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길상사와 시인 백석(白石)
[김승국의 국악담론] 길상사와 시인 백석(白石)
  • 김승국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19.08.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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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 김승국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나는 마음이 심란하거나, 어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추스르고 싶을 때는 서울 성북동에 자리 잡은 길상사(吉祥寺)를 즐겨 찾는다. 길상사하면 떠오르는 분은 법정스님(1932~2010)이다. 법정스님은 그곳에서 법회를 주관하는 법주(法主)를 하셨고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몸소 실천하다 떠나신 분이다. 스님께서는 ‘내 것이라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고 유언을 남기실 정도로 평생을 ‘무소유’의 사상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셨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라는 뜻일 것이다. 비록 나는 불자는 아니지만 길상사에 가면 법정스님의 ‘무소유’ 사상을 떠올리며 마음을 비우며 자세를 정갈히 할 수 있어 좋다. 이런 스님의 고매한 체취를 느끼며 길상사의 뜨락을 거니는 것은 참으로 고적하고 맑고 향기로운 시간이다.

2010년 3월 11일, 법정 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비통한 마음이 들었지만 말씀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다 가신 스님을 보내드리며 내 마음을 다해 ‘청향(淸香)’이라는 시(詩) 한 수를 지어 영전(靈前)에 올렸다.  

‘금빛 노을 내리는 외로운 길/석양 향해 걸어가는 님/돌아보며 손을 흔드네/잘 있으라 손을 흔드네/내 여기 오지 않았는데/어찌 떠나갔다 하겠는가/내 여기 있지 않았는데/어찌 떠나갔다 하겠는가/빈손으로 떠나가는 님/맑고 향기로운 님/짐 지지 말고 가벼이 살라하네/가지지 말고 가벼이 살라하네/인생은 흘러가는 구름이거니/공수래공수거 이것이 인생이라’  

길상사에는 시인 백석(1912~1996)의 시비(詩碑)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사랑하는 시인(詩人) 윤동주가 시인으로서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독일의 시인 릴케와 시인 백석과 정지용이다. 윤동주의 시는 이 세 사람에게서 영향 받은 바가 크다. 길상사에 가면 법정스님 외에 시인 윤동주가 가장 존경하였던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본명 김영한)’(1916~1999)의 애달픈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백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잠시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함흥권번의 기녀였던 ‘김영한(妓名 진향)’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자야’는 시인 백석이 그녀를 애칭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서울 태생의 김영한은 일찍 홀어머니와 할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32년 일제 강점기 때 기생 조합인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 기생이 되어 당시 조선 정악(正樂)의 대부, 하규일의 문하에서 궁중무와 가곡을 배웠다. 백석과 자야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8.15 해방 후 백석은 ‘자야’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하여 함흥을 찾아가지만 자야는 이미 서울로 떠난 뒤였고 그 후 6.25 전쟁이 발발하여 그들은 남과 북으로 헤어지게 되어 그들의 사랑도 끝이 났다. 

길상사는 예전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다. 김영한(법명 : 길상화)은 백석과 이별한 후, 홀로 지내면서 돈을 모아 요정을 운영하게 되는데 그 요정이 바로 대원각이다. 홀로 지내던 그녀는 1987년 법정 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그 뜻이 스님으로부터 선뜻 받아드려지지 않고 있다가 1995년에 마침내 그 뜻이 받아드려져 대법사(大法寺)로 등록하였다가 1997년에 길상사(吉祥寺)라는 현 이름으로 개원하였다.

길상사 경내에 자리 잡고 있는 공덕주 김영한의 공적비 가까이에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백석이 그녀를 그리며 써내려간 연시(戀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어, 평생을 홀로 살며 백석을 그리워하던 김영한과 그의 연인 백석과의 서글픈 사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김영한이 생전에 "내 모든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 해"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백석에 대한 그녀의 깊은 존경심과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길상사 뜨락을 거닐며 그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와 백석의 시를 떠올리며 때 묻은 나의 삶을 더욱 순수하게 다듬어 볼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