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성산리산성, 한성백제 시대 군사기지로 확인
당진 성산리산성, 한성백제 시대 군사기지로 확인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8.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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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유물 4세기 후반 5세기, 한성백제 최전방 전초기지

금강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당진 성산리산성(충남 당진시)이 당진지역의 한성백제 시대 산성으로 확인됐다.

당진 성산리산성은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와 석문면 통정리를 경계로 하는 해발고도 67m의 야산 정상부에 있다. 길이 239m의 소규모 테뫼식 산성으로, 지난 4월부터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산성의 북쪽 성벽과 안쪽 지역 일부를 대상으로 했다. 성벽은 야산의 자연경사면 위에 흙과 잡석으로 축조했다. 성벽의 규모는 너비 약 14m, 높이는 성벽 외측 하단부에서 성체 중심부 상단까지 5.3m 정도다.

▲당진 성산리산성 전경(사진=금강문화유산연구원)

5열 정도의 나무기둥(木柱)을 110㎝ 정도의 간격으로 고정시킨 후, 그 사이를 적갈색 점토로 보강한 것을 확인했다. 흙을 번갈아가며 쌓는 것을 성토(盛土)기법이라 하는데, 성산리산성은 목심(木心) 성토기법으로 쌓아올렸다.

한편, 성벽이 꺾이는 구간 일부는 석축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아 올리고 내부를 점토와 잡석층으로 다져 너비 2.8m, 잔존 높이 2m의 견고한 석심(石心)으로 만들고, 안팎은 성토기법으로 성벽을 완성한 점은 독특한 수법이다.

성산리산성은 토성이지만 성벽 중심은 석축 구축으로 견고하게 축성해, 백제 시대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법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성 내부는 총 6기의 주거지들이 성벽과 가까이에 밀집해 있다. 네모꼴(방형)이 대부분이나 1기는 한성백제 주거지의 특징적인 형태인 철(凸)자형 주거지이다. 주거지는 성벽에 매우 가깝게 구축해 취사와 난방도 가능했을 것으로 보아, 성산리산성에 주둔했던 한성백제 군사들의 거주용 막사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당진 성산리산성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출토유물(사진=금강문화유산연구원)

유물은 삼족기(三足器), 굽다리접시(고배, 高杯), 계란모양의 장란형(長卵形) 토기, 시루, 가락바퀴(방추차, 紡錘車) 등 취사와 생활용으로 사용한 토기류와 쇠도끼(철부, 鐵斧) 등 약 200여 점을 출토했다. 특히, 삼족기, 굽다리접시와 장란형토기 등은 한성백제 유적에서 출토하는 유물들과 일치한다.

성산리산성에서 이번에 출토된 유물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이다. 마한과의 관계보다 광개토대왕의 재위기(391-412)를 전후하여 전개된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해 축조한 해안 방어기지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 견해는 한성백제 세력이 마한의 여러 소국을 병합하는 과정의 실증자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