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숙 문화재청장 “성락원, 문화재 지정 과정, 과오 인정한다”
정재숙 문화재청장 “성락원, 문화재 지정 과정, 과오 인정한다”
  • 조두림 기자
  • 승인 2019.08.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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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원, 92년 문화재 지정 당시 문화재로서 가치없다 판명돼
국회 김영주 의원, 황평우 소장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재지정 적절”, "명승 취소, 지출예산 등 환수해야"

"성락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소유자의 증언과 현대 기록에만 의존해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지정 과정에서 나타난 과오를 반성한다"

▲지난 23일 김영주 의원(가운데) 주최로 ‘성락원 명승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참석해 성락원 문화재 지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3일 김영주 의원(가운데) 주최로 ‘성락원 명승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참석해 성락원 문화재 지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지난 23일 열린 ‘성락원 명승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밝히고 "문화재 지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별서 정원 21곳을 전수 조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명승 제35호 성락원(城樂園)의 문화재 지정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과 함께 성락원의 가치를 재평가하기 위해 김영주 국회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렸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장)가 좌장을 맡아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연구사가 발제했으며,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 박한규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 정기호 전 문화재위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이기환 경향신문 선임기자, 이영이 상명대 박사가 토론에 나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김영주 의원은 “문화재청은 지난 28년간 성락원에 대해 별다른 근거자료 없이 ‘조선 철종(재위: 1849~1863)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국사편찬위원회에 질의한 결과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또한 국가기록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1992년 문화재 지정 당시 조사보고서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으로 확인했다” 며 “‘성락원에 조선시대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기거했다’는 주장 역시 당시 ‘성락원' 소유자 측이 자필로 쓴 내용 이외에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국비 낭비 않는 제대로 된 조사를 촉구했으며, 성락원은 서울시가 관리하는 지방문화재로 재지정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원호 연구사 “전문가 회의 통해 명승 가치 확인, 조선시대 영벽지 명확해”

발제에 나선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성락원은 고종을 모신 내관인 황윤명이 1884년 이전에 조성한 정원”이라고 밝히고 “성락원 일대가 황윤명이 별서를 조성하기 이전에도 경승지였음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학예연구사는 황윤명 문집인 <춘파유고>에 수록된 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가 성락원 영벽지 바위 글씨와 일치해 성락원이 황윤명의 별서였음을 알 수 있으며,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가 혜화문을 나가 황윤명 집을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난 6월과 7월 2차례 전문가 회의를 통해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확인했다”라며 현존하는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영벽지라는 명확한 요소가 있다는 점에서 명승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강조했다. 

박철상 소장 “성락원 경영한 황윤명은 내시지만 인물사적 가치 있어”

박철상 소장은 “오횡묵의 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성락원을 경영한 황윤명은 시를 지을 줄 알고 서화에 능했다”고 말했다. “정조 시대의 문화가 민간으로 내려오는 시기에 황윤명이 책을 출간하는 등의 전문가 역할을 수행했다”라며 “내시 신분이었지만 문화적 소양이 많았던 사람이었다”고 황윤명의 인물사적 가치를 강조했다. 박 소장은 영벽지 일원에 장빙가 바위글씨는 추사의 글씨로 추정된다는 이원호 연구사의 의견에는 “장빙가란 글자는 황윤명 경영 시기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지만, 추사체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정기호 교수 “외국 정원과 다른 문인정원 요소 갖춰” 문화재 가치 없다는 과거 결론 반박

정기호 교수는 성락원에 일부 오류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명승으로서 가치를 전면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 정원은 외국 정원과 다른 특징이 있다”라며 “외국의 정원은 권력자가 자기 권력 표현 양식으로 만든 것이지만, 우리 정원은 문인들이 자연물에 이름을 붙이고 시문을 더불어 만들었다. 성락원은 외국의 정원과 다른 문인정원으로서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라며 “과거 조사자는 문화재적 가치 있는 게 있고, 새로 조성된 조경은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재조사 보고서를 보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의견과 없다는 의견이 명확히 갈라져 심의를 통해 가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 지정된 걸로 나온다”고 말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는 과거 조사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박한규 국장 “문화재 가치없다는 전문가 의견 묵살하고 문화재 지정된 점 의아”

박한규 문화재보존국장은 “성락원 사적 지정 당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 의견에도 불구하고 왜 문화재로 지정됐는지 의아한 점이 있다”라며 의구심을 표했다. 다만 박 국장은 성락원의 연못 영벽지는 보존 필요성으로 인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라고 해명을 덧붙였다.

