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극장 250개 시대' 이제 때가 됐다 … ‘공공성’ 강화 토론 열려
'공공극장 250개 시대' 이제 때가 됐다 … ‘공공성’ 강화 토론 열려
  • 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7.0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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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문화재단 '극장 공공성 강화 라운드테이블', 지난 5일 충무아트센터서 열려

대한민국 공공극장이 약 250여 개에 육박했다. 80년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시기 붐이 일기 시작해 90년대 지방자치제 발전 및 선거공약과 함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극장은 2019년 현재 200여 개를 넘어서면서 공연예술의 기초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 전경 (사진=중구문화재단)
▲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 전경 (사진=중구문화재단)

하지만 하드웨어인 물리적 공간이 갖춰진 데 반해, 소프트웨어인 그 정체성에 대한 답은 아직 명쾌하지 않다. ‘공공(公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대관료가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민간극장보다 비싸 자본력이 없는 현실 예술가들은 비용 문제로 공공극장 대관을 애당초 포기하는 분위기인가 하면, 기업형 제작극장처럼 운영돼 현장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창작자들만을 선별해 제작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한편에서는 극장의 재정자립도와 행정 문제 등을 들어 대관이 현실적인 대안임을 강조하며 공공성과 별개로 논의해야 하는 문제라고 여기기도 한다.

공공극장으로서 ‘공공성’에 대한 개념이 모호한 것이다.  

중구문화재단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향후 운영방향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5일 오후 충무아트센터 소나무실에서 “공공극장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극장 공공성 강화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은 발제자로 참석한 손상원 정동극장장과 김세환 극장혜화당 대표를 비롯해 윤진호 중구문화재단 사장 등 총 12명의 자문위원이 참석해 오는 9월까지 총 4회(라운드테이블 3회 및 포럼 1회) 열리는 논의의 장의 포문을 열었다.

‘공공극장인가 민간극장인가’ 차이점 모호해 … 극장 ‘공공성’ 확립 시급

본격적인 라운드 테이블은 손상원 정동극장장의 발제로 시작됐다. 

손 극장장은 우선 “많은 공공극장이 자신들의 예술적 정체성, 공연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큰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며 우수한 결과를 내놓은 곳이 많지 않다”라며 “공공극장의 역할이 지역 거점 문화공간으로의 역할 확대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전문공연장으로서 지역의 거점 공간으로서의 역할 정립과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운을 뗐다. 

▲ 제1발제자로 나선 손상원 정동극장장. 손 극장장은 이날 ‘공공극장의 지역 거점 문화공간으로의 역할 확대’를 주제로 발표했다
▲ 제1발제자로 나선 손상원 정동극장장. 손 극장장은 이날 ‘공공극장의 지역 거점 문화공간으로의 역할 확대’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러면서 역할 확대를 고민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관점을 조사하고 논의하는 것이 가장 첫 걸음임을 강조했다. 다양한 관점에는 공공극장을 사용하는 예술가(예술단체) 측면의 관점을 비롯해 지역 생활예술(지역 아마추어 예술가·단체) 측면, 공공극장 향유를 위한 지역 및 타 지역 관객 측면, 해당 공공극장이 있는 지역 시민 측면, 공공극장을 운영하는 공연장 측면의 관점 등을 제시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타 기초문화재단 공연장의 사례(종로문화재단, 안산문화재단)를 들기도 했다. ‘종로문화재단’에 대해서는 ‘지역특수성’에 방점을 뒀다. 손 극장장은 “윤동주문학관, 박노수미술관, 무계원, 황학정 국궁전시관, 창신소통 공작소, 상촌재 등의 다양한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공간을 연계·관리·운영하는 기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종로문화재단의 역할을 확대하고 특성화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안산문화재단’은 먼저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에 예술가들이 참여해 활성화하는 사례로 현재는 청년 예술가 지원을 통한 지역 활성화 사업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특히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의 경우 전문 예술단체를 상주단체로 운영하면서 지역 예술가 프로그램, 청년극단 운영, 예술축제를 함께 운영하여 상주단체의 공연을 통한 향유자를 위한 공연과 생활예술 활성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상주단체 제도로 예술단체와의 협업을 통한 공공 공연장의 역할 확대와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공간 개발을 제언했다. 손 극장장은 중구문화재단만의 상주단체 제도는 재단이 필요로 하는 예술성, 예술의 사회적 기능들을 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역할분담하여 재단이 부족한 예술적 역할을 단체가, 단체가 부족한 부분을 재단이 맡아 가면서 그 성과를 관객과 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발제에 나선 김세환 대표는 ‘대학로에서 바라본 공공극장의 공공성 문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대표는 “공공극장의 공공성 문제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나온 의견은 각자 종사하고 있는 전문분야와 역할에 따라 입장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문제제기는 두 가지가 있다”라며 “공공극장은 대관극장이 아니며, 제작극장이 아님”을 강조했다. 

