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홍콩 한국문화원, ‘한류의 고급화’ 현장
[성기숙의 문화읽기]홍콩 한국문화원, ‘한류의 고급화’ 현장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무용평론가
  • 승인 2019.07.0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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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한국문화원은 세계 각국에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국가이미지 제고 및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됐다. 1979년 5월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에 한국문화원이 가장 먼저 개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해 10월 미국 뉴욕 대한민국영사관 소속으로 주뉴욕 한국문화원이 두 번째로 개원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면서 문화예술의 해외진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또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문화홍보를 통한 국가 인지도 및 위상 강화를 위해 재외 한국문화원 증설이 더욱 필요해졌다. 2000년대 이후 재외 한국문화원 설립은 문화강국이라는 대외이미지 상승과 더불어 문화정책의 핵심 전략으로 떠올랐다. 최근엔 한류 확산을 위한 새로운 거점으로서의 뿐만 아니라 문화를 통한 경제적 수익 창출의 원동력으로서 재외 한국문화원의 존재는 더욱 절실해졌다.

▲ 주홍콩한국문화원 주최 제1회 한국전통문화주간의 연낙재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 워크숍·공연 포스터 및 프로그램 (사진=연낙재)
▲ 주홍콩한국문화원 주최 제1회 한국전통문화주간의 연낙재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 워크숍·공연 포스터 및 프로그램 (사진=연낙재)

주홍콩한국문화원, 한류 확산의 새로운 거점

현재 지구촌 각 나라 주요 도시에 한국문화원이 개원되어 한류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주홍콩한국문화원(원장 박종택)도 예외가 아니다. 주홍콩한국문화원은 2019년 1월 개원했다. 세계적으로는 32번째 개원한 재외 한국문화원이며 중국에서는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3번째 개원한 한국문화원으로 기록된다.

역사적으로 홍콩은 한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홍콩은 한국의 4대 수출시장이며, 2대 무역흑자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 한국·홍콩 정부 간 문화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지 14년 만에 홍콩 심장부에 한국문화원이 개원했다. 근대시기 서구문명이 유입된 주요 길목이었던 홍콩은 동서 문화의 융합지로서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주홍콩한국문화원은 홍콩섬 심장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센트럴 피엠큐(PMQ, Police Married Quarters : 옛 경찰기혼자숙소)에 입주해 있다. 기혼자 경찰 사택으로 사용된 피엠큐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재탄생된 곳으로 근래 홍콩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피엠큐엔 현재 약 100여개의 디자인 및 크리에이티브 기업이 입주해 있다. 작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곳을 방문하여 한국 언론에 집중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피엠큐 건물 2개 층을 사용하고 있는 주홍콩한국문화원의 짜임새 있는 공간배치가 이채롭다. 6층에 위치한 천장이 확 트인 다목적홀은 공연과 전시를 병행할 수 있는 공간구조다. 그밖에 한국전통문화체험관, 한식조리실, 멀티미디어실, 세미나실, 도서실 등 넓지는 않지만 효율적 공간구성이 인상적이다. 7층 발코니로 나가면 피엠큐 건너편에 입점한 수십 개의 공방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묘일무로 동양 정신문화의 기원 일깨워

주홍콩한국문화원은 전 세계에 포진한 재외 한국문화원 중 가장 최근에 개원한 소위 막내 문화원이다. 막내답지 않은 노하우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이목을 집중시킨다. 지난 6월 2주간 행사를 치르고 막을 내린 제1회 ‘한국전통문화주간’이 이를 반증한다. 한국전통문화주간 행사는 “무더운 홍콩의 여름나기, 한국전통문화와 함께”라는 주제로 6월 18일~29일까지 2주간 홍콩 센트럴 피엠큐 6,7층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 지난 6월 28일 홍콩문화원에서 열린 문묘일무 공연. 임학선, 김기화, 최성아, 성기숙이 출연했다 (사진=연낙재)

주지하다시피, 홍콩은 중국의 한류 열풍이 시작된 곳이다. 지금도 K-POP, 한국드라마 등이 여전히 인기가 높다. 최근 홍콩은 한류 확산으로 양국의 인적교류가 활발해졌고 한국어 보급이 확대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유발되고 있다. 그러나 홍콩시민들이 한국의 순수 전통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한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 한국전통문화주간이 기획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행사는 홍콩시민들이 고품격의 순수 전통무용 공연을 통해 한국적 고유미를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연낙재가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 네 번째 시리즈로 이번 행사에 참여한 것은 큰 행운이다. 프로그램은 공연과 학술이 병행된 렉쳐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홍콩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걸맞는 내용으로 주목을 끌었다.

6월 27일, 문묘일무 워크숍에서 기획의도가 적중했음을 실감했다. 중국의 유가 예악사상이 깃들어 있는 문묘일무는 공자의 사당에서 제사지낼 때 추는 제례무용으로 동양문화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유가의 아이콘 공자는 전통시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유교문화권에서  뚜렷한 위상을 지닌다.

▲ 홍콩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문묘일무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진중하게 춤사위를 배우고 있다 (사진=연낙재)

유교의 발상지 중국에서 공자는 정치적 격변에 따라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음은 주지하는 바다. 예컨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공자는 타도의 대상이 됐다. 유가를 신봉한 국민당 장제스가 마오쩌둥에게 패하여 대만으로 밀려난 후 공자의 추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1960년대 문화혁명기 공자 탄압은 절정에 이르렀다. 사회주의체제의 신중국에서 공자는 봉건잔재의 상징으로 매도되었다. 따라서 공자의 예악사상이 깃들어 있는 문묘일무 역시 중국에서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단절되었다.

