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예술의전당인가? 영화의전당인가?
[단독]예술의전당인가? 영화의전당인가?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9.08.19 0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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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박물관 정체성과 관련 없는 한국영화100주년 포스터전, 서예인들 비판 줄이어
“서예와의 개연성 조명도 없고, 아무런 부제나 설명도 없는 전시는 정도 아니다”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경.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이 현재 서예박물관 2층 전관에서 열고 있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전시가 박물관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전시라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서예박물관은 지난 달 27일부터 오는 9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서 영화사에 의미 있는 자료들을 공개했다.

그런데 이 전시가 영화와는 관련이 없는,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서예계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들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번 영화포스터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개막식 또한 영화계 원로와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고 밝혔지만 정작 “서예박물관에서 ‘서예’는 실종됐다”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비판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전당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 자료의 전시 취지를 담은 전시소개 글에서도 확인된다.

 전시소개 전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예술의전당은 2019년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는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19년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2019년 올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세계 정상에 서기까지 파란만장한 영화 100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지난 100년간의 우리 역사를 ‘영화 포스터’라는 거울로 되돌아보며 빼앗긴 나라, 항일,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바쳐 살아온 우리 시대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단지 최초 보도자료를 내보내면서 “포스터에 쓰인 영화 제목이야말로 동시대의 서민들과 대화하는 살아있는 민체 글씨...서울서예박물관에서는 2016년 개최한 <한글 서와 라틴 타이포그라피>展을 통해 타이포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수용한데 이어, 이번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을 개최함으로써 서울서예박물관의 문턱을 낮추는 대중화 노력에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글의 중간 부분에 몇 줄이 언급돼 있다.

그러나 정작 전시 제목이나, 실제 전시 구성은 이와는 동떨어져 문제다.

▲예술의전당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의 전시취지를 담은 글. 서예와 영화포스터와의 연관성에 대한 글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자료=예술의전당)

이는 개막식 이후 보도자료에서 더 완연히 드러난다. 서예박물관을 관장하는 유인택 사장의 인사말 어디에도 ‘서예’나 ‘문자’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얼마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계기로 한층 더 높아진 영화에 대한 관심과 의미를 짚고, 한국영화 100주년의 역사성을 조명하는 내용만 강조돼 있다.

자료에는 “유인택 사장은 개막식에서 영화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요즘,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행사를 개최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며 ’이번 전시는 온 가족이 다함께 즐기고, 우리 영화 100년사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라고 적시했다.

이번 전시에 대해 서예계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의 포스터. 특정 목적으로 설립된 서예박물관과 전시의 개연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자료=예술의전당)

임종현 한국미협 서예분과 행정이사는 “서예박물관에서 서예가 이닌 걸로 전시한다는 것이 문제다. 예전에도 민화전을 열어서 서예계에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서예박물관은 서예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데 전혀 다른 장르로 전시를 한다는 것에 서예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고, 어처구니 없다. 서예로 여러 좋은 전시를 해야 하는 박물관이 자신들의 직무를 다른 데다 떠넘긴다는 생각도 든다”고 지적했다.

문인화가인 박종회 선생은 “박물관 설립 목적과 맞지 않다. 후원을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100주년기념사업회에서 했던데 이것을 왜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서예협회 윤점용 이사장(서예박물관 운영위원)은 서예박물관의 기획의 빈약함을 질타했다.

윤 이사장은 “할말이 없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라면서 “영화포스터에 붓글씨 타이틀 등이 서예와 연관성이 있으므로 그것을 결부해서 부각시켰다면 서예의 사회성과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아무런 부제나 설명도 없이 ‘영화포스터전’으로만 한다는 것은 정도가 아니며, 밑도끝도 없는 전시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새로온 예술의전당 사장이 영화인이라 새로운 기획을 했는데 큰 아쉬움이다. 제대로 된 서예전시가 없는 가운데 이런 전시까지 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크다”고 거듭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울러 윤 이사장은 자신이 서예박물관의 운영위원임에도 이번 전시와 관련한 회의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다는 점을 상기하고 전시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이종선 서예단체총연합회 간사(서예박물관 운영위원)는 “전시를 보지 못해서 뭐라할 수는 없지만 (영화포스터전만 부각된 전시는) 전시장 운영목적과 성격에도 어긋난다” 면서 “올해 전시기획에도 전혀 없었는데 급조된 것으로, 서예관 전시계획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예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2019년도가 영화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해서 우리가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기획전을 하게 됐다” 며 “전시포스터가 하나의 시각매체인데 그 안의 텍스트 문자들이 100년을 지나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을 서예쪽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시기획자는 “전시란 기획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관객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전시에서는 영화포스터에 쓰여진 문자의 서체나 예술성 등에 대해서 전혀 설명도 없으며 관객이 전시물을 통해 문자의 변화를 느낄 어떠한 장치도 맥락도 없는 전시”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예술의전당이 보도자료를 통해 ‘타이포그라피 등을 언급한 것은 단지 자신들의 전시의도를 가리기 위한 말장난일 뿐이며, 이 전시는 부산 영화의전당이나 다른 영화 관련 기관에서 여는 것이 적합한 전시”라고 덧붙였다.

이은영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