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익숙한 듯 낯선, 우리 음악의 '오리지널리티' 돋보인 여우락
[공연리뷰] 익숙한 듯 낯선, 우리 음악의 '오리지널리티' 돋보인 여우락
  • 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7.23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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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의 약속 장소로 나갔다. ‘어?’ 긴가민가하다. 스타일 때문인가. 익숙한 사람이 오늘 어쩐지 달라 보인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 같다.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이 묘하다. 

익숙한 듯 낯선 것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우리 음악이기에 잘 알 것 같지만 어떤 색을 더하느냐에 따라 스펙트럼은 넓어지고 느낌은 달라진다. 

국립극장 대표축제인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여우樂(락) 페스티벌’이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과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렸다. 10주년을 맞은 올해 여우락에서는 ‘우리 음악의 가깝고도 낯선 느낌’을 전하는 오리지널리티가 돋보이는 색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총 4팀의 5회 공연을 선보인 올해 여우락은 양방언, 나윤선, 원일 등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온 역대 예술감독들이 선보이는 무대로 공연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지난 5월 15일 티켓오픈 직후에는 패키지의 80%의 예매율을 기록했으며, 일부 공연은 매진되는 등 이전 여우락의 묘미를 맛본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저력을 나타낸 바 있다. 

나윤선의 여우락 <‘이아람X죠슬렝 미에니엘’ After Wood & Steel>

교감하는 소리는 다르다. 더 짙은 전달력과 호소력을 가진다.

▲ 지난 10일과 11일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After Wood & Steel’ 공연이 열렸다. 한국 대금연주자 이아람(우)과 프랑스 플루트 연주자 죠슬렝 미에니엘(좌) (사진=국립극장)
▲ 지난 10일과 11일 한남동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After Wood & Steel’ 공연이 열렸다. 한국 대금연주자 이아람(우)과 프랑스 플루트 연주자 죠슬렝 미에니엘(좌) (사진=국립극장)

동서양의 관악기 연주자가 만나 음악을 통한 정서적 교감으로 'heartstrings', ‘심금’을 울리는 공연을 선보였다. 

이미 2015년 여우락에서 ‘Wood & Steel’ 공연으로 호흡을 맞춘 한국의 대금 연주자 이아람과 프랑스의 플루트 연주자 죠슬렝 미에니엘이 지난 공연의 확장판인 ‘after Wood & Steel’로 한국, 아프리카,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과 재즈, 즉흥연주를 바탕으로 창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이번 무대는 지난 4년간 꾸준히 교감하며 레퍼토리를 만들어 온 것으로 전해진 두 연주자의 음악적 고민과 정서적 교감이 함축된 무대였다.

특히 현대카드 언더스테이를 공연장으로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무대 위 숨소리조차 음악이 되어 관객에게 전달되는 소공연장의 묘미를 잘 살린 공연이었다. 

팀웍도 좋았다. 베이스 연주자 이원술, 장구‧아쟁 연주자 황민왕, 민요‧정가를 두루 섭렵한 소리꾼 김보라가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완성했다.

황민왕은 이아람과 국악 크로스오버 음악그룹 '블랙스트링' 멤버로 지난 몇 년간 호흡을 맞춘 바 있으며, 이원술과 김보라 역시 그룹 ‘신노이’의 멤버로 음악적 교감이 탄탄하다. 여기에 죠슬렝 미에니엘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음악으로 동서양 악기의 경계는 물론, 청년부터 장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뒤섞인 관객들의 경계 등이 허물어지며 모두가 함께 교감하는 농도 짙은 경험을 선사했다.

원일의 여우락 <13인의 달아나 밴드> 

어디서 또 이런 조합을 만나볼 수 있을까. 원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 지난 12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열린 ‘13인의 달아나 밴드’ 공연 피날레에서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 지난 12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열린 ‘13인의 달아나 밴드’ 공연 피날레에서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국립극장)

일찍이 음악을 시작했고, 장르가 다르며 각자의 음악적 세계가 뚜렷한 13인의 음악가가 ‘13인의 달아나 밴드’라는 이름으로 모여 각자의 색은 뚜렷하되, 또 한데 어우러지는 독창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 가곡 이수자 강권순의 헤비메탈적 사운드를 듣는 것은 “파격, 또 파격! 경계를 허무는 ‘우리 식(式) 하드록 사운드’를 보여주겠다"는 공연의도를 백분 발휘한 순간이었다.

또한 13인의 아해 중 한 명이었던 이희문은 이희문이었다. 이날도 풍성한 퍼프소매의 화이트 슈트자켓에 스타킹, 하이힐을 신고 등장해 이목을 끈 이희문은 비단 의상 때문만은 아닌, 그만의 능청스러움과 무대 위 존재감 및 아우라로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의 환호성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의 첫 구절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붙여진 ‘13인의 달아나 밴드’는 크게 네 개의 그룹으로 구성됐다. 원일을 리더로 결성된 이 밴드의 최전방에 위치한 정가‧경기민요‧재즈의 [보컬 그룹], 하드록의 결정적 사운드를 만들어 줄 전자 기타‧베이스 기타‧드럼의 [록 사운드 그룹], 현대적 사운드를 입힐 [전자악기 그룹], 우리 음악으로 밴드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국악 그룹]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밴드다.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장르별 최고의 아티스트가 모여 그 합(合)만으로도 평단과 객석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끼와 창조적 영감으로 가득찬 13인의 멤버들이 앞다퉈 내놓은 기발하고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모티브로한 재창작곡이나, 공동 창작된 신곡을 공개하며 감각적으로 융합된 음악을 선사한 이 공연은 우리 음악‧재즈‧일렉트로닉 등 강렬한 장르의 음악들이 용광로처럼 섞여 완성된 우리 식(式) 하드록 사운드를 통해 기존의 음악 문법을 파격적으로 뛰어넘은, 한국 음악의 새로운 힘을 느껴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우리 음악의 폭넓은 스펙트럼’이라는 슬로건 아래 우리 음악의 확장을 주도한 원일의 노력이 빛을 발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