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본 음악영화 ‘가요반세기’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본 음악영화 ‘가요반세기’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8.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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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뮤지컬에 관심이 있거나 관계된 사람이라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더욱 주목할 겁니다. 한국영화 100주년인 올해는, 특히 한국의 음악영화에 대해서 더욱 주목하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한국음악영화 두 편을 한 번에 함께 상영을 했습니다. (8월 11일)

‘푸른 언덕’과 ‘가요반세기’로, 이유는 한 편의 영화는 전체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한국음악영화라고 하는 푸른 언덕 (1949년, 유동일 감독)은 3분의 1정도만 볼 수 있었습니다. ‘푸른 언덕’은 오래도록 필름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로 알려졌기에, 이렇게 일부라도 남아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현인을 주연을 내세운 ‘푸른 언덕’은, 노래에 관심을 둔 시골 젊은이(현인)가 상경해서 음악가로 성장하는 얘깁니다. 스토리 전개와 배우의 연기의 아쉬움은 크나, 당시의 서울의 명동 풍경과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또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명치좌로 출발했던 이 공간은 한국의 ‘뮤지컬’과도 연관이 있지요. 영화, 연극, 창극, 무용 공연이 펼쳐졌고, 한 때는 미스코리아와 미스터코리아, 대종상 영화제 등이 열린 곳이기도 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한 여기에선, 김해송(1911~1950)이 외국의 작품이나 인물을 가져와서, 김해송 스타일로 만든 음악극이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이기도 한 이난영(가수)이 출연했습니다.

한국의 뮤지컬(음악극)이나, 한국의 음악영화는 어디서부터 ‘최초’를 삼아야할지, 때때로 망설여집니다. 흔히 한국창작뮤지컬의 효시로 ‘살짜기 옵서예’(1966)를 꼽지만, 관점에 따라서 이전에도 음악극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공연되었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오페라와도 다르고, 이 땅의 창극과도 다른 형태로, 대중적인 정서를 반영한 노래에 스토리가 합쳐져서 공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JIMFF포럼 : 한국영화 100년, 시대의 노래’를 통해서, 최초의 한국의 음악영화는 무엇이며, 음악영화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가요를 연구하는 이준희님이 발표를 했고, 영화를 연구하는 김종원님의 토론에 참여를 했습니다.

아 참, 이번에 상영한 두 편 중 한편을 이제야 얘기를 하게 되는군요. ‘가요반세기’(1968년, 김광수 감독)는 제목처럼 유성기음반과 함께 한 대중가요의 역사를 짚어보는 극과 노래로 함께 하는 작품입니다. 이 땅의 대중음악의 역사를 살피기위해, 김진규(배우)가 내레이터로 등장을 해서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조국 근대화의 흐름으로 반세기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의 심정이 담긴 ‘방랑자의 노래’(이규송 작사, 강윤석 작곡, 채규엽 노래)를 시작으로, 1960년대 후반 박정희정권의 정치적 노선과 맥을 같이 하는 육군김일병(정민섭 작사, 정민섭 작곡, 봉봉사중창단 노래)와 잘살아보세(한운사 작사, 김희조 작곡, 최희준 노래)로 영화를 맺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기존의 필름에서 가져온 필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라의 달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은 영화 ‘팔도강산’(1967년, 배석인 감독)에서 현인이 노래하는 장면을 가져와서, 새롭게 편집했습니다. 노부부역할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김희갑과 황정순의 모습이 멀리서 살짝 보이는 것을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봤을 겁니다.

영화 ‘가요반세기’의 앞과 뒤에는 ‘제 2회 가수의 날’ 행사장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한국연예협회의 가수분과위원회 소속의 거의 모든 가수를 거기에 모였습니다. 가수의 날은 6월 1일. 이 영화는 1968년 5월 3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가수의 날 행사와 시상식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이미자와 최희준이 상을 받는 모습도 보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가요반세기’를 보면서, 관객이 기분 좋게 웃음 터지는 장면은 남진이 부르는 ‘마음이 고아야지’. ‘마음이 고아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이런 노래 어렴춧이 기억하시죠?

