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계 성폭력,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무용계 성폭력,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7.15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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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성폭력 대다수...스승과 제자 사이, 가해자 부끄러움과 반성없어
성폭력 가해자 공공영역 여전히 관여, 공공기관 ‘성인지감수성’ 부족
피해자 대부분 고발에 주저, ‘다움’을 강요받고, 절대 권력에 병들어 간다
무용계 ‘성폭력 피해자’ 지지 연대의 장 마련

최근 ‘유명 앵커 몰카 범죄’ㆍ‘연예인 성폭력’ 등 잇따른 '성추문' 사건이 터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방송인들은 성폭력 사건을 일으키게 되면 대중은 더 이상 방송 등을 통해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여론으로 단죄한다. 물론 여론이 다 옳았던 것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진실이 드러나 종국에는 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이윤택 사건’에서 보듯이 순수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의 ‘단죄’는 몇 몇 대중적인 인물(대다수 방송을 겸한)을 제외하고는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 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은 자숙은 커녕 여전히 그들만의 카르텔과 온정주의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또 다른 피해자까지 양산할 소지가 다분함에도 그저 ‘모른척’ 묻고 가는 현실이다. 순수예술분야에서 특히 무용계가 그 폐해가 심각하다.

그나마 지난 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 이후 무용계의 성폭력 문제가 뒤늦게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그동안 무용계에 떠돌던 한국무용ㆍ현대무용 등 장르를 막론하고 성폭력 피해정황이 언론에 일부 드러났다. 피해 당사자가 나서 본인의 피해를 직접 밝힌 사례가 등장했으나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추악한 민낯들은 무대 뒤 검은 그림자로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나마 몇몇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을 법적 해결에 나서면서 사건이 공론화되고 무용계의 자정을 촉발하는 모임까지 발족됐다.

무용계에서 말하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성폭력 가해자가 본인이 저지른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반성하거나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추문이 돌고 성추행ㆍ성폭력을 가한 인물들의 실명이 거론될 정도지만, 그들(성폭력 가해자)에게 부끄러움과 반성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은 태도는 법적으로 ‘성폭력 가해’사실이 유죄 판결이 났음에도 변함이 없다. 성폭력 사건이 있었음에도 가해자를 용인하는 무용계가 제2 제3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성폭력 가해자가 무용계 권력 중심에 있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은(성폭행 피해사실 공개)상황만 지나가면 놓았던 권력을 다시 돌려받는다. 과거 저지른 가해 사실에 의해 무용계 권력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특히 ‘도제식 수업방식’을 고수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빌미로 무소불위 권력을 장악한(성폭력 기해자가 포함된) 무용계 기성세대(선배ㆍ선생)는 제자나 후배의 정신과 몸을 지배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가스라이팅).

▲성추행이 폭로된 이윤택 연출가 지난해 2월 19일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었다

결국 ‘무용계 성폭력’은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는 개인의 양심문제도 있지만, 정·관계 및 무용계 카르텔들과 유착으로 무용계 생태 조정과 먹이사슬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한 무용가의 지적처럼 국공립 무용단의 예술 감독 등의 선임에 새로운 ‘장’(인재)의 발굴 없이 대다수 특정 ‘사단’의 인물들이 세습해 온 것이 지금껏 대다수 무용계의 관행으로 내려왔다. 또한 전문 무용인을 양성하는 대학 교수ㆍ강사 등은 무용을 배우는 제자들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공적영역에서도 이들에 대한 배제가 없이 여전히 성폭력을 저지른 자들을 특정 자리에 위촉을 하고 책임을 맡긴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언론에서 다뤄진 무용계 '권력형 성폭력' 피해 사례

최근 무용비평계의 한 원로 교수가 성폭력 건으로 소속협회의 자격을 잃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무용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전체 회의에서 원로무용비평가인 이OO의 회원자격 회수를 결정했다. 이 전 교수는 경기도 소재 한 사립대학의 명예교수(종신명예교수)로 자격 관련 사실은 협회가 운영하는 ‘춤웹진’ 사이트에 게재돼 있다.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 전 교수의 성추행 건이 접수된 주요 내용은 ▲초등교사 시절 무용을 배우는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건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학교 앞 모텔로 불러 논문 지도한 건 ▲차량 이동 중 동석한 조교를 성추행한 건으로 총 3건이다.

