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획]"곽인식의 예술세계 재조명 해야"
[테마기획]"곽인식의 예술세계 재조명 해야"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8.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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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미술전문가 포럼 개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곽인식'전 연계 국제심포지엄 열려
"물질은 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도치되는 관계다"
"1980년대 '공간' 자체를 표출할려는 작업 재평가 받아야"

곽인식의 재발견을 위해 한-일 평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6월 1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MMCA, 이하 국현)과천관에서 개최 중인 《곽인식》전과 연계한 국제심포지엄이 지난 23일 과천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현숙(KISO미술연구소장)ㆍ미네무라 도시아키(미술평론가)ㆍ시바 시게오(미술평론가)ㆍ오광수(뮤지엄 산 관장) 한․일 연구자 4인이 곽인식의 작품세계ㆍ성과 등을 조망하는 발표를 했다.

▲국현 과천관에서 곽인식 작가 및 관련사진을 전시한 모습

김현숙 KISO 미술연구소장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열은 작가에게 평생 트라우마였을 것"

김현숙 KISO 미술연구소장은 '곽인식의 1960년대: 모노(もの)에서 표면으로'를 주제로, 곽인식의 1960년대 작업을 해석했다. 그는 “1960년대는 곽인식 작품세계 중에서 변혁이 심한 시기”라며 “곽 선생 작품에서 ‘봉합’의 의미와 ‘1960년대 유리작업'을 일본 신주쿠의 현대적 환경과 연결해 살펴봤다“라고 운을 뗐다.

김소장은 조셉 러브(JOSEPH P.LOVE, 일본에서 활동하는 미술평론가)가 쓴 곽인식의 묘비명 ‘THE SPARKLING OF EYES IS IT TO BE SEEN OR TO SEE OR MAY BE BOTH(보여지는 혹은 보는 혹은 둘 다인)’를 첫 화면에 띄우며 “묘비명을 보며 매혹적이면서도 곽인식의 작품세계와 참 잘 어울린다고 여겼다.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에서 묘비명을 시로 쓴 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가 성공적임을 보여준다”라며 “시각에 대한 문제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주체의 문제이다. 주체 문제에서 곽인식 자체가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 작가라는 점, 일본 부인과 결혼해 생활했다는 측면에서 경계적 위치에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곽인식이 EYE(눈)를 공간의 문제와 연관시켜 작품을 펴나간 점에 주목했다.

김 소장은 또 "1961년 곽 작가의 초기작품을 보면 눈동자를 많이 그려 눈알이라고 표현할 정도다”라며 곽 작가가 초기 눈동자를 많이 그린 것에 대해 “그 시기 일본작가 오카모토 타로의 영향으로 곽 작가는 초현실적인 화법을 구사했으며 눈이 물고기 눈과 유사하다”라고 주장했다. 물고기의 뜨고 있는 눈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어있는 정신’으로,그림의 눈은 신경증적인 표현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김현숙 소장이 발제하는 모습

이어 “끊임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탐구하는 도판 속 ‘눈’묘사에서 근대성과 연관 지을 수 있다”라며 “1960년 이후 작품에서는 형상성이 사라지고, 둥근 형태가 모노하(물질) 되고 깨지는 방식 혹은 석고를 두텁게 발라서, 시각에서 촉각으로 변화한다. 특히 시각에서 촉각은 근대에서 근대 이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며 “근대에 대한 반성 혹은 제안이다. 알의 중심을 깨고 다양한 이상에 초점을 맞추며, 공간적 작품표현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특히 김 소장은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인 예술가, 경계인으로서의 곽인식에 대해 조명했다. "곽 작가는 일제 시대를 겪은 작가로, 1960년대 일본 모노하와 관련된 일, 남북통일의 정치적 활동을 했다”라며 “광복 직후 형 곽원식이 광복 청년회 좌익인사에게 피살돼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친척은 좌익활동을 했다.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열은 작가에게 평생 트라우마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곽 작가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남북 분단의 상황을 겪어 ‘봉합’과 연결 지을 수 있다”며 “‘유리작업’은 현대성과 모노를 연결시킨 작업이다. 곽 작가는 신주쿠의 갤러리를 오가며 일본의 고도성장 이면에 사회문제들을 알고 있었다. 유리는 서양의 장치로 신기한 물질인 동시해, 기괴하면서 공격적으로 것(비판적)으로 느낀 것 같다”라고 유추했다. 곽인식의 ‘유리 깨기’ 작업은 유리는 현대를 상징하는 물질로 인식하고 현대성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것으로, 현대에 대한 욕망과 공포의 반작용으로 반근대, 반현대를 추구한 것으로 분석했다.

