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예술의전당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라!
[발행인 칼럼]예술의전당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라!
  • 이은영 발행인
  • 승인 2019.08.23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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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포스터’展 서예박물관서 서예와 관련 없는 전시로 비판 목소리 높아
영화 포스터 서체 통한 서예 예술성 부각시킬 기회 놓쳐, 무엇을 위한 문턱낮추기인가?
영화인 출신 사장의 기획 전시, 비판 피해갈 수 없어
공간에 대한 몰이해, 합창단의 낮은 임금 지급, 미투 문제인사 작품 버젓이 올려 성인지 감수성도 결여, 특정업체 사업 홍보 등 자충수

“제가 이번에 영화포스터 전을 서예박물관에서 열기로 했어요. 돈도 만들어 왔지요. 하하하”

지난 6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관이 주최한 제주 해비치아트페스티벌에서 만난 유인택 예술의전당(이하 예당)사장이 자랑하듯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왜 전시 장소가 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서예박물관인가”라고 물었다. 유 사장은 “이OO(서예박물관 학예사)이 영화포스터에 서예로도 훌륭한 글씨가 많다고 하더라” 즉, 영화포스터전과 서예와 관련성이 밀접함을 강조하기 위한 답이었다.

▲설립 목적과 맞지 않는 전시로 구성된 '포스터로보는 한국영화 100주년'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전경

참고로 서예박물관의 정확한 명칭은 서울서예박물관으로 서예 전시를 목적으로 설립된 예술의전당 산하 기관 중 하나다.

약 한 달 보름 뒤인 지난 달 26일, 예술의전당 주최로 서예박물관 2층 전관에서 열리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주년>전시 개막 소식을 접했다. 전시는 한국영화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자료원이 후원했다.

전시에 앞서 예당이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한국 최초의 영화부터 칸영화제 수상작까지, 역대 최대 규모의 영화 포스터로 만나는 ‘한국영화 100주년 특별전’”이라고 돼 있다.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제목 어디에도 앞서 유인택 사장이 말한 서예의 예술성을 주목케 하는 대목 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의 성격을 밝히는 전시취지 글을 들여다 봤다. 전시구성은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 주목할 만한 영화들을 시대별로 주제를 정해 묶어 놓았다. 전시 구성을 소개한 목차를 봐도 서예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관련기사: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8.19일자 [단독]예술의전당인가 영화의전당인가?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78)

▲전시장 내에 전시취지를 설명한 글. 서예와의 연관성은 단 한 자도 없다

전시구성은 아래에 적시한 것처럼 오로지 By the영화, Of the 영화, For the 영화다.

- 한국영화의 탄생 <의리적 구토>와 <아리랑>
- 1950년대 분단의 비극, 한국전쟁
- 1960년대 청춘의 스타콤비
- 문학이 영상을 만나다.
- 아역의 신화와 국민배우
- 1970년대 하이틴 영화
- 경아와 영자의 엘레지
-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
- 임권택과 월드스타 강수연의 <씨받이>
- 생존의 절규와 민주의 외침
 - 1990년대 기획영화의 등장, 로맨틱 코메디
- 2000년대 실미도와 1천만 관객의 시대
- 한국영화, 세계 정상에 서다

1. 1919~1945  한국영화의 시작, 일제 강점기 민족의 절규
2. 1945~1959  해방과 이념갈등, 6.25 한국전쟁
3. 1960~1969 한국영화의 성장과 검열의 수난기
4. 1970~1989  산업화와 청년문화의 등장
5. 1990년 ~ 한국영화산업의 변화, 거대자본의 유입

이렇듯 전시는 오로지 영화의 역사와 시대에 따른 의미만 부여돼 있다. 이 같은 전시구성이라면 영화 관련 기관에서 주최하고 관련 공간에서 전시를 열었어야 했다. 기초예술을 지원하기 위한 예술의전당이 왜 설립 목적과 동떨어진 대중예술 영화를 홍보하는 전시를 열었는지? 더구나 전시장소가 서예 예술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특정목적으로 설립된 서예박물관이어야 했는지? 점점 의문이 든다.

