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정예진 명창 “상하화동(上下和同), 스승과 제자 함께 우리 소리 지켜가야”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 인터뷰] 정예진 명창 “상하화동(上下和同), 스승과 제자 함께 우리 소리 지켜가야”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8.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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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예진 명창

"에야디야 어야디야 봄이 오면 꽃향기에 산새소리 방방곡곡 산골짜기 봄바람에 휘영청 버들가지 한들한들 처녀들의 치맛자락 봄바람에 한들한들 에야디야 어야디야 봄이 왔네“

성북구 보문동 ‘예운당’에 사계(四季)를 부르는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운당의 주인 정예진 명창이 소리를 하자 일상의 공간은 곧 무대로 변한다. 일렬로 가지런히 놓인 가야금과 제자들의 이수증·전수증으로 빼곡히 들어찬 벽면, 이름만으로도 걸출한 스승들과 함께한 사진들이 정예진 명창이 걸어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예진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전수조교로, 가야금병창은 박귀희, 안숙선, 강정숙 선생에게서 무용은 김천흥, 한영숙 선생에게 사사했다. 지난 1월에는 제10회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정예진 명창의 인생에 가장 무게감이 있는 것은 향사 박귀희 선생의 제자라는 타이틀일 것이다. 

정 명창은 인간문화재 23호 향사 박귀희 명창에 11세에 입문해 선생의 소리는 모두 다 배웠다. 그런 책임감으로 박귀희 명창의 가사집 전곡을 책으로 냈으며, 음반 역시 마지막 한 장을 완성하면 전곡을 발표하게 된다. 최초로 향사 박귀희 명창의 곡들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박귀희 선생님의 소리와 음악세계를 집대성했다는 건 일생에 아주 큰 업적”이라는 정 명창. 2008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KBS국악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운당여관의 주인 박 명창과 함께 살기도 했다. 당시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운당여관에서 정 명창은 스승의 소리와 예술인들의 삶을 더불어 살았다. 그 각별한 추억으로 현재 전수소의 이름 예운당의 ‘운당’을 운당여관에서 따오기도 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中 

인연(因緣)에 대한 설이 많다. 스쳐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악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연이 인연이 되고, 필연이 되는 만남도 있다. 박 명창과 정 명창의 인연이 그렇지 않을까. 일평생 스승 향사 박귀희 명창의 소리와 가야금을 올곧게 지켜온 제자 정예진 명창은 어느덧 스승이 돼 수많은 제자들의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정 명창의 전수소인 예운당. 그곳에는 전통의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존중이 있고 예가 있었다. 또한 ‘상하화동(上下和同)’의 정신으로 스승과 제자, 선후배 모두가 함께 어울리며 삶과 전통 소리의 가치를 지키는 곳이었다. 그 가치의 씨앗을 뿌린 운당여관의 주인 박귀희 명창이 살아계셨다면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지 않았을까. 지금 정 명창이 제자들을 보며 그런 것처럼 말이다. 몇해 전 친구가 써준 “‘上下和同’을 늘 마음 속에 새기기 위해 걸어놓고 있다”는 정예진 명창을 예운당에서 만났다.

▲ 전수소인 예운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예진 명창. 예운당의 ‘운당’은 스승인 향사 박귀희 명창의 ‘운당여관’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전수소인 예운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예진 명창. 예운당의 ‘운당’은 스승인 향사 박귀희 명창의 ‘운당여관’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소회를 다시 한번 말해달라

언론에서 주는 상이라 특별했다. 뜻하지 않게 수상 소식을 들었고, 도전해서 성취하는 종류의 상이 아니라 명예롭게 느껴졌다. 수상 소식을 듣고 시상식 전까지 설렜다. 지난 1월 시상식 이후 한동안 상패를 화장대 앞에 두고두고 보기도 했다. ‘내가 헛되지 않게 살았구나’ 감격스러웠다. 아버지께서도 무척 좋아하셨다. 시상식 당시 문화예술 분야 각계각층 훌륭한 분들 속에 음악 부문을 수상하게 된 것에 대해 가야금병창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생각도 들면서 기뻤다. 시상식에 제자들도 많이 참석해 축하해줬다. 평생 몸담아 온 국악계가 아닌 언론계에서 주는 특별한 상이라고 제자들이 밥도 사줬다. (웃음)

▲ 지난 1월 24일 열린 제10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정예진 명창이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지난 1월 24일 열린 제10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정예진 명창이 음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가야금병창은 박귀희, 안숙선, 강정숙 선생에게서 무용은 김천흥, 한영숙 선생에게 사사했다. 이름만으로도 걸출한 스승들에게서 받은 영향은 무엇인지

지금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전수조교이지만 사실 나는 악가무(樂歌舞)를 다했다. 8세에 김천흥 선생님 문하 무용을 사사했고 11세에 박귀희 선생님 문하에 입문해 10년 뒤 1977년에는 박귀희 가야금병창 전수소 조교를 맡았다. 어릴 때부터 박귀희 선생님을 만나 배울 수 있었다는 건 영광이었다. 집이 근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6학년 때는 선생님 집 ‘운당여관’에 살면서 통학했다. 이후 국립 전통예술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학교에는 문화재 선생님 수십 분이 재직하고 계셨기에 학습에 좋은 환경이었고, 나에게는 그 6년 동안의 시기가 지금 국악계에서 우뚝 설 수 있는 원동력이자 좋은 자양분이 됐다. 학교가 끝나면 한영숙 선생님 무용학원에 다니며 바쁜 학창시절을 보냈다.