이 전 교수는 지난 10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 자격 회수 건과 관련한 성추행 건에 대해 답변을 회피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모르는 일이다. 실체가 있어 내게 고발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며 “변호사와 상의해서 할 일이기 때문에 더 할 이야기가 없다”라며 질문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취재 다음날 이 전 교수는 변호사를 통해 이번 사건은 "(성추행)피해 입은 당사자가 나서지 않았는데, 협회 내의 권력싸움 속에서 피해를 입은 것이다”라며 “(당시 협회가) 조사해 (이 명예교수의 성 추문)소문이 있어, 협회에서 자정차원의 목소리가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작년 미투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이 전 교수도 소문으로 협회가 거론 돼 단체가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여지가 있고, 연세도 있어 자진사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변호사는 "제명”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는 앞서 보도한 매체에서 “이 전 교수가 협회에서 제명됐다”라고 언급한 내용을 겨냥한 말이다.

춤비평가협회는 이 전 교수의 협회 자격 회수 건과 관련한 질문에 "이OO 전 회원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인 법적 다툼이 없으며, 본인의 회원 자격 회수에 관해 이전에 공표된 내용 이외에 밝혀드릴 부분이 없음을 알린다”라고 서면으로 밝혀왔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이OO 전 교수가 공동 창립한 협회로 1987년에 발족한 후 2010년부터 정식활동을 시작했다.

이 전 교수는 몇 달 전 문화재청의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선정 관련 소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여전히 공공영역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무용계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 피해자가 직접 나섰다

지난 달 1일 중견 현대 무용가 류OO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그 달  14일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기사화됐다. 이후 방송을 비롯해  언론보도가 이어지며 사건이 공론화됐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 보다 20살 이상 어린 제자인 점에서 ‘권력형 성폭력’의 병폐가 여전히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 무용가 류 씨는 지난 2015년 4∼5월 개인 연습실에서 제자를 수차례 성추행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류 씨에 대한 1차 재판은 오는 17일 열린다.

피해자는 현재 자신이 좋아하던 무용을 포기한 상태다. 피해자가 언론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는 부부 무용가로 활동하는 류씨의 부인인 서울 소재 모 직업학교의 무용계열 학부장인 이OO 교수의 소개로 류씨에게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가 류씨의 부인인 이 씨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이 씨는 "너의 착각이고, 지난 일이니 잊으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지금에서야 이 사실을 밝힌 이유는 그 동안 피해자는 무용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무용계에서 차지하는 류 씨 부부의 권력이 두려웠다. 결국 피해자는 무용을 포기하고 나서야 피해사실을 공개할 수 있었다. 류 씨와 부인 이 씨는 국내 유일 현대 무용수 부부로 이들이 매년 하는 듀엣 정기공연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피해자가 '성범죄자 하OO의 인간문화재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게시글을 올렸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지난 4월 9일 자신을 하 씨의 성추행 피해자라 밝힌 피해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범죄자 하용부의 인간문화재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지난 4월 19일 문화재청은 단원을 성추행한 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의 보유자 인정 해제를 예고했다.

피해자는 청원내용에 “2018년 2월 이윤택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온 며칠 뒤 밀양연극촌장이자 인간문화재인 하용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읽으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더 듣게 되었고 하용부에게 당한 피해자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2015년 노원구 대기실에서, 2016년 미국LA행 비행기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는 "2019년 4월 현재, 나에게 성추행을 한 하용부는 1년 이상 전승활동을 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인간문화재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보유자 인정 해제에 대한 진행 절차 진행이 이뤄지지 않아)여전히 저와 같은 피해자들은 고통 받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피해사실을 2018년 10월 문화재청에 알렸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보유자격을 가진 하 씨의 ‘자진사퇴’만을 기다렸다. 하 씨에 대한 ‘미투’ 폭로가 1년이 지났지만 문화재청의 안일한 태도에 지친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나서 지난 4월 9일 청와대에 청원 글을 올렸다.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에야 문화재청은 지난 4월 말 하용부의 보유자에 대해 인정 해제를 최종 예고했고, 이달 12일 무형문화재위원회가  하용부 보유자 인정 해제 안건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의 늑장행정으로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은 1년간 정신과상담 및 수면제, 우울증 약 등을 먹으며 고통 속에 살았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의 문화재청 취재 결과 하용부의 보유자 해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법을 근거로 들며 "오는 12일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처리할 예정”이라며 1년 넘게 끌어온 ‘늑장 행정’에 대한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정부기관에서 조차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없고, 가해자에 대한 배려만 있다는 피해자들의 볼멘소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가해자들의 여전한 권력 유지

