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모차르트 이야기2-아버지에게 바친 오마주,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의 안단테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모차르트 이야기2-아버지에게 바친 오마주,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의 안단테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19.09.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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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 ㆍ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1편에 이어서]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67

아들과 소원해진 아버지 레오폴트는 손자 -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의 아들 - 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제2의 모차르트’를 만들겠다는 꿈에 매달리고 있었다. 아들의 빈자리를 보상받고 싶은 늙은 아버지의 헛된 안간힘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빈에서 날아오는 아들의 소식을 언제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마음을 되돌려서 화해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라도 빈에서 꼭 성공해야 했다. 음악사상 최초의 자유음악가가 되었다는 것은 모차르트 자신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막막한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그는 오로지 자기 재능으로 성공을 거머쥐어야 했다. 모차르트에게 피아노는 가장 효과적인 악기이자 강력한 무기였다. 귀족 계층과 신흥 시민계급을 망라한 고객들을 위해 그는 예약음악회(Akademie)를 계획했고, 여기서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들을 선보였다.

빈 시절의 첫 피아노 협주곡인 F장조 K.413, A장조 K.414, C장조 K.415 등 세 곡에 대해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 협주곡들은 매우 화려하여 귀를 만족시킵니다. 너무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고, 꼭 중간쯤 됩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공허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만 알아들을 수 있는 패시지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이 대목들은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유를 모르는 채 즐거워하게 됩니다.” (1782년 12월 28일 빈에서)

귀족과 시민을 모두 만족시켜서 고객의 폭을 넓히겠다는 전략은 성공했다. 어떤 음악에 사람들이 환호할지 모차르트는 예측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이 세 협주곡들이 “길거리의 마부들도 휘파람으로 부를 수 있는 곡”이라며, “오케스트라 부분은 현악사중주가 맡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신흥 시민계급의 가정에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누구든 친지와 함께 집에서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악보 판매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1784년 봄, 모차르트는 빈 음악계의 스타가 돼 있었다. 자유음악가로 활동한지 3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그 해 3월 3일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시간이 없어서 자주 편지를 보낼 수 없는 걸 용서해 달라”고 쓴다. 곧 세 차례의 예약연주회가 있는데 이미 100명 넘는 사람이 예약했다, 새 작품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작곡을 멈출 수 없다, 오전 내내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정신이 없다, 매일 밤마다 연주를 해야 한다…. 즐거운 비명이었다. 예약연주회를 위한 새 작품은 역시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이 무렵 모차르트는 자기 작품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음악사에서 저작권의 개념이 희미하게나마 처음 싹트는 순간이었다. ‘자작 목록’에 처음 오른 건 피아노협주곡 14번 Eb장조 K.449, 15번 Bb장조 K.450, 16번 D장조 K.451 등 세 곡이었다.* 모차르트는 이 작품들을 3월 17일, 24일, 31일에 차례차례 한곡씩 초연하며 기염을 토했다. 1783년에 발표한 세 곡처럼 오케스트라의 악기편성은 “관악기는 생략해도 괜찮다”고 했다. 실내악 형태로 가정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는 새로 장만한 안톤 발터(Anton Walter)의 피아노를 연주회장으로 가져가서 연주했다. 그의 예약연주회는 황제 요젭2세를 비롯, 귀족과 시민들로 연일 성황을 이뤘다. 이 무렵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9시까지 작곡을 하고, 오후 1시까지 레슨을 했다. 누군가에게 초대되는 경우가 아니면 2~3시 경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5시까지 작곡을 조금 더 하고, 저녁때는 연주를 하든지 밤 9시까지 작곡을 했다. 급한 일거리가 있으면 새벽 1시까지 작곡하기도 했지만 다음날은 어김없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무척 부지런히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모차르트의 연수익은 해마다 증가하여 1785년에는 3,700굴덴이 이르렀다. 이는 같은 시기 하이든이 에스터하치 공에게서 받던 연봉의 세 배를 넘은 액수였다. 모차르트는 빈 중심가에 고급 주택을 얻었고, 당구대를 들여놓았고, 강아지와 찌르레기 같은 애완동물을 키웠고, 밤새 무도회를 열기도 했다. 첫돌을 맞은 둘째 칼 토마스는 건강히 자라 주었다. 자유음악가로 첫 걸음을 내딛은 지 4년 만에 모차르트는 ‘성공의 정점’에 올라서고 있었다.

