들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엄청난 돈, 62억원을 아무 조건없이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3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세운 재단에 이사장은 커녕 이사로도 등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기부자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생존작가의 문학관을 장중하게 건립한 곳은 유래를 찾기 힘들다 한다.

몇 해전 시인 김남조 선생이 조각가 고 김세중 선생과 신혼의 단꿈을 꾸며 마련한 후, 60여 년 간을 생활해 오던 사저를 예술가들을 위해 온전히 내놓았다. 그것도 직접 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예술의 기쁨’이란 황홀한 이름까지 붙여서 말이다. 그 소식을 접하고 가슴 뭉클했던 감동이 새삼 떠오른다.

이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스토리를 또 만든 주인공은 김홍신 작가와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이다. 두 사람은 충남 논산을 고향으로 두고있는 선후배 사이다. 전시관과 집필실, 2동의 건물로 이뤄진 문학관은 설계에서부터 자재, 조경 등 남 회장의 김 작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곳곳에서 묻어 나왔다. 기본 설계부터 자재까지 완벽하게 집필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음은 물론이다. 이 모든 것들이 김홍신 작가를 더욱더 환한 빛으로 발현시키고 있었다.

▲ 김홍신 작가(좌)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우)이 인터뷰 도중 함박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은영

두 사람의 이름 가운뎃 자를 넣어 만든 홍상문화재단 이사장에도 남회장은 김 작가를 이사장으로 모셨다. 어느 후배가 고향 선배를 위해 이렇게까지 극진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지난 8일 개관식에서 김 작가는 “인연이란 혼자 백두산에 올라가 바늘 한 개만으로 백두산을 파내어 평지를 만들면 한 겁이라 하고 백두산을억만 번 평지로 만들면 비로소 인연이 시작된다고 한다. 오늘 그런 인연 공덕이...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고서야 받을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복을 누리는 작가가 되었다. 너무나 큰 기쁨에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됐다”라고 벅찬 감정을 털어놨다.

남상원 회장은 “돈을 벌어 사회에 봉사와 기여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 그 꿈을 이루어 이 순간만큼은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뿌듯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문학관의 주인공인 김홍신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말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며 대중적인기를 누리고 있는 분이다. 암울했던 80년대 대한민국 최초로 백만부를 돌파하며 전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장편소설 『인간시장』(10권)을 비롯해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거대했던 우리민족 발해의 역사를 지우려 하는데 분노해 『김홍신의 대발해』(10권)를 비롯 136 여권의 책을 썼으며, 이 외에도 동화책과 연극대본 등 미발표작도 상당수가 된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8년 연속 의정활동 1위, 방송인, 교수, ‘반체제’ 시민운동가 등 한 개인의 활동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일들을 해왔다.

문학관 개관식을 마친 후 두 사람을 만나 문학관 건립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개관축하객들을 배웅 후 긴장이 풀린 덕분인지, 화기애애 웃음꽃이 가득한 가운데 진행됐다.

“바람이 멈추는 곳, 바람을 볼 수 있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원천이 되는 곳”이라고 문학관을 정의했다. 선생의 '바람'은 어떤 의미인가?

김홍신 작가
김홍신 작가. ⓒ이은영

김홍신 결론은 바람은 자유다. 그런데 바람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잘 부는 바람이 있고, 희망이 있고, 한 바람 두 바람 하는 길이의 바람이 있고, 마지막으로 일탈, 벗어나는 것, 뛰어넘는 것 등 이런 일탈의 바람이 있다. 그 네 개를 합해보면 자유다. 자유로운 것. 돌아보니 나는 평생 자유롭게 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더라. 말하자면 자유롭게 살기 위해 직선도로로 어디를 빨리 가려고 하는 것보다는, 마음 놓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심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나보고 세상을 휘젓고 다녔다고도 하고, 반대로 좋게 얘기하는 사람은 평생을 자유자재로 살았다고 얘기를 한다. 그런데 오늘 문학관 개관식 와봐서 알겠지만 이게 잘못하면 내가 묶여버릴 수도 있겠다. 나라는 바람이 멈춘 바람이 아닌데 잠깐 멈추게 생겼다. 누구 때문인지는 알 것이다.(웃음)

남상원 새로운 바람을 위해서.(웃음)

김홍신 남 회장 때문에 지금 잠깐 멈추는 바람이 될 뻔했다. 그런데 그 깊은 뜻은 내 인생을 한 번 업그레이드하고 다시 새로운 길로 가는 길목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만년필을 들고 죽겠다. 결국 죽을 때까지 쓰겠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가 자녀들한테 “내가 힘이없고 죽고 가더라도 내 손에 만년필을 쥐어 달라. 그러고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 얘기는 전시된것을 봤겠지만 내가 평생을 놀아보지 못하고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도 136권의 책을 집필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한다. 그 바쁜 와중에 136권을 썼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남상원 본인도 본인을 이해 못 하시나.(웃음) 궁금하다.

김홍신 못한다.(웃음) 그런데 지금 문학관에 전시해놓은 것을 보면 알겠지만 써놓고 발표 안한 작품, 책으로 출판하지 않은 것도 이번에 여러 개 나왔다.