▲ 제2발제자로 나선 김세환 극장혜화당 대표. 김 대표는 이날 ‘대학로에서 바라본 공공극장의 공공성 문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 제2발제자로 나선 김세환 극장혜화당 대표. 김 대표는 이날 ‘대학로에서 바라본 공공극장의 공공성 문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 대표는 먼저, 공공극장은 공연장 대관을 통해 수익창출을 목표로 만들어진 극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공극장들은 독립적인 예술단을 보유한 극소수의 공공극장을 제외하면 절대다수의 공공극장들은 공연장 대관을 핵심업무로 삼고 있음을 지적했다.  

오히려 민간극장 보다 훨씬 비싼 고가의 대관료를 책정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민간극장에서 책정하지 않는 극장시설물에도 항목별로 별도의 임대료를 책정해서 받고 있는 실정으로, 이를테면 대학로의 민간극장 1일 공연 대관료가 평균 20~40만원 수준이라면, 공공극장에서 공연 시 1일 대관료는 부대설비 항목까지 포함할 경우 1백만원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을 지불해야 대관이 가능함을 설명했다. 

나아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일부 공공극장이 대관 중심으로 극장을 운영하다 보니 관객 인프라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지역단위의 공공극장조차 이러한 운영모델을 막무가내로 답습한다는 데 있음을 역설했다. 

아울러 김 대표는 공공극장의 무분별한 민간 제작극장 운영 방식 따라잡기를 비판했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을 선두로 대기업에서 거대자본을 투입해 중대형 민간극장이 만들어지며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제작극장 붐이 시작돼 두산아트센터, 최근 SK가 출자한 우란문화재단까지 제작극장에 동참하며 활성화되는 상황이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공공극장은 시민에게 양질의 공연예술을 제공해야할 의무도 있지만, 공연예술 진흥을 위해 공연예술가들을 지원해야하는 의무도 있음을 말하면서 공공극장은 단순히 시민에게 공연만 보여주는 극장이 아니라, 문화예술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예술가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공공성’에 대한 문제인식은 민간극장의 몫이 아니지만, 공공극장에게는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랑스 공공극장 사례를 들기도 했는데, “공공극장은 흥행성이 아닌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라며 특히 현실적인 차이가 크게 나는 세부 지원조건을 떠나 우리나라와 가장 크게 차이나는 점은 공공극장운영의 포커스가 극장의 수익증대 혹은 명품브랜드 관리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공연예술창작자들에게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인 공간으로 열려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공연예술창작자들의 창작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지원해주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공연예술 창작물을 시민에게 소개하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공극장 난제 ‘공공성’ 및 ‘자생력’ 두 마리 토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2부는 자문위원 토론으로 진행됐다. 