공자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이는 시진핑이다. 그는 공자의 재발견을 통해 중국패권주의를 표방했다. 세계 각국에 공자아카데미가 세워졌고 공자의 고향인 중국 취푸에서는 매년 국제공자문화제가 개최된다. 공자를 제사하는 문묘제례 및 문묘악무도 복원되었다. 근대 이후 한때 문묘일무가 단절되었던 중국과 달리 한국은 장구한 세월동안 이를 보존 계승해왔다. 우리의 자랑이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6월 27일, 문묘일무의 권위자 임학선 성균관대 석좌교수의 문묘일무 워크숍은 시종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시청각 자료를 통해 문묘일무의 역사와 의미, 춤사위를 설명한 이론강의에 이어 춤사위 체험시간이 이어졌다. 홍콩시민과 함께 홍콩연예예술대학교(HKAPA) 전통무용과 학생 및 강사 등 30여명이 참석하여 열기를 더했다. 그들은 전공자답게 춤사위에 대한 이해도와 흡입력이 놀라웠다. 학구적이고 열정적인 배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 문묘일무 워크샵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강사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연낙재)

6월 28일 공연은 문묘일무로 막을 열었다. 천자(天者)의 춤으로 8일무 즉, 64명의 구성 형식이 이상적이나 인원을 최소화하여 2일무(4인무)로 선보였다. 임학선 성균관대 석좌교수, 김기화 국립한체대 연구교수, 최성아 선화예고 강사,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이 출연한 문묘일무는 절도 있는 동작과 아정한 움직임으로 집중감을 높였다.

30여년 만에 공식 무대에 서니 감개무량했다. 일무가 제례무용이자 이른바 ‘학문의 춤’이기에 수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고유의 법도와 절도를 지켜 발디딤을 내딛었다. 유가의 예악사상이 함축된 문묘일무의 정신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한국 전통무용 공연, 한류의 ‘고급화’

윤덕경 서원대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왕비를 상징한 화려한 복색을 착용하고 ‘태평무’를 선보여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장엄한 춤사위와 현란한 발동작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유일한 남성무용가로 참여한 배상복 최현춤보존회 회장의 ‘신명’은 중후한 거문고 가락에 조응된 예술성 짙은 춤사위로 관심을 끌었다.

우아한 자태의 임학선 교수는 단아하고 정갈한 ‘산조춤’으로 관객의 심미안을 자극했다. 가야금 선율에 맞춘 춤사위는 한국적 고유미를 선사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마지막 출연자 김기화 국립한체대 연구교수는 ‘진쇠무’로 관객들의 흥과 신명을 돋구었다. 여기 저기서 추임새가 쏟아졌고 박수 갈채로 무대의 흥취는 절정에 달했다.

이번 공연은 출연자와 관객과의 교감이 뛰어난 무대였다. 공연과 전시가 가능한 다목적홀은 행사 성격에 걸맞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가변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워크숍 때 종(縱)으로 사용됐던 무대는 공연날엔 중앙으로 이동해 횡(橫)으로 설치되었다. 관람석은 무대를 타원으로 에워싸도록 배치하여 관객과의 친밀도를 높였다.

▲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 공연장면. 관람석을 무대를 타원으로 에워싸도록 배치해 관객과의 친밀도를 높였다 (사진=연낙재)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원측의 발상이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바로 코 앞에서 펼쳐지는 한국 전통무용의 진수를 만끽하는 행운을 얻었다. 춤사위뿐만 아니라 춤꾼들의 얼굴 표정, 호흡까지도 가감 없이 감상하는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하여 갈채를 받았다.

문묘일무 워크숍과 한국 전통무용 공연에 대한 홍콩시민들의 관심은 진지하고 뜨거웠다. 주홍콩한국문화원 주최 제1회 한국전통문화주간 공식 프로그램으로 초청된 연낙재의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은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고품격 전통무용 공연을 위한 주홍콩한국문화원 박종택 원장님과 직원들의 노고가 컸다. 행사의 가치 창출을 위해 소수의 인원으로 동분서주하는 문화원 측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문화의 최전선에서 고품격의 한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주홍콩한국문화원의 노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 공연을 마치고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연낙재)

최근 홍콩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져 출국 전부터 뉴스에 촉각을 세웠다. 이른바 ‘범죄인 인도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홍콩시민들이 연일 대규모 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홍콩 시내는 비교적 평온했다. 그러나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낯빛에 서려있는 불안감 혹은 긴장감은 감출 수 없었다. 마치 폭풍전야 같은 침잠된 분위기였다. 다행히 행사기간 동안엔 시위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치를 수 있었다.

홍콩은 한마디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적 경제관념이 지배하는 홍콩인들은 중국의 유교적 인생관을 지녔다. 도교적 풍수사상을 깊이 신봉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홍콩은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다층적인 도시다.

홍콩인들은 자국의 문화유산 및 전통에 대한 개념은 다소 미약한 것 같다. 역설적으로 공자사상이 깃들어 있는 문묘일무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그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국의 전통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지난 1월 홍콩 시내 침사추이에 들어선 중국 전통극의 하나인 월극전문극장 시취센터 개관도 홍콩인들의 전통에 대한 갈망의 징표가 아닐까 싶다. 시취센터에 오를 한국 전통공연무대를 상상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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