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강원도립극단의 “월화”를 보고, 김혁수 예술감독님께
[윤중강의 뮤지컬레터]강원도립극단의 “월화”를 보고, 김혁수 예술감독님께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8.30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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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강원도립극단 김혁수예술감독님!

서울의 국립극단이 못했던 걸, 춘천의 강원도립극단이 해냈더군요. 국립극단과도 또 다른 방식으로, 근대연극의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는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강원도립극단의 ‘월화’는 창작희곡공모 당선작입니다. 조선최초의 여배우로 통하는 이월화(李月華)에 관한 얘깁니다. 그녀에 관한 얘기는 많지 않습니다. 그녀의 삶에 관한 정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탁월한 배우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몇몇의 기사와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작가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더군요.

작품의 부제를 매우 영리하게 부치셨더군요.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산하'에서 그랬죠.“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신극, 달빛에 물들다”라는 부제는, 사실(史實) 논쟁에 휘말리기 쉬운 근대의 연극사를 작가적 상상력을 더욱더 발휘할 수 있도록 여지를 넓혀주고 있었습니다.

‘월화 : 신극, 달빛에 물들다’는, 한 여배우를 통해서, 한 시대의 공연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노력이 읽혀집니다. 한민규 작가는 매우 ‘성실한’ 작가이고, 매우 ‘발칙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팩션연극입니다. 팩트와 픽션이 혼재되어 있지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자막을 통해서 확실하게 각인시키듯, 작품 속의 월화(문수아)가 실제 이월화와 얼만큼 부합하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작가는 여‘배우’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당시 여배우라면 기생출신이 대부분입니다. 한민규 작가는 이월하라는 배우가 ‘기생과 다른 삶’을 살고자 했음을 강조합니다. 기생이었던 자신의 어머니와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을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의 신념인 것 같은데, 배우와 기생을 그렇게 선명하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다소 도식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배우임을 강조하는 것이, 대 사회적 메시지 또는 남성을 향한 주장처럼만 보여집니다.

당시, 배우와 기생은 교집합입니다. 이 작품이 ‘배우’를 화두 삼아서 ‘기생’과의 거리두기였다면, 작품에 등장하는 복혜숙(조은)과 이월화의 관계 속에 풀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복혜숙은 기생(권번출신)으로 출발해서, 배우와 가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기생임을 숨겼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았고, 때로는 ‘기생출신’이라는 것이 그녀를 위축시켰습니다. 그 시절의 여배우를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생이 아닌 여배우’임을 강조하려는 인물보다는, ‘기생으로 출발해서 여배우’가 된 인물의 대 사회적 항변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강원도립극단이 제작한 연극 '월화'.

한민규 작가가 만들어낸 스토리는 재밌습니다. 실존인물인 윤백남(이선휘)과 박승희(강승우), 여기에 더해서 갈등과 파국을 만들어내는 왕평렬(박원철)은 매우 신선하게 그려진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한 시대와 한 여배우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데는 매우 요긴한 캐릭터였습니다.

내 시각에서, 이 작품의 성공요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치민(연출)과 이정표(음악), 두 사람 덕분입니다. 연출은 무대의 세트도 제한하고, 무대의 공간을 잘 활용하면서, 극을 긴박감 있게 이어가고 있더군요. 스토리가 복잡해지면서 어수선할 수 있는 상황을, 매우 반듯하고 정갈하게 이어 붙이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극을 보면서, 작가와 연출이 모두 작품의 내용에서나 무대의 형식면에서 모호하거나 불분명한데 - 곧 그들 자신이 어떤 확고한 정체성이 없는데 - 그것을 마치 관객에게는 ‘당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라’고 떠넘기는 장면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적어도 이 ‘월화’의 작가와 연출은 일순간도 그러질 않았습니다. 그런 점을 높이 사는 동시에 꼭 밝히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본 많은 사람이 모두 공감하는 것처럼, 이 작품의 최고의 공로는 이정표라고 생각합니다. 국립극장의 작품을 비롯해서 ‘근대’를 다룬 여타의 작품과 선명하게 변별성을 가지는 것이, 이정표라는 존재와 그가 선택한 음악입니다. 무대 중에는 마치 달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한 둥근 문틀이 있고, 거기에 가야금과 함께 이정표가 존재합니다. 그는 극의 흐름에 맞게 노래를 합니다. 25현가야금의 반주를 하면서 말이죠. 25현가야금은 일제강점기에는 존재하진 않았지만, 그 때의 정서를 가야금만으로 ‘단출하고 단정하게’ 그리는데 매우 요긴했습니다. ‘경성살롱’이란 음반을 직접 제작한 그녀답게, 그 시대의 정서는 물론이요, 작품의 흐름에  딱 맞는 곡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근대를 다룬 많은 연극이나 음악극을 볼 때, 나같은 사람이 갖는 큰 불만의 하나는 바로 ‘음악이 시대와 상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월하’는 근대를 다룬 작품에서, 당시의 시대성과 예술성, 객관성과 대중성을 생각할 때, “어떤 음악을 선곡해야 하고, 이것을 어떻게 들려 줄 것인가?”에 대한 모범적인 대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강원도립극단 김혁수 예술감독님, 제 입장에서 작품을 말해봤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작품의 전반적인 면을 제작한 감독님께 듣고 싶네요. 아울러 강원도립극단이 이월하를 시작으로 근대인물을 조명하는 작품을 계속 이어서 공연해 주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