▲영화포스터 전이 열리고 있는 서예박물관 전시장 내부

예당은 이런 의문과 비판을 염두한 듯 했다. 보도자료에 이번 전시가 서예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몇 줄 글로 장치했지만(아래 줄친 부분) 거의 대부분이 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중략) 서울서예박물관에서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는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을 개최한다. 한국영화의 출발을 알린 1919년 작품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아리랑>, <오발탄>에서 <실미도>와 최근 칸영화제 수상작품인 <기생충>까지 지난 백년의 우리 영화사를 빛낸 영화 포스터 400여 점이 역대 최대 규모로 전시될 예정이다. (중략) 영화 포스터를 장식하는 제목과 크레딧은 문자예술이자 타이포그래피로 예술계와 일반에서 관심을 가져왔다. 포스터 상의 각종 사진은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시대상을 담아낸 거울이기도 하다. 영화 포스터 이외에도 예술성 높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구성된 스틸사진과... (중략) 이번 전시가 온 국민이 가장 즐겨 찾는 장르인 영화를 소재로 한 만큼, 전시 애호가뿐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이 서울서예박물관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략) ‘포스터에 쓰인 영화 제목이야말로 동시대의 서민들과 대화하는 살아있는 민체 글씨’라고 평가하며 이번 전시의 의미를... (중략) 이번 <포스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展을 개최함으로써 서울서예박물관의 문턱을 낮추는 대중화 노력에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전시구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면피용 레토릭?

예당은 이번 전시를 통해 서예박물관의 문턱을 낮출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고 한다. 가장 대중적인 영화를 불러와서 서예박물관을 대중에게 인식시키고자 했다. 서예박물관의 정체성은 뒤로 하고 무엇을 위한 ‘문턱 낮추기’일까?

결론적으로 위에 글은 전시구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면피용 레토릭’에 불과한 셈이 됐다.

예당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 스스로 말한 ‘서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받을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보도자료에서 강조한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으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 좋은 때에 말이다. 전혀 다른 장르 예술의 장점들을 콜라보한 전시였다면 서예역사에 남을 훌륭한 전시로 기억됐을 것이다. 결국‘서예’는 실종되고 ‘영화’만 남은 전시로, ‘서예관 문턱을 낮춘다’는 말은 부질없는 구호에 그쳐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서예박물관 관계자들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지 묻고 싶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장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추진했어야 했다면, 자신들이 한 말이 지켜지는 전시가 되도록 설득했어야 했다. 어쨌든 결론은 직무유기다.

▲영화포스터 전이 열리고 있는 서예박물관 전시장 내부

서예인들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잔치에 찬물 끼얹은 셈

지난 6월 12일, 침체된 서예계의 열망이 담긴 ‘서예진흥법’이 발효되면서 모처럼 서예계는 잔치분위기다. 서예인들은 지난 십여 년간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일의 국가가 운영하는 서예박물관으로서, 서예인들의 ‘자존심’인 전시 공간에, 전혀 관련없는 전시를 내놓고도 할 말이 있을까? 이 전시는 한마디로 서예인들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서예진흥법’은 지난 해 12월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기에 발효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시점에 서예박물관은 맥락없는 ‘영화포스터전’을 대규모로 열 것이 아니었다. ‘서예 진흥법’을 자축하는 기획전이라도 열었어야 했다. 더구나 전시가 열리는 기간에는 8.15 광복절도 들어있다. 김구 선생을 비롯 안중근 의사 등 독립열사들의 훌륭한 서예작품전을 열었으면 서예박물관의 존재와 가치가 제대로 빛을 발했을 것이다.

유 사장은 이번 전시를 두고 높아져 가는 비판의 목소리에 '좋은 전시를 기획해서 많은 시민들이 즐기고 있는데 전시장소가 무엇이 대수냐'라고 항변 할지도 모르겠다.