심지어 동화까지 쓰셨다.

김홍신 맞다. 동화, 수필, 시, 연극 대본까지 썼다. 연극 대본은 이번에 전시를 안 했지만 그런 것까지 썼다.

그래서 그런 것들의 총체가 본인이 갈망했던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싹튼 자유로움에 대한 것들이 바람 그리고 나의 것으로 연결되는 것인가.

김홍신 그러니까 전시장 사인판에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라고 쓰여있다.동창회 등 모임에 가보면 남들이 나한테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건강하다고 한다. 내가 건강한 이유가 (키가)작아서 덕을 보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작아서 건강이 괜찮은 것 같고, 두번째는 미움이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미움이 없다. 다만 버럭 하는 성격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딱 그 때뿐이다. 그 뒤 계속 그거 하나 가지고 후회를 오래 한다.

남상원 주변 사람들이 농담으로 욱하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웃음)

김홍신 내가 욱하면 무섭다.(웃음)

예전에 국회의원하실 때도 욱하셔서 지금도 길이 남을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김홍신 그랬다. 난리를 피고.(웃음) 그런데 미운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내가 다른 건 모르겠고 용서를 잘한다. 미움을 털어버리고 용서하는 건 참 잘 배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카톨릭이지만 날마다 108배를 한다. 또 내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원고를 쓰든 무엇을 하든 뭐든지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그런 것들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다.

종교의 영향인가.

김홍신 종교도 있고, 마음공부를 한다. 내 스승들이 전부 종교의 대지도자들이다. 지금은 법륜스님이지만 故김수환 추기경님도 그렇고, 진제 종정스님이 그렇다. 늘 나는 마음공부를 위해 면벽수행도 하고 명상도 한다. 또 매일 아침 눈뜨면 기도를 한다. 오늘도 똑같이 했다. 첫째, 살아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오늘도 웃고 즐겁고 재밌게 건강하고 신나게 살겠습니다. 셋째, 오늘도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기도들이 세상에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내용이다. 사실 사랑하는 능력은 참 부족하다.

남상원 회장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이 집필관 앞에서 윤선도의 오우가의 다섯 벗 중 소나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이은영

남상원 회장에게 다음 질문을 드린다. 사실 조금 외람될 수도 있지만 논산의 문학가가 김홍신 선생만 계시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왜 김홍신 선생에게 이토록 꽂혔나.

남상원 좋으니까.(웃음) (김 선생님이)편안하시지 않은가. 다른 분들은 교류가 없다. 누구나다 교류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잦은 교류속에서 따뜻하고 배려깊은 선생님의 인품에 늘 존경하고 있었다.

편안함, 그 이외에 또 어떤 계기들이 좀 있었지 않았나.

남상원 아까 (개관식에서)잠깐 언급했듯이 내 평생 꿈이 사회에 봉사하는 거다.

김홍신 삼성출판사 회장을 지낸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도 아까 축사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남회장의 문학관 건립 계획을) 몇 번 얘기했을 때마다 여러번 놀랬다.

남상원 사실 복이 많은 거다. 사람이 내 마음 속에 어떠한 생각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평생의 꿈을 김홍신 선생을 통해서 이룬 건가.

남상원 그렇다.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것. 특히나 김홍신 문학관은 내 고향이 논산이고 하니까 더욱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김 선생님이 구상하는 작품이 잃어버린 백제의 역사를 부활시키는 것이고,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다. 우리는 백제 땅에서 크고 자란 사람이다. 후세를 위해서 의미가 있지 않겠나.

김홍신 실제 주변을 많이 도와준다.

남 회장은 홍상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은 맡을 만 한데 굳이 이사장 자리를 고사한 이유가 궁금하다.

남상원 아직은 이사장 자리를 맡을만한. 역량도 부족하고 살아보니 밖으로 이름 드러나는 것이 힘들때가 많더라. 재단에 70이 넘으면 생각해 보겠다 했다. 사실 이사도 등기하지 않았다. 선생은 문학관을 처음 설계할 때부터 관여했는지.

김홍신 전혀 관여를 안 했다. 오히려 건축할 때 이 자리가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반대를 했었다. 그런데 와서 딱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반해버렸다. 그리고 설계할 때 나는 전혀 아는 게 없으니 한 마디도 해본 적 없다. 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 전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윤이상평화재단에서 활동한 문화기획 전문가를 만났고,  주변에서 전시 기획을 정말 잘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남 회장에게 지나가는 말로 슬쩍 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더라.

