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평생 예술을 말했지만 여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
90평생 예술을 말했지만 여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
  • 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7.16 1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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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지난 10일 존 버거의 예술론 『풍경들(Landscapes)』 발간
저자 “존 버거의 글들은 다시 상상하기, 다른 방식으로 보기로의 초대장”
▲ 존 버거 지음|열화당| 2019년 7월|336쪽|정가 20,000원
▲ 톰 오버턴 지음|열화당| 2019년 7월|336쪽|정가 20,000원

평생 예술을 이야기하면서도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보려 했던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 그의 수필, 단편 소설, 시, 서문, 비평문, 번역문 등 다채로운 형식의 글 35편을 엮은 신간이 나왔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존 버거의 예술가론을 모은 『초상들(Portraits)』에 이어, 지난 10일 그의 예술론을 모은 『풍경들(Landscapes)』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풍경들(Landscapes)』은 존 버거의 보는 방식과 글쓰기의 지평이 얼마나 자유롭고 넓은지 보여준다. 아울러 처음 예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195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얼마나 일관된 생각을 견지했는지, 동시에 그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은 또 어떻게 변해 왔는지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다. 

존 버거를 이끈 ‘파쇠르(passeur,안내인)’: 교사 ‘켄’ & ‘드로잉’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버거의 사상을 형성하고 이끌어 준 이들에 대한 글이다. 존 버거는 유럽의 파시즘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한 난민들이 만든 전후 하위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지적으로 성장했는데, 영국의 경계를 뛰어넘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막스 라파엘, 발터 베냐민, 에른스트 피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롤랑 바르트, 프레데릭 안탈, 제임스 조이스, 로자 룩셈부르크 등과 같은 여러 작가와 사상가들의 글을 읽고 사유했다. 이들은 대게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사상적 공통점이 있고, 버거는 이 점에 특별한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가 이런 저명한 사상가들의 영향만 받은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글 「크라쿠프」는 자전적 소설 『여기, 우리 만나는 곳』(2005)에 실려 있는 단편으로, 주인공 존이 어린 시절 다닌 기숙학교 교사였던 켄(Ken)이 살아 돌아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실제로 존 버거에게 최초의 스승이자 ‘파쇠르(passeur, 프랑스어로 ‘안내인’이라는 뜻)’였고, 이 글이 1부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유다.

 「이야기꾼」에서는 그가 가까이 지냈던 이웃 농부가 보여준 이야기하기 방식을 분석하는데, 스스로 ‘나의 대학’이라 불렀던 시골 마을의 삶이 버거의 인식을 어떻게 형성해 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비록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동등한 지성과 영향력으로 존 버거의 세계에 존재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버거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안내자는 바로 드로잉이었다. 「종이 꺼내 그리기」 「모든 그림과 조각의 기초는 드로잉이다」에서 그는 드로잉이 지닌 의미를 언어의 시제에 빗대어, 또는 직접 드로잉하는 순간을 묘사하며 분석한다. 그는 화가이길 포기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에도 드로잉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그의 글쓰기가 늘 그림을 동반하는 듯이 느껴지는 이유다.

이 장의 마지막 글인 「이상적인 비평가, 싸우는 비평가」는 이러한 영향들을 체화하여 앞으로 비평가로서 어떤 글쓰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선언이다. 그가 우리 시대의 미학적 기준으로 삼았던 ‘이 작품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회적 권리를 인식하고 요구하도록 돕거나 권장하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이 글에 등장한다.

존 버거의 용기? 울타리와 장막을 걷어내는 용기

버거의 시 「지형」에서 제목을 따온 2부는, 각 글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의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글들은 정확하게 분류하기 어려운, 갈수록 모호한 풍경에 대한 ‘예술적 글쓰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형식적 모호함은 존 버거가 지닌 자유로움과 폭넓음에서 기인할 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명료하다. 

또한 존 버거의 글은 강경하고 비판적이지만 그 안에는 희망의 빛이 늘 공존한다. 이십세기 초 ‘예술을 앓는’ 도시가 되어 버린 파리에서 발견한 ‘판지 태피스트리 화가 연합’의 운동, 일견 진부하게 보이는 소비에트 미학이 진정한 전통의 기초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긍정, 서구 예술가들의 병든 판타지로 채워진 195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만난 인도, 스리랑카, 멕시코, 아랍 예술가들의 작품 등, 그는 기존의 울타리를 허물고, 역사와 예술이 조응하는 진실된 작품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알려 주었다.

이어 사유재산의 수단이 되어 버린 예술, 사진의 등장과 초상화의 죽음, 미술관의 역사적 기능을 비판하고 분석한다. 또 자신의 책 『영원한 빨강』(1960)의 새로운 서문(1968/1979)과 노동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의 서문(1979)에서는 ‘부르주아 문화와 사회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려놓는 일은 없으리라’ 다시 한번 다짐한다. 과거와 단절시킴으로써 모든 상상력을 미래에만 집중하게 하는 자본주의 존재방식에 대한 변함없는 거부인데, 그는 이 입장을 죽을 때까지 고수했다. 

그러나 1989년 동유럽의 공산정권을 향한 민중 저항운동과 1991년 소련의 붕괴를 바라보며 교조적으로 변질된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외면하지 않는다. 한때 민중을 동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공산주의가 오늘날 사망 판정을 받은 것은, 일반화된 법칙들이 실제 사람들의 삶을 가리면서 결국 악이 군림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이처럼 균형 있는 눈, 장막에 가려진 것을 걷어내고 볼 줄 아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존 버거는 시대에 따라 ‘예술작품의 특정한 의미가 바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작품도 그 시대를 넘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와 다름의 렌즈를 강조한 존 버거. 『풍경들(Landscapes)』의 저자 톰 오버턴은 “존 버거의 글들은  다시 상상하기, 다른 방식으로 보기로의 초대장”이라고 밝혔다. 336쪽, 2만 원,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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