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뇌腦창創 칼럼 15]‘프리드리히 실러’의 자사고 문제 해법
[미美뇌腦창創 칼럼 15]‘프리드리히 실러’의 자사고 문제 해법
  • 고리들 화가/ <두뇌사용설명서>저자
  • 승인 2019.08.19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리들 화가/'두뇌사용설명서' 저자
▲ 고리들 화가/'두뇌사용설명서' 저자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 선배의 자사고 관련 한겨레신문 7월 17일 인터뷰에서 불편한 두 곳이 있다. 먼저 특목고에 진학한 자녀에 대해 반성하는 투의 말은 불편하다. 지능이 비교적 좋은 자녀의 선택이라면 어느 부모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 자녀에게는 현재 제도에서의 개인적 최선이었을 것이다.

인터뷰 끝부분이 더 혼란한 모순이다. “섞임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재벌의 자녀와 택시 운전사의 자녀가 한 학교에서 만나고 같이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한 학급에서 만나서 어울려야 해요. 물론 잘하는 학생이 더 잘할 수 있는 통로는 열어줘야 하지요.” 기자의 표현이 나빴을 수도 있지만, 앞의 말대로 보면 학습과 체험활동을 분리했어야 더 좋았을 것이다.

필자는 대중강의에서 프랑스 국기의 민주주의 상징인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해 교육에 있어서는 다원성 다양성의 자유를, 정치에 있어서는 인권의 평등을, 기업 활동과 경제에 있어서는 빈자와 약자를 위한 박애가 각각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교육적 뷔페(Buffet)를 위한 노력인 일반고 권역별 공유캠퍼스(가칭)는 학생들의 학습 커리큘럼 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좋은 제도이나, 공부의 능력과 진도가 다른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섞여서 공부해야 한다는 점은 근본적으로 학습의 자유나 동기부여를 심하게 해치는 방식이다.

두뇌의 본성은 자기가 이해한 지식에서 5%~15% 정도 더 어려운 내용에 흥미를 느끼도록 진화되어 있다. 성향에 따라 개인적 난이도 선호가 더 큰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일단 10%가 평균이라 치고 생각해보자. 교실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10% 더 어려운 놀람, 새롬, 변화, 복잡, 모호 이 5가지 어려움을 적당히 느끼게 하는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버트런드 러셀’이 말했다. “로맨스 없이는 스타일을 만들 수 없고 스타일 없이는 뷰티(아름다움)에 이를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삶의 동기(로맨스) 자체를 다각적 다원적으로 고려하는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 교육은 자연스럽거나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 삶의 의리(義理)가 부족하다. “讀書者 唯義理是求 若 義(인문)理(자연) 無所得 雖日破千卷 猶之爲面墻也” ‘다산 정약용’의 금언에서 의義는 인문학이고 리理는 자연과학이라고 해석된다. 독서는 의리를 구하고자 함이며 책 천권을 독파해도 의리를 얻지 못하면 책이 아니라 담벼락을 보는 것과 같다는 이 말은 독서와 교육이 인간적이어야 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 한국 교육은 자연스럽거나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 모든 지식의 속성은 리좀(Rhizome:그물망처럼 얽힘)의 특성과 프랙탈(fractal:더 미세한 잔가지가 계속됨)의 속성이 있으며 각각의 사람마다 과목마다 선행하는 지식의 양과 온몸이 느끼는 깊이의 질이 다르다. 결국 교육은 개별맞춤과 개인의 동기부여를 따르는 것이 오래된 미래이다.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 ‘excellence for all’은 생존을 위해 자연과 싸우던 원시부족사회에서부터 지속된 개념이다. 성인 구성원의 강력한 장점들이 모여서 인간 집단은 생존해왔다. 각자 의리의 정도가 다른 학생들의 섞임은 축제나 체험활동에서 섞이거나, 또는 밖에서 현상(phenomenon)을 관찰하고 문제점(problem)을 탐구하고 교실에서 발표하고 뭔가 새로운 계획(project)을 실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3PBL 활동에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논의하며 채우기 위해 섞여야 한다. 이를 협동학습에서 직소모형(Jigsaw puzzle)이라고 한다. 모두를 위한 수월성교육은 인류 전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교육에서도 생태계 개념이 기본이다. 인간의 두뇌는 앞에서 제시한 5가지 어려움을 체험적 직관의 휴리스틱(heuristic)으로 더 빨리 해결하기 위해 맥락(context)과 은유(metaphor)를 사용한다. 그런데 인간의 두뇌모델로 봐서 맥락과 은유는 빙산의 일각과 같은 것이다. 표면에 드러나는 통찰과 직관을 위한 수면 아래의 빙산은 혼돈의 감각과 개념의 씨앗들로 가득하다. 문제는 그 감각과 개념의 씨앗들은 각자 다르다는 것이며 그 씨앗은 기르는 방식과 영양분도 달라진다. 동기부여와 학습법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알곡과 가라지(잡초)의 뿌리는 서로 얽혀서 성장한다. 여기서 인생의 알곡은 각자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자사고 문제의 해법을 은유적으로 제시했다. 이 칼럼의 맥락으로 보자면 ‘실러’가 상상한 교육적 환경은 각자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풍부한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동아리형 체험학습이 풍부한, 사회와 마을과 학교가 분리되기도 어려운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지도 않는 풍부한 혼돈일 것이다. ‘실러’는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에서 창의성과 통찰이 그 미감적 혼돈에서만 튼실하게 자란다고 말한다. “감각의 수동적인 상태에서 사유와 의지의 능동적인 상태로 이행하는 일은 반드시 미적 자유라고 하는 중간 상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이 상태가 그 자체로는 우리의 통찰이나 신념을 위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우리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전적으로 미결정 상태에 버려둘지라도 이 상태는 우리가 통찰력과 신념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필연적인 조건이다. 한마디로 말해, 감각적 인간을 이성적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를 먼저 미적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실러’는 앞에서 설명한 미감적 상태에서 유희하는 인간을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인간다운 교육의 방향성은 미적 자유와 미결정 상태를 허락하고 있는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사고 재지정에 성공한 학교일수록 ‘실러’가 언급한 미감적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필자의 아들이 더 크기 전에 바람직한 자사고나 혁신적 대안학교보다 더 풍부한 미감적 환경을 가진 일반고가 아주 많아지길 바란다. 교육다양성 문제는 다음 칼럼들에서 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