1968년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블도저 시장’이라고 불린 만큼, 서울에 많은 상가와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세운상가 옥상 위, 파라솔, 그네, 시소가 있는 공간에서 당대 최고의 멋쟁이가수 남진과 스커트차림의 댄서들이 함께하는 ‘마음이 고아야지’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영화 ‘가요반세기’는 지금의 시각으로서는 보면 영화적 일관성과 완성도에서도 매우 아쉽지만,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와 함께,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활동했던 원로가수의 모습과 인터뷰가 사료적 가치로서 귀중합니다. ‘가요반세기’에 출연한 가수를 앞에 나오는 영화 자막 순서대로 열거하면, 패티김 / 윤복희, 최희준 / 김용만 / 남진, 현미 / 한명숙, 최영희 / 정훈희 / 강정화,유주용 / 위키리 / 남일해, 박재란 / 이미자 / 이금희, 고복수 / 백년설 / 현인. 이런 순서입니다. ‘타향살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고복수(1911~1972)선생의 인터뷰는 매우 의미가 큽니다. 자신의 데뷔곡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대중음악을 이끌었던 콜롬비아레코드와 오케이레코드를 언급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SP음반과 LP음반이라는 용어조차 사라졌지만, 영화 ‘가요 반세기’는 1960년대 우리나라 음반산업을 이끌었던 한 회사인 신세기레코드사가 영화제작에 큰 역할을 했음을 스크린의 몇몇 장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가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도, 조금은 생소한 가수 두 명을 영화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가요반세기’는 이봉조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이봉조하면 바로 연결되는 현미와 정훈희와 함께, 최영희와 강정화도 이른바 ‘이봉조 사단’의 사단의 가수입니다. 일제강점기의 히트곡인 윤심덕의 ‘사의 찬미’(죽음의 찬미)와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옛터’(황성의적)을 영화 ‘가요반세기’에선 강정화와 최영희의 노래로 들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의 대중음악의 한 흐름을 알 수 있지요. 이봉조의 테너섹스폰 연주와 함께 10대 모습의 정훈희가 부르는 ‘안개’를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후반 세태풍자의 노래로, 넓게보면 일제강점기의 만요(漫謠)의 정서적 흐름을 잇고 있는 ‘몽땅 내사랑’(이봉조 작사, 이봉조 작곡, 현미 노래)은 지금 시각으로 봐도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노랩니다. 1960년대 후반, 한국가요를 세계에 알린다고 더욱 유명세를 탔던 두 여가수, 패티김의 ‘태양이 뜨거울 때’와 윤복희의 ’웃는 얼굴 다정해도‘를 만나는 기쁨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김진규가 한국가요의 얘기를 하는 장면의 뒷 배경에는 여러 음반이 있는데, 모두 신세기레코드사에서 제작한 ‘국악음반’입니다. 거기에는 당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판소리명창 박초월, 가야금병창의 박귀희, 배뱅이굿의 이은관 등의 앨범 자켓 사진과 함께, 당시 대중에게 인기가 많았던 대감놀이 (이은주, 안비취, 심명화 창)와 함께, 박초월 성우향 한농성 등이 참여한 창극형식의 춘향전 음반도 보입니다.

영화 ‘푸른 언덕’과 ‘가요반세기’는, 한국인들의 근원적인 노래적 정서를 확인시켜 줍니다. 이 노래들은 지금의 뮤지컬에도 잘 활용하면 모두 제 역할을 해 줄 노래들입니다. 요즘 나는 사실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시들합니다. 뮤지컬넘버에서 느껴지는 상투성과 한계성을 종종 경험합니다. 한국에서 특정 가수와 작곡가가 만든 가요를 중심으로 창작뮤지컬이 만들어지는데, 조금 시각을 넓혀서 1960년대의 가요에 눈을 돌려보면,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는 곡들도 많이 있습니다. 영화 ‘가요반세기’의 노래들이 그걸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국의 음악영화를 직접 보고, 이와 관련한 포럼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화두는 ‘“왜 한국에는 제대로 된 음악영화(뮤지컬영화)는 없느냐?”히는 화두였습니다. 모두 아쉽고 답답한 마음이겠지만, 나는 한국영화 ’가요반세기‘에서 그 새로운 춟발점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있었던 곡의 가치가 더욱 귀하게 느꼅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곡들은 이미 여러 대중들의 정서적 검증을 확실하게 받은 곡이니까요. 영화 ’가요반세기‘에 등장하는 곡을 바탕으로, 우리 정서가 깊이 밴 뮤지컬영화를 만들 사람이 나타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