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기 예술세계 회고展, 그는 모험가인가? 실험가인가?
김순기 예술세계 회고展, 그는 모험가인가? 실험가인가?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9.0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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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작가ㆍ1970년대 아방가르드 의미 찾고자 노력, 서예부터 4차 산업까지를 담아
윤범모 관장 “전시장 곳곳에 보석이 숨겨져 있다”

사실 생소한 이름이었다. 작가 이름만 보고 남성 작가라 짐작하고 간 간담회장은 백발의 여성작가가 자리했다. 수많은 기자 앞에서 지난날의 다채로운 예술세계를 차분히 설명하는 그에게 연륜이 느껴졌다.

백발의 작가 김순기의 이름이 이토록 낯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29일 《김순기: 게으른 구름》展 개막을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조망받지 못했던 여성작가 발굴의 일환인 《김순기: 게으른 구름》展을 개최한다. 지난달 31일 시작해, 내년 1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6, 7전시실 및 전시마당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김순기 작가가 직접 쓴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재불작가 김순기 작가의 삶과 예술, 자연이 조화된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영상, 설치, 드로잉, 회화 등 20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대해 이수정 학예연구사는 “예술가는 어떤 존재이고, 예술가의 삶이란 무엇인가?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찾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김 작가 전시의 작품은 어떤 하나에 갇히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가치를 확장시킨다. 김 작가는 끊임없이 예술정신에 도전해 왔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대부분 처음 보는 작품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라고 말했다.

▲이수정 학예연구사와 김순기 작가 모습

김순기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국에 있을 때는 원시대에 갇힌 학생이었다"라며 세월의 무딤 보단, 지난날 경험에 대한 날선 감정이 드러났다.

그는 "바람이 불어서 펄럭거리는걸 보니 마음이 시원해졌고, 사람들, 자동차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라며 “‘소리’는 한계가 없다. 그림은 사각형 틀에 있지만, 소리는 그렇지 않아 모든 것을 '소리'처럼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1970년대 당시 프랑스를 오고가며 작품도 하고 영상작업도 했다”며 1971년 프랑스 니스의 국제예술교류센터 초청작가의 선발과 프랑스 중심활동을 언급했다.

김 작가는 1975년도 미국문화원에서 열린 《김순기미술제》에 대해 “전성우 선생 소개로 한 전시였는데, 장소가 답답해 길거리에도 전시를 했다”라며 “전시에 이건영 씨를 포함해, 5일 전시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전위미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다 왔다”라고 회상했다.

▲작업을 설명하고 있는 김순기 작가의 모습

김 작가는 “당시 내가 말을 잘했다. 열심히 잘해서 욕도 많이 먹었다. 여자가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가 아닌, 젊은 여자..기집애가 군소리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신문 인터뷰에 "‘아방가르드라는 것은 당신네들처럼 깡패처럼, 장악하는 것이 아방가르드가 아니다. 서로 소통하고 나누는 것이 아방가르드다.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 모르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 아방가르드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며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회상하는 김 작가는 시간이 흘렀지만 권력에 의한 억압의 아픈 기억들이 여전히 삭여지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럼에도 1975년 전시 당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방문해 확성기를 쓸 정도였고, 전시 5일 째 마지막 날에는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설명하는 김 작가의 모습에선, 지난 작업에 대한 당당한 태도가 전해졌다. 

▲<김순기 미술제> 컨퍼런스 장면, 1975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작년에 열린 아라리오갤러리 전시와의 차이에 대해 “이번 전시의 신작은 2개이다. 먼저 퍼포먼스 하는 사운드 작업이 있다. 작업 구성은 오래전부터 한 것인데 그동안은 여건이 맞지 않아, 이제야 선보인다. 더 많은 작품을 구성했지만 줄이고 줄였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작품에 대해선 “프랑스 말로 ‘메르’ 는 바다이고, ‘메흐’ 하면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한 달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사람 죽는 다는게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이에 영감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가 이뤄진 과정을 묻자, 강승환 학예실장은 “김 작가의 '주식거래'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며 2000년대 초 작가와 교류가 있었다. 3년 전 유럽 출장에서 김 작가의 작업실에 갔는데, 20년 동안 교류해왔음에도 모르는 작품이 많았다”며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김 작가를 꼭 잡아, 미술사에서 구멍 난 부분은 메우는게 미술관의 역할이라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한국에서 여성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적게 된 편이고, 미술사에서도 제외되었다. 제대로 된 한국미술사를 구성하는 측면에서 이번 전시가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김순기,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 중 존 케이지 콘서트, 1986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김순기(1946~)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 니스의 국제예술교류센터 초청작가로 선발되면서 도불했다.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프랑스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는 플럭서스의 대가 존 케이지(John Cage)ㆍ이라 슈나이더(Ira Schneider) 등과 교류하면서 예술, 철학, 과학이 접목된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한 작가이다. 따라서 전시장에는 김순기와 작업했거나 토론 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존 케이지 드로잉ㆍ백남준과 함께 했던 작가들의 흔적이 담겨있다.