‘성공의 정점’에서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1785년 2월 11일,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확인하기 위해 빈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모차르트의 D단조 피아노협주곡이 초연됐다. 이렇게 강렬하고 비극적인 협주곡은 음악사상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협주곡에서 기대되던 밝고 화려한 느낌 대신 모차르트 내면의 실존적 고뇌와 어두운 열정을 담고 있었다. 낮은 현의 셋잇단꾸밈음에 실려서 당김음으로 첫 주제가 등장할 때 청중들은 전율했다. 모차르트는 영웅적 카리스마로 피아노 건반을 종횡무진 누볐다. 2악장 로망스는 달콤하지만 어느새 G단조의 격렬한 패시지로 바뀐다. 3악장은 힘차게 상승하는 D단조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지고, 당당한 D장조로 힘차게 마무리한다. 이 파격적인 음악은 모차르트가 경제적 염려에서 해방되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재능을 맘껏 발휘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기존질서와 충돌한 모차르트는 자기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을 거머쥔 승리감을 이 곡에서 맘껏 노래했다. 빈의 멜그루베 카지노(지금 앰버서더 호텔)에서 초연이 끝나자 계몽군주 요젭 2세는 “브라보 모차르트!”를 외치며 환호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이 ‘유럽 최고의 작곡가’로 모든 이의 갈채를 받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날인 2월 12일,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날 연주회 때문에 모차르트는 존경하는 선배 작곡가 요젭 하이든의 프리메이슨 가입 환영식에 참석할 수 없었는데, 대신 이날 하이든을 집으로 초청하여 현악사중주곡 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 레오폴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이든은 제1바이올린, 모차르트는 비올라를 맡아서 새로 작곡한 3곡의 현악사중주곡을 연주했다. 연주를 마친 하이든은 레오폴트 앞으로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신 앞에서 정직한 인간으로서 말씀드리건대, 당신의 아들은 제가 만났거나 이름을 아는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모든 작곡기법에 능통할 뿐 아니라 아주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원로작곡가 하이든이 이렇게 아들을 극찬했으니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버지는 빈에 머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내 콘스탄체는 시아버지 레오폴트를 깍듯이 모셨다. 콘스탄체의 어머니 - 모차르트의 장모 - 체칠리아는 사돈 어른을 초대해서 정성껏 요리를 대접했고, 레오폴트는 “적당한 양념으로 잘 익힌 거위 요리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담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소문과 달리 콘스탄체의 어머니 체칠리아가 꽤 성실한 사람이며, 아들과 사이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레오폴트는 한때 극심한 거부감을 품었던 소프라노 알로이지아 랑에 - 그녀는 연극배우 요제프 랑에와 결혼했다 - 의 노래를 듣고 평을 쓰기도 했다. “그녀의 표현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강약대비가 너무 심해서 작은 소리로 노래하면 잘 들리지 않았고 큰 소리로 노래하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단한 호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혹평이라고 할 수도 없다. 베버 가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한결 누그러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 달 뒤인 1785년 3월 10일, 모차르트는 빈의 부르크테아터에서 자신의 연주로 C장조 협주곡을 초연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도 그 자리에 있었다. 1악장 ‘빠르고 장엄하게’(알레그로 마에스토조)는 화려하고 당당하다. 트럼펫, 플루트, 팀파니와 함께 연주하는 패시지들은 군대행진곡을 연상케 한다. 2악장은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F장조의 안단테다. 아름다운 선율 사이사이에 슬픔이 얼핏 얼굴을 드러낸다. 피날레 ‘충분히 빠르고 생기있게’(알레그로 비바체 아사이)는 거침없이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 날 연주가 끝났을 때 아버지 레오폴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도대체 왜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까? 열쇠는 아름다운 2악장 안단테에 있다. 피아노가 제2주제를 연주할 때 왼손이 셋잇단음표로 반주하는데, 이것은 아버지가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C장조의 느린 악장에서 왼손이 연주하는 셋잇단음표 패시지와 똑같다. 이런 기법을 ‘오마주’(hommage)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작품 한 대목을 인용하여 존경을 표했고, 이를 알아챈 아버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 안단테는 아버지와의 7년간의 갈등 끝에 드디어 화해를 이룬 기쁨을 노래했다. 음악을 말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음악 또한 소통이므로 거기에 담긴 마음을 언어로 이해하는 게 아주 부질없는 짓은 아닐 것이다. 이 곡을 듣는 어느 한 순간, 음악에 실려서 모차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온 적이 있다. 

- 관현악 서주 “아버지는 제게 언제나 하느님 다음이었죠. 이렇게 와 주셔서 기쁘답니다. 아픈 추억도 있었죠. 하지만 그 아픔도 이제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쓰신 소나타의 느린 악장을 떠올리며 이 안단테를 썼어요.”
- 피아노 솔로 (단조로 바뀌면) “7년 전 마지막날, 저는 울고 있었죠. 아버지도 캄캄한 절망 속에 계셨어요. 그 눈물, 그 어둠은 이제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고 있어요. 아버지 품에 다시 안긴 이 시간, 저는 어릴 적 볼프강으로 돌아갑니다. 삶은 덧없지만 그래도 아름답지요.”
- (아버지 소나타에서 인용한 대목)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이 음악의 순간은 영원할 거에요.”
- (다시 단조로 바뀌면) “많은 슬픔,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가지 참을 수 없는 일로 이뤄진 나의 일상….”
- (구름 걷히듯 밝아지면) “그래도 이렇게 함께 걸으니 얼마나 좋아요.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우리를 비추네요.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남아 있고 저는 이렇게 미소짓고 있어요.”

아버지는 그해 4월 25일 흡족한 마음으로 잘츠부르크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2년 뒤인 1787년 5월 28일 레오폴트는 세상을 떠났고, 가족이 함께 살겠다는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안단테는 아버지에 대한 모차르트의 존경과 사랑이 담긴 오마주였다.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대목들은 아버지와 갈등하고 불화하던 시절의 아픈 추억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채훈: 중학생 때 베토벤 교향곡을 듣고 클래식에 입문했지만 결국 음악을 전공하지 못했다.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 중 제주4·3, 여순사건, 보도연맹사건을 취재했고, 정경화·정명훈·사라장에 대한 인물다큐와 <모차르트-천번의 입맞춤> 등 음악다큐를 연출했다. 저서는 <클래식 400년의 산책>,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가 있다.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지만 모차르트야말로 우주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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