남상원 개관을 막상 앞두고 전시기획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에 있었는데 김 선생이 한 말이 기억이 났다. 그야말로 대가인 이은주(총 예술감독) 씨를 만났다. 이런 전시 공간이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

이 곳을 문학관 부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남상원 여기 뒤에 전망대가 있다. 거기 앉아서 이 집과 운동장 등을 보면 ‘왜 이 자리인가’ 하는 이해가 된다. 문학관을 둘러싼 산 자체가 소 형상인데 우리 문학관 위치가 소머리에 있다. 관촉사 주지스님이 여기에 건물을 짓는 걸 보고 ‘누가 이렇게 (좋은)자리를 잡았을까?’ 궁금해 했다고 한다. 부지 선정을 위해 땅을 몇만 평을 보고 다녔다. 그 중에서 이 곳을 낙점한 것은 시내가 가깝고 바로 뒤가 관촉사이고 바로 앞이 시민공원이고 건양대도 있다. 그야말로 천혜의 요건을 갖춘 곳이다. 산 이름도 반야산이다.

김홍신 더구나 반야산은 깨달음의 산이지 않은가.

남상원 여기가 논산 시민의 마음의 상징이다.

전체적으로 디자인도 그렇고 자재 하나하나도 무척 신경을 써서 세심하게 지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남상원 집필관 바닥재가 전부 게르마늄과 참 숯이다. 벽은 황토, 내실 천장은 전부 편백이다. 그래서 들어가면 향이 나고 방습 및 방염이 된다. 겨울에도 단열을 잘 해서 영하 10도가 넘어가도 물이 얼지를 않는다.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자고 나면 편안할 수밖에 없다.

▲한옥을 현대화시킨 집필관 내의 연못 전경. 윤선도의 '오우가'의 다섯 벗(송, 죽, 수, 석, 월)을 집필실 안팎에 배치해 더욱 눈길을 끈다. ⓒ이은영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집필관 쪽의 수경 공간이다. 설계를 할 때 어떤 콘셉트로 가야겠다고 구상했나.

남상원 건물 컨셉트를 얘기하자면 집필관은 한옥을 현대화시킨 거다. 겉에서 보면 막혀있고 들어가면 뚫려있다. 옛 가옥들을 보더라도 어디로 가든 계단식으로 돼있다. 사랑방에서부터 일반 식구들이 사는 내실도 벽으로 완전히 막지를 않았다. 또 (윤선도)의 오우가를 들여놓고자 했다. 집필관 앞쪽의 소나무를 봤는지 모르겠다. 옮겨 심기까지 7개월을 공을 들였다. 송,죽, 물, 수석, 달은 연못에 비취니 다섯 벗이 다 문학관에 들어온 것 아닌가. 그리고 옛날 집에는 항상 연못이 있었다. 연못은 부족한 수분도 공급하지만, 화재 시 불을 꺼주는 역할도 하는게 연못이다. 그래서 한옥을 현대화시킨 것이다.

향후 김 선생은 이 문학관에서 논산과 백제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셨다. 그래서 잠시 바람이 갇히는 것 같지만, 잠시 갇혀서 더 큰 회오리를 일으키기 위해서 잠시 또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셈이다. 작품은 어느 정도 구상이 돼 있는지.

김홍신 아직이다. 워낙 자료가 없으니 말이다. 구상을 하려면 자료조사부터 해야 된다. 그동안 내 작품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논산이다. 『인간시장』부터 시작을 했고, 문학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작품들은 다 논산이 배경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축적해 나가야 한다.

백제역사도 거의 없어졌다. 당나라가 아예 철저히 없앴지 않나. 그래서 구상을 위해서는 자료 취합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역사성’이다. 백제가 왜 중요했는지, 왜 멸망했는지. 왜 일본이 백제를 배웠는지 등 이런 역사성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하면 못 쓴다.

김 선생의 대표작 『인간시장』의 장총찬과 정다혜는 80년대 부조리한 상황을 타파하고자 저항했던 인물들이다. 그 시대와 비교해 현시대는 어떤가.

김홍신 눈으로 보이고 쉽게 느끼는 부정부패와 악은 많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그 시스템이 갖춰졌고, 블랙박스, 휴대폰 등의 기기도 발달했다. 또한 시민활동가들과 언론의 역할이 한몫 했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깨어있기 때문에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더 은밀하고 더 비겁하고 더 잔인한 비리와 부정부패는 여전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길게는 아니더라도 『인간시장』을 써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시놉시스는 돼 있다. 다만 아직은 좀 더 기다려보려 한다. 장총찬이 활동해야 할 시대가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인간시장』이 안 팔리는 시대가 좋은 세상이다. (웃음)

김홍신문학관 한 켠에 문학관의 중심인물인 김홍신 작가와 남상원 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김홍신문학관 한 켠에 문학관의 중심인물인 김홍신 작가와 남상원 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앞에서 두 사람이 개관을 기념해 포즈를 취했다. ⓒ이은영

김 선생께서 쓴 책에 자녀들에게 명품을 빗대어 하신 말이 인상 깊다. 물질적 가치가 아닌 사람의 품성의 가치, 명품이 중요한 게 아닌 인간이 명품이 돼야 한다고 했다.

김홍신 인간이 명품. 사람이 명품이 돼야 한다. 사람이 명품이 되면 본인이 가진 것이 다 명품이고 주변도 다 명품이 된다.

참 와닿는 말씀이었다. 말씀대로 명품이신 두 분(웃음), 오늘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문학관 개관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