황동판 작업에 대해선 “부드럽고 따뜻한 동판작업으로 온화한 빛이 보인다”라고 전하며 “모노화는 현대성의 의미를 감지하는 것으로 작가는 온화한 빛, 유리 작은 유리 기능 보다는 다중적 의미의 유리로, 모노(물질)의 시각적 대화를 이끌고자 한 것이다”라며 “물질은 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도치되는 관계로 보는 눈과 보여 지는 눈의 연관해 동일한 의미다”라고 풀이했다. 1960년대 말의 종이 작품인 원 작업에 대해선 “동양적인 선취가 느껴진다. 일획론(一劃論)과 같은 동양미학사상을 체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네무라 도시아키 "물질과 양식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전체 관통하는 능력 뛰어나, 높은 작품성과 인격 비례"

미술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는 ‘절이냐 포옹이냐 – 현대미술의 인사법’ 이란 주제 발제를 통해  “1975년 일본에서 만난 곽인식은 부드럽고, 품위 있는 인상으로, (내면은)강한 사람이었다”라며 “1975년 곽 작가의 아틀리에는 금속과 유리 등 딱딱한 소재가 많았음에도, 부드러운 인상이 강하고 문화인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곽인식의 작품과 인간적인 면모를 함께 회고했다. “그는 조형가이자 화가였다. 회화작품을 보면 높은 사상을 느껴진다. 주변에 물질과 양식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작품의 질이 높은 작가로 작품성을 그의 인격에도 반영해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라고 제언했다.

▲미네무라 도시아키가 이우환의 작업을 설명하는 모습

이어 그는 “곽 작가의 ‘유리 깨기’ 작업은 조형적인 사물을 바라보는 힘이 강하면서도, 섬세한 작업으로 완성한 훌륭한 작품”이라며 ”자연의 그대로의 것에 대한 섬세함, 자연석 동물에 깊은 애정을 갖은 섬세한 작가였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노하 작품으로 유명한 이우환에 대해 “1969년 이우환이 연출한 큰 유리 작업은 일본미술계를 집어삼킨 작품이다. 그 근본은 곽 작가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며 “같은 나라 출신인 선배 예술가 곽인식을 이우환이 존경해 상호 교류 한 것으로, 이우환에게 작가로서 불명예 보다는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우환이 1969년 Tokiwa갤러리의 곽 작가의 전시회에 꼭 와달라며 초청장을 보낸 내용도 공개했다.

또한 “유리 작업에 이어 지는 금속 동판 선을 그은 작품 중, 금속을 다룰 때 ‘파괴와 봉합’을 한 부분이 흥미로웠다”라면서도 곽 작가의 원 작품에 대해서는 “원은 아무것도 발전도 바랄 수 없는, 완성의 극치 해탈의 경지라는 이미지다”라고 솔직한 평을 내놨다.

