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석의 동시대 음악이야기]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장용석의 동시대 음악이야기]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장용석 /문화기획자
  • 승인 2019.07.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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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용석 /문화기획자

당신은 빅토르 초이(Victor Tsoi)를 아는가? 빅토르 로베르토비치 초이 (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1962.6.12 ~ 1990.8.15.)는 절망하는 시대에 태어나 세상을 일깨웠던 러시아(소련)의 록커이자 싱어송라이터, 영화배우였고 록밴드 키노 (КИНО) 리더였던 한인 3세 까레이스키였다. 28세 꽃같은 나이에 미스테리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했던 그의 기일(忌日)이 8월 15일이라는게 그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을 더욱 배가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1962년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초이는 19세 때인 1981년 록 그룹 ’키노‘(Kino)를 결성,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바로 그 무렵의 빅토르 초이를 만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난해 제작해 올해 소리 소문없이 개봉됐던 영화 ‘레토(Leto : 여름/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2018, 러시아 프랑스 제작)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담은 영화 ‘레토’(Leto·여름)‘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분에 초청됐다.

영화 레토는 빅토르 초이의 얘기를 하고 있지만 빅토르 초이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영화는 1980년대 냉전시대의 러시아(소련)를 배경으로 당시의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러시아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면서 때론 비트있게 때론 몽환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다. 어찌보면 한편의 음악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에서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빅토르 초이 역을 맡아 유명세를 얻기 전의 빅토르 초이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를 더욱 좋아하게 된 것은 빅토르 초이의 이야기와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음악과 필름스코어 때문이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은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마이크 역을 맡은 로만 빌릭이다.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 ‘즈베리’의 리더이며 빅토르 초이의 ‘키노’와 비견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신성(新星)이기도 하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아날로그적인 녹음장비와 악기를 사용하여 날것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러시아 록 음악의 정신을 그대로 잇는 저항이자 빅토르 초이의 음악에 담겨있는 메시지일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그토록 싫어했던 자본주의 만연한 록 음악이 전편을 통해 곳곳에서 흐른다.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1996, 대니보일)에서 메인 테마곡처럼 차용됐던 루 리드(Lou Reed)의 ‘Perfect day’를 비롯하여 티렉스의 ‘Children of revolution’, 토킹 헤즈의 ‘Psycho killer’, 이기 팝의 ‘Passenger’ 등 우리가 열광했던 밴드의 헤드 라인너들이 마치 필름처럼 오버랩되고 디졸브된다. 오랜만에 제대로 만든 사실적 음악영화라고 할까. 이 영화에 사용된 그 어떤 기술과 메카니즘보다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건 역시 음악이다.

사실 영화는 그 자체가 허구인데 우리 눈에 사실적으로 비쳐지는 이유는 사실적 메카니즘에 근거한 표현수단이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는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영화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적 현실을 실제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아나모픽 렌즈가 발명되고 시네마스코프가 우리에게 선을 보이고 난후 영화는 현실과 픽션의 간극을 더욱 좁혀 우리에게 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의 안방에서는 Color-TV시대가 열리고 있었고 머지 않아 TV와 영화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었다. 디지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디지털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실제상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가능케하였고 다양한 표현 형태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대체하더라도 바꿀수 없는 장르가 있으니 그건 바로 음악(영화음악)이다. 음악은 제작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과 선택, 그리고 인간과 인간에 대한 관계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날로그적이라고 할까. 흔히 영화음악이라고 일컫는‘오리지널 필름스코어’(original film score)는 영화의 모든 부분에 걸쳐 힘과 생명을 불어넣는다. 영상은 대사와 효과음, 음향효과 그리고 음악으로 이뤄진다. 영상은 결코 홀로 독립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음악은 독립된 존재로서도 빛을 발한다. 음악의 진정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영화 ‘레토’의 오리지널 필름스코어는 그런 음악의 힘을 여실하게 느낄수 있게 해준다. 빅토르 초이가 평소 꿈꾸고 그렸던 세상을, 세상에 그토록 외쳤던 얘기를 영화의 필름스코어가 생생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영화 레토는 그래서 더욱 러시아 당국의 방해와 핍박을 받았다.‘음악이 세상을 바꿨을지는 몰라도 빅토르 초이는 우리를 바꿨다’빅토르 초이의 묘비명이다. 빅토르는 그 시대 러시아 민중을 대변하는 메신저이자 아이콘이었다. 그의 음악과 정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그를 사랑하고 기리는 러시아 민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예술이란 기술의 단순한 습득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고 상상하고 해석하는 방식이며, 생각하는 방법을 확장하는 일종의 도구로서 기능한다‘  라는 명제를, 아니 도구 그 이상이었음을 빅토르 초이는 그 짧은 삶 전체를 일관해 통렬하게 실천하였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것만으로도 빅토르 초이와 그의 음악은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봐도 두고두고 되새김질을 해야할 마스터피스이다. 비록 음악이 세상을 바꿀순 없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