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의 사기극
현대 예술의 사기극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09.10.30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예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술계의 사건을 찾는 것 뿐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팔아서 먹고 산다.  화가는 그림이 팔려야 하고, 배우나 가수들은 공연장 입장권이 잘 팔려야 하고, 작가는 책이 팔려야 한다. 그런데 어느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를 모르고, 언제 어느 무대에서 누가 무슨 공연을 하는지  모르고,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를 모르면 그 예술가들은 굶어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대중매체를 타야 한다.

이것은 근원적으로 예술이 매스컴에 의하여 죽고 사는 예속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술가가 매스컴에 의해서 하루 아침에 대중 스타가 되는 일은 흔한 일이며, 그러다 매스컴이 외면함으로써 대번에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런데 일부 신문사·잡지사 기자나 방송사의 PD가 예술가와 개인적 친분을 맺지 않더라도 대중매체는 본질적으로 예술을 배반하는 본성을  지닌다. 매스컴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고마운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정보를 파는 것이 매스컴의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도 기능을 본분으로 하는 이상 그들은 항상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아야 한다.  보도할 가치가 있는 것은 반드시 새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터져서 다 죽게 되더라도 매스컴은 같은 기사를 두 번 내보내지는 않는다.

이것은 매스컴이 예술계에 대한 보도를 하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좋은 예술의 선택과는 별개의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은 감동을 주는 것과는 달리 우리가  그 소식을 듣고 놀라 자빠질 것을 택하는 것이 매스컴의 본성이다.  즉, 그들은 예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술계의 사건을 찾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매스컴의 본성을 잘 아는 예술가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로 포장한 사건을 팔아먹는다. 그럼으로써 예술을 배반하는 예술가가 나오게 되고 매스컴은 이런 배반자들을 찾아다니고 반기며 이들도   예술을 배반하는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영국의 데미언 허스트는 4미터의 상어를 포름알데히드에 넣고 미술품으로 팔아버린 것으로 유명하다.  제작비는 1200만 원쯤인데, 돈 많은 찰스 사치가 125억 원에 사들였다고 한다. 

찰스 사치는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도  3억 원에 사들였다. 그 침대는  다만 남녀가 지난밤에 광란의 섹스를 벌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온갖 지저분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상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또  먹다 남은 사과 찌꺼기가 경매장에서 5백만 원에 팔린 일도 있고  자신이 흘린 피를 오래도록 모아서 그것으로 빚어 만든 얼굴조각을 판 사람도 있다.

유리관 속에 처넣은 상어에 대하여 평론가들은  그것이 우리들에게 죽음에 대하여 새로운 일깨움을 주는 걸작이라 평하고 자기가 흘린 피로 만든 조각을 가리켜 작자의 진정한 자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을 붙였더라도 그 평론은 사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자아의 발견이나 죽음에 대한 각성은 그 따위로 전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종전의 미술의 개념을 완전히 깨부수어서 놀라움을 주는 사건일 뿐이며, 매스컴은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 사건이기 때문에 보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그런 예술가의 의도적인 사기 사건 때문에 사건이 되는 것만이 아니다.  여기에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사기꾼이 또 하나 가세함으로써 이 사기극은 절정에 도달한다.  마치 증권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꾼들이  주가를 올리고 아파트 호가를 올리듯이 큰 부자가 죽은 상어 한 마리를  125억 원에 샀다는 것으로써 세상이 놀라는 사건이 되고 그 후로 이것은  125억 원 이하로는 안 파는 물건이 되고 다음 경매장에서는 125억 이상으로 팔릴 수도 있다.

그리고 안 팔려도 그만이다.  팔리면 돈을 더 벌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세상을 놀라게 해 준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남아도는 돈을 갖고 노는 재미도  만끽했고 그 정도로 부자라는 명예도 뒤집어쓴 것이다. 터무니없이 수십 억에 사들여서 다시 팔 수 없게 된 아파트지만 안 팔려도 그만이라고 이를 과시하고 사는 부자놀음과 꼭 같다. 현대의 예술가들이  이런 매스컴과 과다한 잉여자본 및 평론가들과 함께 집단적 사기극을 벌이는 이상 진정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남는 아름다운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들은 살아남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