전시는 김순기 작가의 관심사 전체를 담는다. 시간 공간의 문제, 회화의 해체를 포함 공간 해체ㆍ멀티미디어 정신, 사진과 서예에서 로봇까지 전체까지 하나의 주제로 정해서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그의 예술과 삶의 관계를 전시를 통해 고찰한다. 또한 김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남긴 드로잉과 메모 등을 소개해, 작품 제작 상황과 작가의 생각 등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전시명 ‘게으른 구름’은 김순기가 쓴 동명의 시 제목으로,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의 의미, 삶의 태도를 함축한다. 전시는 김순기의 예술세계와 그가 실험해온 다양한 매체는 총 8가지 주제로 나눠 조망한다.

▲돌멩이에 글을 쓴 김순기의 작품

‘색 놀이 언어 놀이: 일기(日記)-작업실에서’를 주제로 하는 6 전시실은 작가가 작업실 주변에서 수집한 돌멩이, 나무 등을 이용해 제작한 오브제와 판화, <일기>(1971~75)를 비롯해 1970년대 초반 퍼포먼스 영상, 언어와 이미지의 차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담긴 <색 놀이> 연작, 작업실에서 보낸 사계절의 시간을 담은 <이창>(2017) 등을 전시한다.

‘일화(一畵)-활쏘기와 색동’ㆍ조형상황’ㆍ‘빛과 시간으로 쓴 일기’ 세 가지 주제로 지하 3층은 구성된다. ‘일화-활쏘기와 색동’에서는 황학정에서 국궁을 수련했던 작가가 색에 대해 탐구한 회화와 퍼포먼스 영상 <일화>, <만 개의 더러운 먹물자국> 등을 선보인다. ‘조형상황’에서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남프랑스 해변 등에서 현지 예술가, 관객들이 참여한 퍼포먼스를 소개한다.

이어 ‘빛과 시간으로 쓴 일기’ 주제에선 1980년대 초 프랑스 정부 지원으로 연구한 작품 중 1987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 출품했던 <준비된 피아노>(1986)와 함께 <애주-애주>(2013), <Gre Gre>(1998)를 선보인다.

▲백남준 작품과 김순기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작업실에서의 고독과 탐구 VS 예술적 교감으로 빛나는 여름밤’을 주제로하는 7 전시실은 실험적인 영역에 도전해온 작가 여정을 살핀다. 1975년 한국 첫 개인전 <김순기 미술제>를 비롯 1986년 존 케이지, 다니엘 샤를르 등을 초청해 개최한 멀티미디어 페스티벌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1986) 관련 자료 등을 만날 수 있다.

미디어랩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의 의미’를 주제로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전 세계를 일주하며 촬영한 <가시오, 멈추시오>(1983), 호주 원주민의 제의 모습을 담은 <하늘 땅, 손가락>(1994)을 비롯해 자크 데리다ㆍ 장 뤽 낭시ㆍ 백남준 등과의 인터뷰 영상을 상영한다.

특히 그의 작품 <Vide&O>는 영어 비디오이자, 프랑스어로 ‘비어 있는’ ‘물’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띈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얼음으로 모니터 모양의 조각을 제작했고, 모니터의 프레임과 내부가 서로 다른 속도로 녹아내릴 수 있도록 수차례 연구와 실험을 했다. 마침내 방법을 찾아 제작을 의뢰했을 때, 얼음 공장 직원이 ‘비디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빈 물’이라 표기했다.

▲김순기, O.O.O., 1989, 혼합 매체, 300x100x160cm(사진=국립현대미술관)

평소 언어 게임을 즐겨 하는 김 작가는 ‘실수’로 붙은 제목이 영상을 보여주지만 비어있는 모니터의 속성을 적확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해, 작품제목을 <Vide&O>로 명명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 새롭게 제작한 <Vide&O>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오는 8일에는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을 진행한다. 이날 전시마당에서는 무당 김미화 굿하는 소리, 게으르고 심심해하는 로봇 ‘영희’가 사운드 퍼포먼스를 공개한다. 김 작가는 퍼포먼스에 대해 “우리사회는 너무 기능만 찾고, 실질적으로 결과가 괜찮은 것만 찾는다. 로봇이 도와주는 기능적 역활만 하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시를 물어보면 로봇은 바보 같은 대답을 하는 퍼포먼스”라고 전했다.

▲ <Vide&O> 작품, 얼음 모니터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김순기 작가 모습

또한 9월 중 출간 예정인 전시 도록은 미술평론가 성완경, 문혜진, 김남수의 작가론을 비롯 마르세유 미술학교 제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정화 교수의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 회고록,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제롬 상스(Jérôme Sans)의 인터뷰, 철학자 장 뤽 낭시(Jean Luc Nancy)가 쓴 작가론이 수록되어 김순기의 예술세계를 조망할 예정이다.

▲ ‘심심바보 영희’ 로봇 오는 8일,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범모 관장은 “김순기 선생은 오랜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해서 상대적으로 국내에는 덜 알려진 작가다”라며 “작품이 다양하고 과학 철학을 작품에 녹였기에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표현방식이 아주 다양해 신인작가의 전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령을 잊게 만든다”라고 전했다.

또한 “숨겨진 보석 같은 전시로, 전시장에 가면 보석이 곳곳에 숨겨져 있을 것” 이라며 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할 것을 환기시켰다.

자세한  전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