지난해 4월 28일 페이스북 ‘예술계 미투 : 알지만 모르는 것’들 페이지에는 유사강간, 성추행 피해자임을 밝히는 한 학생의 미투 글이 올라왔다. 학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으로 당시 무용강사(객원교수)이자 (사)OOO협회 이사장이던 최OO과 최 씨의 제자이자 같은 학교 학생인 홍OO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그는 "더 이상의 억측을 막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하나하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라고 시작한 글에서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 학생이 굳이 남성임을 강조한 것은 최 씨가 이 학생에게 퍼부은 욕들은 대부분 여성을 지칭하는 욕이라 자신을 여성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이 당한 사건은 최OO 강사의 개인 연구소 등에서 일어났지만 세 사람 모두 학교를 공통분모를 두고 있기에 학교에서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OO 강사는 혐의가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며 “더구나 자신이 질투에 눈멀어 미투를 펼쳤다는 유언비어 마저 돌고 있다”라고 분노했다. 그들은 여전히 학교 공연에도 참여하고 강의도 하고 있는 상황에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정확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임을 밝혔다.

▲최OO씨의 상습 성희롱 피해 사실을 페이스북에 폭로했다(사진=페이스북 캡쳐)

그는 최OO씨의 상습 성희롱 피해 사실에 대해 털어놓았다. 지난 2017년 3월 24일 <제4회 대한민국 OOO전>에 출연한 최씨는 "승무로 감동을 주면 성상납을 하겠느냐”라는 말을 피해자에게 했다. 같은 해 4월 29일 최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OOO협회 주최 <제11회 OOO협회 국제무용경연대회>에서 무대진행을 하던 피해자에게 "창작하는 남자무용수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린다. 엉덩이를 대주겠다. 엉큼한 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말들은 최 씨의 연구소에서 춤을 배울 당시 수시로 듣던 말이라 한다. 이와 함께 같은 해 여름 최 씨로부터 밤늦은 시간에 종로의 ‘동성애자 술집’으로 호출된 피해자는 최 씨의 지시에 의해 이름 모를 남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또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홍 씨의 완력 앞에 유사강간을 당했다고 당시의 상황들을 자세히 묘사했다.

피해자는 사건들 이후 극심한 수치감과 스트레스, 우울증으로 인해 지속해서 약을 복용해야 했으며, 날이 갈수록 괴로움은 더 커져 갔고, 잊으려고 할수록 그날의 수치감은 더욱 또렷이 떠오르곤 했다고 그간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는 “성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 힘의 문제이며, 상대의 의사를 무시한 모든 성적인 행위는 범죄”라고 일갈했다.

2018년 당시 학교 측은 피해 학생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 한 뒤 가해자인 최OO 씨를 강의에서 배제했다.

▲OOO협회 홈페이지에 2018년 10월 무용대회 프로필 소개(사진=OOO협회 홈페이지 캡쳐)

최OO는 지난 5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인 연구소와 연습실에서 개인적으로 배우러 왔다가 내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일방적으로 누구를 옹호와 편애를 해 질투심에서 유발 된 거다. 학교에서 발생한 일도 아니다”라면서 "제자들끼리 싸움에서 내가 선생의 입장으로써 누구하나를 편애했다는 질투심에서 유발된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 사람들(피해자, 유사성행위 가해자 홍OO)사이에서 일어난 일이고, 나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 내가 여기에 대해 얘기해 줄 부분이 없으며 2년 전 일이다”라고 과거의 흘러간 일로 치부했다.

또한 "2017년도에 있었던 일이, 2018년도 미투의 힘에 편승해 나한테까지 와전 된 거다”라며 "내가 잘못했다는 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정서적 문제에서 보듬어 주지 못하고 비하적인 발언을 한 것뿐이다. 그 문제로 나는 모든 걸 다 내려놨다”라고 말했다. 현재 OOO협회 이사장으로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OO고문으로 있다”라고 답하며 당당한 태도를 고수했다.

