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원 논란의 쟁점은...제대로 된 검증 없이 지정 된 문화재
성락원 논란의 쟁점은...제대로 된 검증 없이 지정 된 문화재
  • 김지현 기자, 이가온 기자
  • 승인 2019.08.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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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록 어디에도 ‘성락원 (城樂園)’은 없다
황평우 소장 "성락원 문화재지정 취소해야...과거 지정된 문화재들 전면 재조사 필요"
"문화재를 허위로 조사한 문화재 위원들 책임 물어야"

성락원 문제가 여전히 뜨겁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준에 부합하는 역사적 사실과 문화재 가치 여부 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성락원을 문화재로 지정한 정황이 확인됐다. 동시에 역사적 가치가 적은 개인 소유의 성락원이 문화재가 되면서 복원사업과 연구용역 등 종합정비계획에 56억 원(국비 39억원, 지방비 16억원) 국민혈세가 투입된 점도 논란의 요지다.

앞서 성락원은 조선 말기 민가정원으로 왕족이 머물었고,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고유문화가 보존된 점을 근거로 '명승'에 지정됐다. 이후 성락원은 ‘조선의 3대 정원’으로 큰 의미를 얻었으며, 1960년대 이후까지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다 지난 4월 한시적으로 공개해 대중에 큰 관심을 끌었다.

▲성락원 명승지정 당시 모습(사진=문화재청)

최근 `한겨레'가 단독보도 한 내용에 따르면 성락원의 역사적 검증 문제가 또 다시 제기됐다. 성락원 문화재지정의 근거인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 내용이 대학원 졸업생이 잡지에 쓴 글로 파악돼, '국가문화재지정' 방식에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기사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1992년 3월 ‘성락원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정조사 보고서를 받고도 그해 12월 성락원을 사적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어 "상명대 ㄱ교수가 2006년 작성한 성락원에 대한 문화재청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성락원은 조선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조성된 것이나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돼 있다. 문화재청은 ㄱ교수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은 지 2년 만인 2008년 성락원을 명승으로 재 지정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ㄱ교수가 문화재청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그가 1992년 7월 쓴 박사학위 논문 ‘조선시대 별서정원에 관한 연구’의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이었으나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라는 내용이 반영돼 있다고 보도하며  "ㄱ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내용은 1983년 <환경과 조경>이라는 계간지에 실린 ‘선인들의 은일사상이 깔린 별서정원’이란 글이다. 박문호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할 당시 쓴 것"이라고 덧붙었다.

매체는 “계간지에 실린 박 전 교수의 글은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과 인터뷰에 근거로 쓴 글로, 역사적으로 확인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가문화재지정이 정확한 역사적 검증 절차 및 확인없이 이뤄진 정황을 확인한 것이다.

▲지난 4월 공개된 성락원 모습(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이 2007년 작성한 문화재청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및 사적 해제 예고 '성락원 명승 지정사유'에는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었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한 곳으로 전통 별서정원 중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민가정원으로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것임”이라고 적었으며 “주변의 수려한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하여 조성된 별서정원으로 정자ㆍ연못계류ㆍ석정ㆍ석상ㆍ괴석 등 다양한 전통 양식의 정원요소들이 주변 자연 숲과 잘 조화되어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임”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성락원을 사적으로 지정한 핵심 근거 중 하나인 ‘이조판서 심상응’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철종 연간에 이조판서 벼슬을 한 심상응(沈相應 혹은 沈想應)'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정원일기 고종 35년(1898) 2월 22일 기사에 ‘심상응’이란 인물이 경기관찰부 주사에 임명됐다는 내용만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성락원’이란 정원은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성락원이 조성되기 전 해당 터에 의친왕 이강이 별궁을 짓고 살았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1921년 지형도에 '이강공의 별저'라는 표기와 연못, 건물 등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917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임야조사부에서 발행한 임야소유대장에는 성락원 부지에 해당하는 경기도 고양시 숭인면 성북리 산 12번지의 임야 1만3500평이 같은 해 9월에 국유지에서 의친왕의 소유로 '양여'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1927년 <동아일보>(12월 23일 자)는 '이강공 별저 화재(李堈公別邸火災)'라는 기사를 통해 그해 12월 20일에 일어난 화재로 의친왕의 별저가 안채 14칸을 포함해 상당 부분 전소됐다고 보도했다. 이후 1932년에 해당 부지는 의친왕의 아들인 이건에게 증여됐다. 이건은 1945년 해방 때까지 해당 필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모모야마 겐이치(桃山虔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귀화해 필지의 소유권은 무효이다. 기사로 볼 때, 의친왕이 이곳에 별궁을 짓고 살았던 것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의친왕이 해당 부지에서 몇 년을 살았는지는 현존하는 사료가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성락원 보수 공사비 내역(사진=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 페이스북 공개 내용 캡쳐)

역사적 가치가 적은 개인 사유지에 막대한 정부예산이 투입된 점도 '성락원 논란'을 가중시켰다. 성락원은 1960년대에 현대식 주택ㆍ정원 내 시멘트 포장도로ㆍ콘크리트 석축ㆍ옹벽 등이 설치되면서 일부 훼손됐다. 이를 1920년대 의친왕이 살던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2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복원공사'를 추진했다. 성북구청이 수행 중인 성락원의 연혁 등 역사적 근거에 관한 용역연구에도 1억 2000만 원이 소요됐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성락원에 지원된 연도별 보수공사비는 총 29억 3000만 원으로, 총 56억여 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지형도만 존재하며 도면이나 사진 자료 등이 명확한 근거자료가 없는 사유재산에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예산 투입 결정이 옳은 것인지, 소상히 살필 전수조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성락원은 개인소유로 한국가구박물관이 관리해 왔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 지난 4월 23일 공개로 대중에 뜨거운 관심을 받아, 6월 11일까지 모든 관람이 마감되었다는 팝업창을 띄었다. 이에 일부 언론들은 ”200년 만에 일반 공개되는 조전 후기 별장“ㆍ” 비밀정원 공개“ 등에 타이틀을 달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 냈다 (사진=한국가구박물관 캡쳐)

성락원의 역사적 검증 누락과 오류 문제에 대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건물주 이야기에 근거해 문화재를 지정한 것이다. 문화재지정 당시 학자들과 문화재청의 재 확인이 필요했지만 확인하지 않아 생긴 오류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락원 전수조사는 이미 6~7번 정도 진행 돼, 오류가 밝혀졌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는 취소해야 된다”라며 “문화재를 허위로 조사한 문화재 위원과 성락원을 ‘조선의 3대 정원’으로 소개한 사람도 사태에 책임지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황 소장은 문화재 지정문제에 대해선 “문화재지정이 70~80년이 지나 갔으면 국가는 전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 문화재 지정에 가치와 기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제는 과거의 오류를 반성하고 점검할 때이다”라며  “동산문화재는 뿐 아니라, 무형문화재 지정에 관한 오류도 심각해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지난 5월 30일 문화재청은 보도 자료를 배포해 ‘조선 시대 철종 때 심상응’의 존재 여부와 ‘조선 시대가 아닌 정자와 연못’ 등에 ‘이번 연구에서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며, 그 결과를 관계 전문가와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필요할 경우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