오성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은 “공공성을 위해서 어느 정도 공공예산을 투입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부터 시민까지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공연예술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아직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았다”라며 “80~90년대를 지나 우후죽순처럼 공연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생겼지만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성 논의를 위해서는 우선 공연예술 및 우리나라의 극장 태생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성훈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이사는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난제는 ‘공공성’과 ‘자생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고 밝혔다. 이어서 “지방자치제 발전 및 민선 단체장들이 전국에 극장이 많이 생겼지만 키워주지는 못했다. 공공성을 가진 지자체가 극장들을 키워준다면 공공성이 100% 보장되겠지만, 대부분의 공공극장 재정자립도를 보면 정부지원금 및 정부출연예산이 20~30% 안팎에 그치고 많아야 50%로 나머지 예산은 각 극장이 충분히 채워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극장은 이윤추구가 아닌 수익창출과 활성화를 위한 고민을 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대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극장이 달리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대관을 공공성 훼손과 연결시키는 것은 조금 성격이 다른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혁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 일꾼장은 “공공극장의 특화된 부분을 활용해 주민들의 문화향유에 도움을 주는 것이 공공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공연 성수기 비성수기를 나눠 상업성 극대화 및 예술가 혹은 지역민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투 트랙 전략이 방법이 될 수 있으며, 대관료 등을 차등화 시켜서 지역예술자원들에게 배분되는 경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대현 중구생활예술거버넌스 총괄디렉터는 “생활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면 시민들의 예술의 일상 학습 단계가 결여돼 공연에 대한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공연에 중요한 요소인 극장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전문예술가들과 함께하는 생활예술가도 나오고 문화적인 학습을 지속하면서 이제 점차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이 공연에 대한 가치를 느낄 때 공연도 공공극장 부분도 활성화되고, 공공성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재환 서울문화재단 극장운영팀장은 “극장에 대한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공공극장에 대한 논의가 깊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극장이 다양한 요구와 상황을 다 수용하는 경우 오히려 무분별해지고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극장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정책적·상황적 변화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 정체성을 구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며, 위원들이 각자 가진 정보와 이해 등이 다르기 때문에 자주 만나 논의 수준을 맞춰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찬 SBS 문화사업팀장은 “사실 공공성에 대한 개념이 아직 모호하다. 하지만 공공극장 논의의 출발자체가 기존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획기적인 변화여야 한다는 데는 의문이 있다. 전국 200여 개가 넘는 극장 중 충무아트센터는 공공 공연장 최초의 뮤지컬 전문극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비교적 잘 자리 잡았다. 가져갈 것은 가져가야한다고 생각한다”라며 “공공 부분과 극장 부분은 투 트랙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극장을 발전시키고 중구지역주민들에게 새로운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이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편은심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 주민소통관은 “극장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 공연을 본다는 것은 문화적 가치를 향유하고 싶은 것이다. SNS에 사진을 올리기도 하는 등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따라서 주민의 입장에서는 지역을 빛내줄 브랜드 가치를 지닌 극장이 있다면 뿌듯할 것이다. 또한 지역민들에게 대관 쿼터제를 도입해 학생들이나 지역예술가들이 공연을 올리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지역 극장이 된다면 공공성이 확보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준희 중구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장은 “‘공공’은 획일적으로 갈 수 없는데 오늘 각 분야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간극을 좁혀나가거나 아니면 서로 다른 지점이 어딘지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한편 극장의 공공성을 논할 때 생태계 현실성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예술단체 생태계도 있지만, 공공기관의 생태계도 있다. 극장 운영의 현실은 돈이 없으면 닫아야 한다는 점이다. 향후 논의에서 그런 현실성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같이 논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호 중구문화재단 사장은 “오늘 라운드테이블 발언을 통해 타당한 요구들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각자 주장에 타당한 지점은 있지만 그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은 하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향후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져 유의미한 결론이 나왔으면 한다. 그래서 비단 충무아트센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른 공공극장의 운영방향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논의를 이뤄가자”고 밝혔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는 총 2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 중 12명이 참석했으며, 킥오프의 성격으로 각자 공공성에 대한 생각을 가볍게 나누는 상견례 자리로 열렸다. 본격적인 토론은 오는 9월까지 진행되는 2·3차 라운드테이블 및 포럼에서 진행되며, 포럼에서는 공개토론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향후 각계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충무아트센터의 방향성과 공공 극장으로서의 역할 재정립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