국악계 어머니이신 향사 박귀희 선생님은 항상 끊임없이 치열하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존경하는 안숙선 선생님은 끝없는 노력으로 음악의 완성을 위해 자존감을 높이라고 깨우쳐 주셨다. 언니와도 같은 강정숙 선생님은 삶에 고단함을 읽어주시며 따뜻한 손길로 항상 다독여 주셨다. 최고의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복이다. 그런 복을 허투루 누리지 않게 지금까지 묵묵히 성실히 학습할 수 있었다. 

공연뿐만 아니라 음반 및 가야금병창 가사집(박귀희 류) 등 저술활동도 하셨다

향사 박귀희 선생님(1921~1993)께 헌정하고 싶었다. 2년 뒤는 향사 선생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어릴 때 만나 향사 선생님 음악을 다 배웠다. 책임감이 있었다. 20살 때부터 계획하고 글을 준비했다. 그리고 약 30년 만에 책을 내게 됐다. 귀명창이자 노랫말풀이에 전문가인 배연형 판소리학회장과 함께 책을 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어 감사했다.

구전(口傳)으로 음악을 남기는 데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나는 늦게 대학에 입학해 대학원까지 다녔다. 고등교육 공부를 10년 가까이하면서 소리를 전승하기 위해서 악보도 필요하고, 고사성어나 어려운 노랫말 등을 대중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음반도 냈지만, 특히 향사 선생님 가야금 병창 곡은 전부 책으로 냈다. 박귀희 선생님의 소리와 음악세계를 집대성했다는 건 일생에 아주 큰 업적이다. 2008년 KBS국악대상도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할 수 있었다.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후학들에게 중요하게 강조하는 부분을 나눠준다면

전통의 기본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이 많고, 이 시대의 흐름이 빨라서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들도 많이 요구하지만 우선 전통음악을 잘 배워서 갖고 있는 것을 토대로 시대에 맞게 발맞춰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너무 멀리 가면 되돌아오기가 사실 쉽지 않다. 젊었을 때 잠깐은 창작음악을 곁들이고 새로운 음악을 하겠지만 그 정도(正道)를 놓치지 말고 잘 지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기본 뿌리를 전통의 뿌리를 굳건히 딛고 창작하는 게 중요하다. 창작음악이 나와도 전통에서 나와야지 다른 데서 나오면 뿌리 없는 음악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고집스럽게 많이 한다. 또한 교육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음악을 잘 배우라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선생님이 잘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음악의 기본인 성음 등을 배운 대로, 그대로 가르치는 것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음악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고수해서 지키는데 60세월을 넘겼다. 

▲2017년 7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무대에 오른 ‘정예진 음악여정-줄소리노래소리 20주년 기념공연 上下和同’ (사진=예운당)
▲2017년 7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무대에 오른 ‘정예진 음악여정-줄소리노래소리 20주년 기념공연 上下和同’ (사진=예운당)

줄소리노래소리 대표도 역임 중이다. 어떤 단체인가

‘상하화동(上下和同)’의 정신으로 같이 어울려서 소리하는 동인이다. 제자들이 많아지면서 자리도 내주고 무대에도 함께 서는 모임을 결성했다. 1998년 발족기념 발표회 이래 지난해까지 총 22회 정기공연을 마쳤고, 지난 13일 올해 23회 정기연주회를 마쳤다.

‘줄소리노래소리’라는 이름은 박귀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줄소리’에서 따왔다. 첫발을 들여온 제자들이 박사까지 마치고 학교를 출강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대통령상 수상 등 상도 많이 받고, 줄소리노래소리 모임 내 소그룹 활동도 활발하다. 제9회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대상 창작국악팀 'THE+미소' 역시 그중 하나다. 내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 속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어서 서로 이끌어주고 잘 꾸려나가고 있다. 제자들도 나름대로 계속 선생님의 뒤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나간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하다. 제자 농사를 잘 지은 것 같다.(웃음)

안숙선 선생님께서 제자들에게 공개 오디션을 통한 정확한 평가로 이수·전수 자격을 오픈해주고 계신다. 박귀희 선생님과 안숙선 선생님의 후예로서 나의 역할은 허리 부분의 질서를 잘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자식처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 뿌듯하다. 상하화동. 지위를 떠나서 식사할 때는 서로 허심탄회하게 엄마도, 언니도 되어주고 같이 음악의 길을 가는 동료이자 동반자로서 함께 어울리는 것이 참 좋다. 앞으로도 상하화동의 정신으로 줄소리노래소리회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야금 병창이 후대에 전해지고 또 새롭게 발전하려면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그동안은 가야금병창이 호기(好期)였다. 내가 사는 동안은 좋은 시기였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 배우는 중인 젊은 학생들에게는 불투명하다. 창작음악이 난무하고 전통무대가 자꾸 사라지고 있다. 그전에는 기업 협찬이나 무대 제공이 비교적 많아 힘을 싣고 음악을 지켰는데, 지금은 해태크라운 윤영달 회장이 거의 유일하게 각종 대회나 무대를 후원하고 있어 감사하다.

