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 미술과 민주주의》 국제심포지엄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 미술과 민주주의》 국제심포지엄 개최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6.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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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민주주의를 위한, 전문가 의견 제언

미술관에서의 민주주의 실천이 가능할까? 다소 수사학적으로 느껴지는 질문에 현실적 실천 방안을 찾는 자리를 미술관에 마련했다.

2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MMCA) 멀티프로젝트홀(전시동 지하1층)에서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 미술과 민주주의》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 미술관, 현대미술의 역할을 접목한 국내·외 담론의 자리였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미술관의 성과를 되짚는 한편 민주주의가 작품 혹은 전시로 재현한 방식 등을 연구한 후, 미술사와 세계사적 흐름에서 살폈다.

대한민국과 유사한 역사를 갖거나 다른 문화권인 나라들을 선정했다. 미술관, 현대미술, 민주주의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슬로베니아, 아르헨티나, 북아프리카, 중동,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현대미술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발의했다.

심포지엄 첫 날인 오늘 총 6명의 발제자가 ‘현대미술관의 민주주의 실천 – 제도/기관, 사회 정의, 행동주의’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펼쳤다.

▲즈덴카 바도비나츠(Zdenka Badovinac)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장이 기조발제를 하는 모습

첫 번째 기조발제는 즈덴카 바도비나츠(Zdenka Badovinac)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장이 맡았다. 그는 동유럽 미술관에서의 민주화의 의미와 가능성을 설명했다.

이어 “과거 해방을 위한 움직임 속에서 민주주의가 남용되었다”라며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전유물로 쓰여고 있다” 설명했다. 이어 기관과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하며, “미술관은 하나의 조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즈덴카 바도비나츠는 “민주화를 포장하려는 태도와 순수한 민주주의와의 차이를 판별하는 비결(방법)”을 묻는 질문에 “(미술관의)그 동안 활동과 작업을 보면 알 수 있다”라며 “미술관 관리, 행정가부터, 학예사 등 미술관 인력들이 자신들의 명확한 가치를 보여 줘야한다”라고 제언했다.

▲즈덴카 바도비나츠(Zdenka Badovinac)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장(왼쪽)에게 김경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질의를 하고 있다

미술관 관계자가 “수평적 협력과 연대 혁명은 어렵고, 한국에서는 ‘갑질’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인데 해결책은 무엇이가"라는 질문하자, 그는 “수평적 협업을 완벽하게 실행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다. 다만, (미술관은)아이디어를 냈을 때 프로젝트가 수평적의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라며 “프로젝트 준비 시 다양한 분야의 참여를 장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발제는 최태만 국민대학교 교수가 이어갔다. 미술관에서의 민주주의 실천 방안에 대해 《민중미술 15년: 1980–1994》展 기획 경험을 바탕으로 국립기관 한계와 전시의 의미를 제고했다.

《민중미술 15년: 1980–1994》展 은 1994년 2월 5일부터 3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실과 중앙홀에서 열렸다. 오윤 외 246명이 출품한 회화 234점, 판화 68점 등 389점을 선보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결한 민중미술의 형성과 전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작품을 집대성한 전시다.

또한 전시회 때 발생한 ‘모내기 사건’으로 유명하다. 신학철의 작품 ‘모내기’가 국가로 부터 압수당한 사건으로, 그의 작품에 북한을 찬양하는 의미가 있다는 이유였다. 신 작가는 이 일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을 그린 작가로 낙인찍혔다.

▲ 최태만 국민대학교 교수가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 1980–1994》展을 설명하고 있다

최 교수는 전시에 대해 “민중미술이 출범 할 수 있었던 동인은 문민정부의 출범과 임영방 관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 된 결과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임영방 관장은 전시(민중미술 15년: 1980–1994 展)의 전 과정과 결과를 사실에 근거해 결과보고서로 작성하라”라고 말했다며 “이 자료(결과보고서)는 사실성에 근거한 민중미술 기록으로, 민중미술 자료 중에 객관적 기록이 이뤄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내부적으로는 미술관다운 미술관, 소통을 위해 미술관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찾았다. 임 관장 고뇌와 결단의 결과(전시)이다”라고 확신했다. 

