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현대무용단의 픽업스테이지 ‘쌍쌍’과 아트프로젝트 보라
[이근수의 무용평론] 국립현대무용단의 픽업스테이지 ‘쌍쌍’과 아트프로젝트 보라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8.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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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마르코스 모라우(Marcos Morau, 1982~ )는 스페인의 중견 안무가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라 베로날’ 무용단을 창단하고 무용, 영화, 사진, 음악 등 다양한 예술언어를 융합한 자신들의 고유한 예술영역을 추구해왔다. 전문 무용수 출신이 아니기에 예술의 경계에 대해서 더욱 자유로울 것이다. 스페인문화체육부가 창작부문과 연기부문으로 나누어 각 3만 유로의 상금을 수여하는 스페인국가무용상(Spain National Dance Award)의 연기부문상을 2013년 수상했다. 당시의 창작부문수상자는 플라멩코 춤의 대가인 이사벨 바욘(Isabal Bayon)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초청으로 내한한 라 베로날 무용단의 레퍼토리는 ‘코바(KOVA)’와 ‘쌍쌍(Ssang Ssang)’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을 위해 안무한 쌍쌍은 2019년 신작으로 한국초연이다.      

우리 말 쌍쌍은 영어의 커플(couple)이다. 무대 중앙에 원형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바로 위 천정엔 역시 원형의 거울이 매달려 있다. 12명 무용수가 쌍쌍이 되어 원형 무대 위에서 움직이면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천정의 거울에 반사된다. 무용수들은 머리에 흰 꽃을 달고 있다. 상여꾼의 곡두를 떠올리는 머리 장식에 음악도 상여꾼이 부르는 전통 노제 음향이다. 흰 부채를 들고 나오면 그들의 춤은 우리 부채춤의 타원형 대형을 이룬다. 무용수들이 머리에 갓을 쓰고 등장한다. 챙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패랭이 모양의 갓은 여자들이 즐겨 쓰는 서양식 모자와도 닮았다. 소도구로 채택한 흰 꽃과 흰 부채, 검정색 갓은 한국적이지만 동시에 스페인식이기도 하다. 배경음악은 한국적 가락으로 시작되지만 서양음악과 절묘하게 결합되어 제3의 음향을 창조해낸다. 현대무용의 춤사위를 기본으로 하면서 한국과 외래,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연출이 예사롭지 않다. 특별한 드라마트루기는 보이지 않는다. 춤과 음악과 소도구 등 무용공연의 요소들을 단숨에 섞어 하나의 무대 위에서 동시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안무가의 의도로 읽혀진다. 무용수들이 쌍쌍이 되어 보여주는 동작들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공간,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현재의 나와 외부에 비쳐지는 나의 모습,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과의 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라 베로날 무용단의 창의적 언어일 것이다.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거울이 조각조각 갈라지며 각기 다른 모습들이 깨어진 거울에 반영된다. 각각의 거울 조각에서 발산되는 빛의 궤적이 탐조등처럼 교차하면서 무대와 객석을 비추기 시작한다. 스토리텔링보다는 동작 자체의 표현력을 중시하는 모라우 안무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40분 작품이었다. 

‘코바’는 라 베로날 무용단의 대표적 레퍼토리 작품이다. 13분 짧은 시간동안 로레나 노갈과 마리나 로드리게스 등 두 명의 여성무용수가 등장해서 플라멩코음악과 현대 춤의 조합을 실현한다. 그들은 검정색 바탕에 흰 점이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상의와 검정색 바지에 목이 긴 흰 양말을 신었다. 팔과 다리의 큰 회전력과 민첩함을 기본으로 하면서 자연스러운 몸의 흐름 대신 비정형적인 춤사위를 특색으로 하는 코바 춤 의상이 포효하는 흑표범을 연상시킨다. 코바 춤에는 누워서 하는 동작이 많다. 두 몸이 석이고 팔다리가 얽히고설켜 문어발처럼 기괴하게 움직인다. 대칭보다 비대칭, 유연함보다는 의도적인 근골의 파괴성을 추구하는 독특한 춤사위다. 국내 무용가 중에서 소마틱스(Somatics)를 추는 국은미의 춤을 떠올리게 했다.

'아트프로젝트보라 & Guests'(김보라)의 공연(7,26~28,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소개된 세 작품 중에선 이스라엘 출신인 ‘샤하르 빈야미니’가 안무한 ‘실리콘 밸리(Sillicone Valley)'의 15분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원피스 수영복차림에 커다란 검은색 가리개를 가슴에 붙이고 입술을 검게 칠한 10명 무용수들이 무대 가운데 모여 있다. 공중엔 둥근 원반이 매달려 있고 이 원반이 낙하하면서 두 개 혹은 세 개의 파문을 일으킨다. 그들은 사람 같기도 하고 마네킹 같기도 하다. 미니멀한 무대 미술과 무용수들의 군무가 앞에서 본 마르코스 모라우의 ’쌍쌍‘을 떠올리게도 하면서 점점 기계화 되어갈 미래 춤의 우울한 테크놀로지를 예언하는 듯한 특색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