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허용순의 ‘Imperfectly Perfect'-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본 창작공연
[이근수의 무용평론] 허용순의 ‘Imperfectly Perfect'-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본 창작공연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7.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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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는 대한민국발레축제(Ballet Festival Korea)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 초청공연(마타하리)이 있고 CJ토월극장에서는 해외무용스타 스페셜 갈라와 3편의 단독기획공연, 2편의 유니버설발레단과의 공동기획공연을 보여준다. 남성안무가 6인의 공모공연이 자유소극장 무대에서 펼쳐지고 3회에 걸친 야외무대공연까지 준비되어있다. 그런데도 어딘가 허전한 것은 풍부한 레퍼토리 중에 신작공연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 허전함을 풀어준 작품이 ‘Imperfectly Perfect'(6.29~30, CJ토월극장)다. 재독안무가 허용순 안무로 세계초연무대를 꾸미면서 축제의 대단원을 장식해준 작품이었다.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왕립발레학교로 떠난 허용순은 프랑크푸르트발레단과 취리히발레단, 바젤발레단을 거쳐 뒤셀도르프발레단 수석무용수를 마지막으로 2001년 안무가로 변신했다. 3년에 한 번 꼴로 한국을 찾는 허용순이 즐겨 선택하는 안무 주제는 사람들 간의 관계다. 2012년 내한공연 작품인 ‘The Moment'에서 남녀 간의 엇갈린 사랑을 보여준 그녀는 2016년 발레축제에 초청된 두 작품에서 개인적 삶의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의 대조에 초점을 맞추거나(Contrast), 인간관계의 외형과 내면의 차이를 조명한다(The Edge of Circle). ‘Imperfectly Perfect'의 주제 역시 사람들 간의 관계, 즉 인연의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가 생각하는 인연은 나와 남과의 관계, 내가 배제된 채 이루어지는 남들 간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나의 내면과의 관계를 포괄한다. 

무대천정엔 일무를 추듯 대형을 갖춰 늘어선 1자형 형광등이 희미한 빛을 내리 쏟고 있다. 모스 부호의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이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알바 노토(Alva Noto)의 음악이다. 어둠 속에서 연속되는 기계적음향이 세상의 적막함을 암시한다. 희미한 조명아래 무대 뒤편에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문이 설치되어 있고 다른 한 쪽에도 역시 오렌지색 벽이 서있다. 두 개의 입구로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문을 통해 남성이 등장하고 또 다른 문을 통해 여인과 남자가 등장한다. 입구를 달리해서 등장한 남녀의 춤은 솔로와 듀엣을 거쳐 트리오로 연장되고 올라푸르 아날드(Olafur Arnalds)의 발라드풍 서정적인 음악이 이 춤을 받쳐준다. 이들의 만남은 사랑으로 진전되고 인연의 첫 번째 형식을 보여준다. 문의 색깔이 바뀐다. 내가 배제된 남들 간의 만남은 붉은색 문을 통해 등장하는 남녀의 군무로 표현된다. 봄비 내리는 정경,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듯한 비발디의 음악이 서정적이다. 출입문의 색깔은 흰색으로 다시 주황색으로 바뀌고 급기야는 무대에서 문이 사라진다. 남들과 단절된 나와 내면의 대화가 가장 힘들다. 박자가 점점 빨라지다가 번개가 천둥을 동반하듯 음악도 춤도 급하게 변화한다. 에지오 보쏘(Ezio Bosso)의 ‘Weather series’ 음악 중 '천둥과 번개(Thunders and Lightnings)'의 격렬한 템포가 빠르게 변하는 인간관계를 뒷받침한다. 원진영의 솔로만이 섬광처럼 무대에 남았다.

작품소개를 위해 등장했다가 무대 뒤로 사라져간 최지원이 머뭇거리던 ‘imperfectly~’의 여운이 ‘perfect’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에지오 보쏘의 음악처럼 자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지만 인생 또한 그것을 닮았다. 인연의 다양한 형식을 표현하기 위해 적합한 음악을 선택하고 흐르는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인연 줄을 풀어가는 허용순의 연출이 섬세하다. 모든 만남은 불완전하게(imperfectly) 시작되지만 '완전함(perfect)'으로 수렴되어갈 수 있다. 수많은 만남을 거쳐 오면서 자신과의 만남에 도달한 그 자체로서 사람도 완전한 존재다. 남들과의 관계에서보다 자신과의 만남에서 완성을 찾아야한다는 것이 허용순의 메시지가 아닐까. 원진영과 함께 트리오를 구성한 마리오 엔리코와 사울 베가 멘도자 등 뒤셀도르프 무용수들과 강미선∙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위시한 유니버설발레단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음향∙조명∙미술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면서 허용순의 인생작으로 기억하고 싶은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