기자가 이사장직과 관련해 최씨에게 질문한 이유는 지난 2월에 이사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까지 OOO협회 홈페이지 협회소개란에는 최씨의 사진과 함께 인사말이 버젓이 올라가 있다. 또한 지난 해 10월 서울 시내 한 공연장에서 열린 ‘중견무용가전’에도 출연했으며 당시 그의 소개란에는 협회 이사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라고 적시해 놓았다. 이는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그의 말에 배치되는 말이다. 학교 부분에서는 ‘前’을 표기했지만 이사장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투 운동’에 한참 앞서, 무용계 ‘권력형 성폭력’ 문제는 존재했다

지난 1999년에는 동성 간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남자 제자 2명을 ‘성폭행’ 한 혐의로 기소된 국OO 무용가에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및 무죄 등을 적용, 3년여의 법정 다툼 끝에 2004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국씨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국 씨의 성폭력 입증할 중요 단서들로 1심에서 무고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실형선고 받았다. 선거 공판 당일(1999.10.07)국씨가 재직하던 대학에선 국씨의 교수 직위를 박탈했고,국립무용단은 국씨를 단장에서 해임했다. 그러나 한국 무용계는 국 씨에 대한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제자 3명에게 고소당한 국씨는 ‘허위내용’이라며 맞고소 했다. 그는 "사실무근이며 지난해 입시부정 의혹으로 파면된 모 교수의 사주를 받아 나를 모함하는 것"이라며 음해사실을 부각했다. 학습조교, 조교, 학생회장 등이 나서 사건과 무관함을 거듭 강조했다.

‘1999년 미투 운동’은 파벌싸움으로 치부돼 피해자에 고발의도 자체를 의심케 하는 프레임을 씌웠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음해까지 한 것이다. 당시 국씨는 검찰수사 및 법정 진술을 통해 혐의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 국씨가 파기 환송심에서 무죄를 받기위해 제자들에게 “합의금을 노리고 허위 고소했다”라는 진술을 강요한 것이 발각돼 위증 교사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국OO씨가 올해 6월 국립극장 공동 예술 감독으로 참여해 올리려 했던 공연 포스터(사진=국립극장)

실형 선고 후 국 씨는 대학 교수와 공공단체장이라는 직위를 잃었지만, 그 해  11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그를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했다. 2007년 성남국제무용제 예술 감독을 시작으로, 2009년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 제작의 신작 연출가로 무용계에 화려하게 귀환했다. 또한 올해 국립극장에서 6월에 올리려 했던 한 공연의 공동 예술 감독으로 참여했으나 그와 관련된 여러 일들이 발단이 돼 공연이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었다.

2012년에는 ‘올해의 최우수예술가 예술 공헌상’까지 수상했다. 현재까지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이자 2001년부터 사단법인을 운영하며 예술 감독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이력은 국공립 무용단의 중요 안무의 예술 감독과 주요 무용대회의 심사위원, 문화재전문위원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한국 무용계의 권력으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무용계 '미투 운동' 지지 선언, 공론의 장 마련

이처럼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수 없이 많은 피해 사례들이 드러났다. 일부 성폭력 가해자가 실명 거론이 이뤄지고, 법적처벌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긴 법정 싸움에, 작은 불씨로 이어져 온 ‘미투 운동’은 힘을 잃었다. 현재 드러난 것만 이 정도이고 무용계에서는 실제로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 들어 무용계에서는 무용계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드디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고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앞서 사례로 든 ‘류 씨의 제자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를 계기로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SNS상에서 지난 달 14일부터 연대서명에 들어갔다. 무용계에서 성폭력건으로 연대가 이뤄진 건 이번이 최초다.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페이스북에 "침묵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말을 걸 곳과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주겠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연대는 무용인 12명의 실명 연대성명으로 시작했고, 지난 30일 기준 803인의 문화예술인과 84개 문화예술계단체가 서명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오롯이 집계한 연대 성명서는 오는 17일 열리는 류 씨의 1차 공판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며,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은 공개 방청을 신청한 30명과 재판을 방청을 한다. 향후 탄원서 제출, 피해자 측과의 협의 등을 전문가 조언을 바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오롯의 김윤진 무용가는 "문화예술계 안에서도 무용계 ‘미투 운동’이 늦게 시작한건 사실이다”라며 "(늦어진 이유는)폐쇄적 구조와 시장이 크지 않은 점이 있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편”이라며 요인을 꼽았다. 아울러 "대부분 (무용계 성폭력이)스승과 제자 사이 위계관계나 갑을 관계에서 계속 벌어진다. 또 평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 페이스북(사진=페이스북 캡쳐)