무대가 없어진 지금 가야금병창도 길거리 버스킹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에 가서 버스킹을 하고 그 나라 신문에 실리는 일도 있다. 20년 전에는 전철역에서도 공연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어른들은 어떤 일이든 버텨야 하는 시기가 있는 법이니 버티라고 하셨다. 나도 제자들에게 지금 무대가 너무 없어서 힘들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소리를 잘 지키라고 강조한다. 잘 지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리를 잘 지키라고 이수·전수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학·대학원까지 공부한 게 언제 빛을 발할지는 모르지만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음악을 전승·보급하는 데 힘을 실어야 한다고 세뇌시킬 만큼 잔소리를 많이 한다. 다행히 제자들이 나를 닮아 징징대지는 않는다.(웃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제자들에게 과욋돈 받은 적이 없다. 매주 월·금요일에는 전수소에 앉아 제자들을 기다리면서 밥 먹여서 공부시키고 소리가 잘 이수되도록 열심히 가르친다. 박귀희 선생님 책도 전수조교로 받는 전승지원금 등으로 누구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고 출판해 박귀희 선생님께 바치고, 안숙선 선생님께 영광을 돌렸다. 제자들에게 내가 박귀희 선생님 제자고 안숙선 선생님의 전수조교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살아온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고 배운 것에 대한 책임과 또 부모들이 뒷바라지해준 열정을 감사하게 생각해서 나보다 더 훌륭한 마음으로 이 음악을 전승·보급하는 데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한다. 

▲정예진 명창(우)이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 안숙선 명창(좌)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 명창은 안 명창의 전수조교다
▲정예진 명창(우)이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 안숙선 명창(좌)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 명창은 안 명창의 전수조교다

앞으로 하고 싶은 공연 혹은 계획은

소리극을 새롭게 한번 구성하고 싶다. 안숙선 선생님과도 지금 공연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민요만 했던 시대보다는 민요도 안무를 짜고 발림을 하고 춤을 춘다. 거기에 스토리까지 가미해서 극처럼 하는 공연이 많아지고 있다. 가야금을 안고 있지만 대본도 좀 쓰고, 그 극안에 음악을 같이 스토리텔링처럼 풀어보자고 말씀하셔서 작곡가들과 어레인지 해서 새로운 음악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향사 박귀희 명창 기념공연’을 비롯해 오는 10월에는 안숙선 선생님 문화재 보유자 기획공연에 서야 하고 기타 해외공연 일정도 있다.

음반을 하나 더 내야 한다. 10년 전에 마지막으로 낸 책에 대한 음반을 내면 최종적으로 박귀희 선생님 음악을 다 음반으로 내게 된다. 그리고 책을 쓸 계획이다. 나는 20대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가르치기 시작해서 약 40년간 교육 경험이 있다. 음악을 단순히 감각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지만 교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들을 토대로 국악계에 필요한 책들을 구상하게 됐다. 음악에 악보가 필요하듯이 그것을 설명해서 이해를 돕는 참고서 같은 책이 필요하다. 아주 쉽지만 기초를 중점적으로 하는 책들을 내고 싶다.

우선 초보용 국악 첫걸음 책을 집필하고 싶다. 우리 국악계에는 사실 초보를 위한 책이 드물다. 초보용 책을 보면 어느 정도 기량이 있는 사람들이 소화할 수 있는 책이다. 피아노 바이엘처럼 아주 간단하면서도 기초가 떨어지는 책을 번호를 매겨서 순서대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또한 소리를 가르치는 법과 배우는 법에 대한 방법론 책을 내려 한다. 용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소리를 가르치는데 기본적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줄을 가르칠 때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간단하고 풀이해 정리하고 싶다.

책을 낼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몰입해서 두려움도 앞서지만 하다 보면 또 즐겁다. 그래서 움직일만하면 정간보 개정판을 계속 내고 있다.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질 않는 걸 보니 꼭 이뤄야 할 과업인 듯하다. 대비책도 세워놨다. 제자들에게 “내가 혹시 책을 못 내게 되면 너희가 꼭 해라” 도장 새기듯이 각인시켰으니 언젠가는 꼭 책이 나오지 않을까.(웃음)

▲지난 14일 지면으로 발행한 서울문화투데이 제247호에 실린 정예진 명창 인터뷰
▲지난 14일 지면으로 발행한 서울문화투데이 제247호에 실린 정예진 명창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