▲ 최태만 국민대학교 교수가  전시장 중앙에 걸개그림을 전시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당시 전시평가에 대해 최 교수는 “당시 이론가들로부터 ‘큐레이터십의 부재’와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라 비판을 받은 전시였다”며 “전시는 당시 민중미술의 형성과 전개, 현재 체계화를 보여주는 취지에서의 전시로, 역사적 정리와 회고에 그치지 않고 전망을 모색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중미술에 대한 격렬한 논쟁과 풍요로운 대화의 장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라며 “전시에 대한 평가 절하로 기회의 장이 페지된 것 같다”라며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미술관의 민주화는 작품을 매개로 사람들이 소통하는 것이며, 작품의 의미 재생에 참여 하는 데 있다”라고 미술관에서의 민주주의를 정의했다.

▲멀티프로젝트홀을 청중이 가득 채울 정도로, 국제심포지엄의 열기는 뜨거웠다

다음은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반추하며 미술관의 민주화를 위해 던져야 할 의제를 논의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종합하며 ‘블랙리스트’를 정의했고, 광주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외 한국문학원 등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사건들과 예술가 검열사태를 설명했다.  

특히, 박 교수가 ‘블랙리스트의 문화전쟁’을 설명하며 2014년 1월 당시 김기춘이 수사관들에게 한말 중 “모두가 전투 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투지를 갖고 좌파세력과 싸워 나가야 한다”라는 부분을 인용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그는 ‘블랙리스트 이후 박물관’을 설명하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과 국제박물관협의회에서 정한 <박물관 윤리강령>을 따라야 한다”라며 “박물관의 전문성이나 자율성, 통합성 등이 재정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위협받으면 안 된다. 또한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반대성명의 성격이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강력한 행정 지배으로부터 미술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설명하는 모습

뒤이어 울프 에릭슨(Ulf Eriksson)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스웨덴의 국립미술관에서 기획한 교육 및 공공프로그램이 시민의식 양성에 기여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오늘날 미술관의 주요 과제는 다수의 미술(서사)을 전하는 것”이라며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품과 전시 구성, 홍보 행사 진행이 정교한 젠더 의식과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술관에선 누구나 동등한 것이 중요하며, 관객에게 의미 있는 공공 프로그램 창안을 위해 도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비브 골딩(Viv Golding) 영국 레스터대학교 박물관학과 명예교수는 미술관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장애인, 성소수자, 이민족을 포용해야 함을 주장했다.

마지막 발제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작가,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알레한드로 메이틴(AlejandroMeitin)이 이어갔다. 그는 사회 참여적 예술가로서 자신이 이끌어온 환경운동과 미술이 정치,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은 ‘협업’이라 제언했다. 그러면서, 예술과는 다른 분야로 여기는 지리학, 수문학, 생물학분야의 다양한 분야의 '복합적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심포지엄은 오는 29일(다음날)까지로 총 5명의 발제자가 ‘현대미술의 민주주의 재현 – 초국가적 민주주의, 지역/경계, 재현이후’를 소주제로 의견을 발의할 예정이다.

기조발제를 맡은 T. J. 디모스(T. J. Demos,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즈 미술사ㆍ시각문화학과 교수)가 현대미술의 저항방식과 미학적 함의에 대해 논의한다.

테리 와이스맨(Terri Weissman,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 미술사학과 교수)은 정치적 우경화, 인종 차별적 수사, 비인간적 정책에 맞서는 현대 예술가들의 비판적 재현방식에 대해 발표한다. 샤레네 칸(Sharlene Khan)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시각예술학과 교수는 탈식민화 논의를 불러일으킨 ‘로즈 동상 끌어내리기(#RhodesMustFall)’ 운동을 필두로, 오늘날 남아공 현대미술의 현주소와 미술관의 역할을 재고한다. 림 파다(Reem Fadda) 아부다비 문화관광부 예술감독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중동의 팔레스타인 등 여러 분쟁 지역의 미술에서 드러나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유산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박선영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아시아어문화학과 교수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잡지, 만화, 영화 등 시각문화 자료에서 드러나는 한국 정치사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재현을 통해 분석할 예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관장은 개회식에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미술관의 동시적 역할은 무엇인지 탐색하기 위한 자리”라며 “공허한 발자취에 그치지 않고, 담론 생산에 앞장서기 위해 심포지엄의 발표 내용들은 더욱 살을 붙여서 국ㆍ영문으로 정리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 가을(국립현대미술관)은 ‘광장’이라는 대규모 기획전시를 준비 중인데, 이번 심포지엄이 그 연장선에 있다”라며 “사회변화와 미술의 관계를 짚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