장순향 (사)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은 "무용은 사제, 선후배 지간에 엄격한 '도제식 교육'으로 인해 겸손과 인내가 미덕인 것으로 알고 참고 견뎌내는 친구들이 많다. 더러는 사회성도 부족하여 피해를 입어도 스스로 고립되어 괴로워한다"라며 "현 정부 들어서는 다소 나아졌지만 잠시 순간만 지나면  지원기금을 독점하는 구조, 예술단체장 등 진입 창구 역할 등등 온갖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도 문제이다. 인과 관계에 의해 묵인과 방조에 더하여 협조하는 지인들이 문제의식을 갖지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반세기가 넘도록 내부의 자정 노력을 게을리 한 것에 반성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장 이사장은 “모든 체면과 권력을 내려놓고 자신(성폭력 가해자)에게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피해자는 듣고 싶다”라며 “반성하고 죄송하다고 하고, 위로해 달라고 하고. 그거 하나 바라는 거다. 내가 잘못했다 한마디면 되는 거다”라고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무용인들의 권익단체인 한국무용협회는 무용계 미투 운동 한창일 지난해 3월 당시 "무용인들이 피해를 봤을 때, 인권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미투유투(내 인권, 네 인권 모두 소중하다) 교육과 운동을 실천 하겠다”라는 다짐을 내놓았다.

협회는 "(협회는) 무용인들에게 항상 문이 열려있다. 미투와 관련하여 협회로 민원이 접수된다면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무용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그를 위해 안에서부터 즉, 협회 임원, 회원, 그리고 지회·지부까지.. 성폭력 예방 교육 및 운동을 확대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폐쇄적인 구조, 일부 기득권이 온갖 심사를 도맡는 등 제도권 진입길목 지켜

무용계 미투문제 발생원인 및 해결책에 대해 한국무용학계 전문가는 "인간문화재 및 대학교수 등이 기득층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억압적 구조가 근본 원인이다”라며  "도제식 교육과 독특한 사제관계로 인해 폐쇄적인 구조도 문제다. 일부 기득권층이 온갖 심사를 도맡는 등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 눈 밖에 나면 전공을 영원히 포기해야하기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공론화되기가 쉽지 않다”라며 “오랜 적폐와 부조리가 청산되고 합리적이고 건강한 풍토가 조성될 때 미투 문제의 해결책도 마련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국미투생존가연대 남정숙 대표는 “미투가 정치, 체육, 연극 등 여러 분야에서 나왔다. 이중 연극계는 연극인이 똘똘 뭉쳐 선언적 사례가 생기면 용납하지 않았다. 무용계도 미투 건이 있었지만 용납 된 건이 많았다”라며 “예술계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많은데 사람에 의해 발탁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들은 한번 용인하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안하는 경우는 있어도 한번하고 넘어가는 경우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가해자 또래의 스승과 선배들이 내일 아니라고 모른척 한다면 무용계 악습은 지속되기에 처음부터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또한 “미투 사건이후에 사회적 각성은 일어났는데 법적 제도화는 못했다. 아직 부족하다. 권력형 성폭력이 일어나면 사용자 측이 산재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피해사실을 개인적 측면으로 보는데,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다”라며 “제도와 법이 보완이 돼 개인이 싸우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며, 환경과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연대해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해자가 벌을 받는 규정이 명확하면 가해자가 당당할 수 없다. 가해자의 태도 자체가 규정이 너무 약하다는 반증이다. 법이 너무 약하다는 반증이다. 한 사건 한 사건을 다 이기도록 연대하고 지원하고 도움을 줘야한다” 라고 덧붙였다.

‘무용계 성폭력’은 구조적 문제에서 출발한다. 성폭력 가해행위를 명백히 밝혀 법적 유죄 판결이 났음에도, 고요한 상황이 오면 잃었던 권력을 되찾는다. ‘무용계 성폭력’에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세습을 반복하는 것이다.

캠페인과 교육, 유명 무용가의 처벌에서 끝나면 안된다. 피해재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는 가해로 피해자의 ‘꿈을 짓 밟는’ 행위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이후 미투 당사자와 성폭력 연루자들의 권력배제까지 이어져, 그들의 계속적 활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