황평우 소장 “관련자 처벌 및 명승 지정 취소, 지출 예산 환수,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해야” 

황평우 소장은 “성락원은 20세기에 문화재 복원이 아니라 관광 차원에서 개발한 것으로 1960년대 관광사업이라 함은 성을 상품화했던 기생관광이 주된 사업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락원이 19세기에 존재했더라도 20세기에 불에 타 없어진 곳이다. 원형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자료가 없다”라며 “명성황후의 갑신정변 피난처라는 명분으로는 문화재로서 의미가 없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황 소장은 성락원 문화재와 명승 지정 관련자 처벌 및 명승 지정 취소, 지출 예산 환수를 요구했으며, 다만 70여 년 동안 보존·관리된 점과 시민 세금이 투입된 점을 감안해 ‘서울시 기념물’ 지정을 제언했다.  

이기환 기자 “문화재청 부실 고증, 성락원만의 문제 아냐” ‘부실 행정’ 쇄신 요구

이기환 기자는 문화재청의 성락원 부실 고증을 비판하고 이는 성락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이 기자는 “문제 제기된 문화재만이라도 제대로 검증 및 연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옛날 연구에 의존해 검증하려는 움직임이 없다”라며 타성에 젖은 문화재청의 부실 행정에 쇄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영이 박사 “조사과정 철저하지 못한 문제, 다른 문화재 지정도 시스템 바로 잡아야”

이영이 박사는 “성락원과 관련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라며 ▲국가·지방 문화재적 가치가 미흡하다는 조사결과에도 문화재 지정 ▲인물·연혁 고증 미흡 ▲조선시대에도 없는 명칭 ▲문화재적 가치 의혹을 나열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명승 가치 재검증 중요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명승 지정 당시 조사과정이 철저했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철저히 규명해서 명승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재 지정에 있어서도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 박사는  2014년 상명대와 문화재청의 학술용역 문제를 내부고발하고, 퇴출당한 후 5년 동안 싸워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대회 원장 “명승지정 과정 문제 있지만, 문화재 가치 없는 것 아냐” 

안대회 원장은 “명승 지정 과정에 문제점이 있다는 데 공감하지만, 그로 인해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횡목과 황윤명 문헌 등장으로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가 확고하게 입증됐다. 현장과 문헌을 통해서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활용됐다는 점에서 역사성 부분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진 것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성락원은 소유하고 경영한 사람이 내시라고 판명되는데, 내시라고 해서 정원의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정원이란 것은 사대부든 평민이든 신분보다 정원 자체를 얼마나 가꾸고 활용했냐가 중요하다. 조선 시대 정원은 사대부가 독점했다. 19세기 이후로는 여항인으로 확대된다. 그중 내시도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은 “18세기 중반 이후 근대까지 200년 정도 정원이 훼손된 부분도 있지만 서울과 주변에 개인정원 유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각석이나 계류, 바위 등 남은 요소들이 역사적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 1992년 성락원을 사적 제378호로 지정했으며, 2008년 명승 제35호로 재분류했지만 최근 전문가들은 성락원의 명승 지정 근거가 부정확하다고 지적해왔다.

논란이 가중되자 문화재청은 지난 5월 30일 홈페이지에 “성락원은 자연적·인문적 문화요소가 잘 남아있고, 주변 숲과 함께하는 경관가치 또한 높으며, 특히 추사 김정희의 각자(刻字)와 영벽지 등 전통정원의 경관요소 등이 잘 남아있어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하고, “문화재청은 성북구청과 함께 최근 언론 등에서 제기되는 명승 제35호 성락원의 역사적 사실과 문화재 가치 여부 등에 대한 연구 등을 포함한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작년 4월부터 오는 6월까지 진행하고 있다”라고 홍보했다.

아울러 “최근 제기되는 ‘조선 시대 철종 때 심상응’의 존재 여부와 ‘조선 시대가 아닌 정자와 연못’ 등에 대하여 이번 연구에서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며, 그 결과를 관계 전문가와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필요할 경우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