공공기관은 그 설립목적과 성격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래야만 그 기관의 존재 목적과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 사장은 설립 목적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이런 전시가 운영기관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당당하게 오로지 영화에만 방점을 찍는 유인택 사장의 배짱이 그저 놀랍다. 자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인택 사장, 기초예술 이해 부족으로 난맥상 노출

이번 전시를 주도한 유인택 사장은 지난 3월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부임했다. 30여년간 상업예술인 영화에 종사하며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기획과 제작으로 관여한 영화만 20여 편이 넘는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화려한 휴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들도 상당하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을 비롯 영화와 관계된 이런 저런 협회의 임원을 맡은 자리만도 10여 개가 넘는다. 이후 그는 뮤지컬에 눈을 돌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서울시뮤지컬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외 몇 편의 연극을 제작하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부임 직전까지 3년 남짓 대학로에서 공연장을 맡아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력 대부분은 영화와 뮤지컬로, 대중예술과 관련돼 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좌측)이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우측)의 전시 축사를 옆에서 듣고 있다

그런 그가 기초예술 분야 예술을 관장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예술의전당 사장을 맡게 됐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가 사장에 부임한 후 오페라와 미술 등 기초예술분야의 예술가들과 접촉하며 소통하려하는 모습을 보여 일말의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의 ‘미팅’ 후 들려오는 말들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게 했다. 그 불안감이 현실이 됐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건지.

유 사장은 취임 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의전당의 정체성을 찾겠다"고 공언했다. 공연장과 전시장을 개관 목적에 걸맞게 운영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고 후원 등을 많이 받아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되지 않은 시간 속에 후원이나 협찬은 많이 받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행보는 처음의 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공성을 추구하는 예술의전당 고유의 역할을 강조해온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영화계에 자신의 자리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공재를 특정 개인의 사심을 충족시키는 사유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예술의전당 정체성 찾겠다고 한 말은 공허한 외침인가

이 외에도 부임한 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기간 동안 유 사장의 여러 행보는 자리에 걸맞는 인사인가?라는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취임 때의 그의 각오가 불과 두 세 달 만에 증발돼 버리고 말았는지.

최근 유 사장은 극장 대관 문제를 비롯, 오페라합창단 저임금 지급 문제, 특정업체 홍보 등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오페라하우스에는 뮤지컬을 대관하고 무대 세트가 대형 극장에 걸맞는 오페라 ‘투란도트’는 중극장인 토월극장으로 밀었다. 극장 대관에 있어서도 이렇게 맞지 않는 옷을 입혔다.

특히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리고 있는 뮤지컬 ‘영웅’은 지난해 ‘미투’로 문제가 됐던 윤호진 에이콤 전 대표의 작품이다. 현재 에이콤은 대표명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크레딧에 윤호진씨가 올라가 있다. 윤 전 대표는 ‘미투’에 연루된 후 자숙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또 유 사장은 자체 제작하는 오페라합창단에게 열악한 임금을 주고도 전임자가 정해 놓은 정책에 따랐다는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작 사장과 예당 직원들은 고액 연봉에 연말이면 성과급 잔치를 벌일 것이다. 예술가들에게는 이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유 사장은 얼마 전 오페라하우스 입구에 '미세먼지 제거발판'을 설치하고 해당 기업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다른 기관의 행사에 가서도 아무런 양해도 설명도 없이 특정업체의 브로셔를 깔아놓고 홍보를 하도록 했다 한다. 이 무슨 무례한 행위이며, 특정업체를 홍보하고 밀어주기 위해 이렇게 대놓고 나서도 되는 것인가.

유 사장은 자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심을 채우지 말라. 자신의 사심을 채우라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 주는 것이 아니다. 전임자도 예술의전당을 자신의 사심을 채우는데 이용했다는 의혹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를 답습할 것인가? 더 이상 “‘개인의 놀이터’로 예술의전당을 전락시킨다”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한다.

유인택 사장은 스스로 공언한 것처럼 예술의전당을 빠른 시간 내에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바란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준엄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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