▲미네무라 도시아키가 곽인식 작가의 점토작업을 설명하는 모습

아울러 “(원 작업 이후에)1978년이 되면 곽 작가는 세라믹 작업으로 주변에 있는 소재. 정재 된 재료를 사용해 점토에 상처 입히는 작업을 했다”라며 “단순한 작업이 아닌 동작을 가미해 일종의 이야기를 만드는 사물에 언어성을 부여한 작업"이라고 곽 작가의 작업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서 “세라믹으로 좋은 방향성을 보여줬으면서, 야외 조각공원에 승리의 상징 돌탑을 만든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아마도 제자 이타미 준이 존경하는 곽 선생을 위해 설계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라며 곽인식 타계 3년 전에 과천관에 설치된 거대한 원형 돌탑 작품에 대한 이해와 예술세계도 덧붙였다.

끝으로 “곽인식의 포옹과 절도 같은 인사법이지만 방식의 차이가 있다. 다각적 방식의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미네무라 도시아키는 현재 다마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으로 동 대학 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다. 또한 국제미술평론가협회(AICA)의 일원으로 지난해까지 활동했다.

미술잡지 「HAIKAIKO」 발행인시바 시게오 "말년 팝아트 천착, 개념모노크롬과 모노 미니멀리즘 도달점 알고 있었다"

미술잡지 「HAIKAIKO」 발행인이자 일본 및 동아시아의 미술 작품에 대한 평론가로 유명한 시바 시게오는 “회화 공간을 초월한 회화의 지평 – 곽인식 론(論)”을 주제로 곽인식의 말년 작품인 ‘1970~1980년대 회화’를 살폈다.

그는  곽 작가의 말년 작업에 대해 “물질을 사용하지만 회화의 일반적인 기법을 탈피하고자하는 팝아트적인 개념이 많았다”라고 평가하며 “곽 작가는 모노크롬과 모노 미니멀리즘 도달점을 알고 있었다. 원 작업을 통해 동그라미를 구멍으로 자각하고, 평면의 원을 탈피해 작은 원으로 돌아간 것이다”이라며 “기존에 없던 공간을 창출해 '알'의 생명감, 자연으로 확장, 원초적인 세계와 연결시켰다”라고 해석했다.

▲시바 시게오가 발제하는 모습

그는 "곽인식은 일루저니즘(illusionnism)을 초월한 구체적 형태의 물체가 아닌, 회화를 회화답게 하되, '공간' 을 표출하고자 한 것으로, 1980년대 당시에도 첨예적인 기법으로 추상회도 관념화도 아닌 공간에 평면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 설명하고 “당시 사람들은 곽 작가의 예술성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1980년대 작품도 하나의 주제로 재발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광수 "곽 작가의 모노하는 일본 모노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5~6년 정도 앞선다"

마지막으로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곽인식과 한국미술과의 관계”를 조명했다.

▲오광수 관장의 발제 모습

오 관장은 곽 작가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경계선에 서있는 특수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일본에서 작가로서 성장하였으며 많은 것을 수용한 반면 이방인, 경계인으로 겪는 소외의식과 정신적 콤플렉스 요소로 그의 초기작을 이해할 수 있다”라며 “곽 작가의 모노하는 일본 모노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5~6년 정도는 앞선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노하 이념과 형식에 관계없이 곽 작가의 모노 논리는 자업적이고 독자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일체의 표현행위를 거부한 것은 상황 관계를 중시하는 모노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곽 작가와 모노하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가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1980년대 곽인식 채묵작품을 전시하는 모습

곽 작가의 1980년대 이후 작업에 대해선 “사실상 그의 만년의 수제종이와 채묵작업은 종이의 고유의 특성이 자각한 것이다. 공격적인 창이 순화된 양상, 종이가 일체된 상태 점은 동양으로 부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한편 이날 국제심포지엄 자리에는 발표자 4인 외, 곽인식의 조수였던 우에다 유조(갤러리 Q 대표)를 비롯 교수와 작가들, 곽인식 예술세계를 이해하고자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곽인식 초상사진(안자이 시케오 촬영)

개회식에서 윤범모 관장은 “1960년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온 곽 선생의 예술세계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오늘 자리는 국내 뿐 아니라 멀리 일본에서 평론가들이와 곽인식 예술세계와 위상을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라고 전했다.

곽인식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곽인식展은 오는 9월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